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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3점뿐인 고려 나전합, 15년 집념 끝에 日서 되사왔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 모습. [연합뉴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 모습. [연합뉴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의 세부 모습. [사진 문화재청]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의 세부 모습. [사진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최응천 이사장 주도
2년 가까이 소장자와 협상 끝 올 초 귀환
고려 미의식 대표했던 나전칠기 공예품
전 세계 20여점…온전한 형태 국내 3점

“15년 전 일본 도쿄의 소장자 갤러리에서 처음 본 순간 반했다. 정교한 이음새와 화려한 무늬가 한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한 눈에 문화재 보물급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한국으로 꼭 가져오고 싶었는데 이제야 소원을 이뤘다.”
 
전 세계적으로 단 3점만 전해지는 고려 나전칠기 공예품 ‘나전합’ 중 일본에 있던 1점이 한국에 돌아왔다. 80대 일본인 소장자를 상대로 문화재청의 위임을 받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수년간 끈질기게 협상, 매입한 결과다. 2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언론공개회에 함께 한 최응천(61)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에게서 환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2005년 운명적 만남, 국내 첫 전시회로 

학부 때 불교미술(공예)을 전공한 그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 시절부터 15년 이상 이 문제에 매달렸다. 전 세계 20여점만 전해지는 고려 나전칠기가 한국 문화유산의 높은 수준과 긍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나마 완전한 형태는 전세계 15점. 그 중 4점이 도쿄박물관에 있단 걸 알고 2005년 보름 동안 연구 교류를 자청해서 갔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 공개 행사에서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단 이사장(오른쪽)이 돌아온 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정재숙 문화재청장(가운데)도 함께 했다. [사진 문화재청]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 공개 행사에서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단 이사장(오른쪽)이 돌아온 합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정재숙 문화재청장(가운데)도 함께 했다. [사진 문화재청]

 
이 시기 일본 전역의 고려 나전칠기 현황을 조사하면서 이번에 환수한 나전합도 만났다. 이를 포함한 10여점을 일본에서 빌려와 이듬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천년의 빛-나전칠기’전을 열었다. 우리 나전칠기 역사를 한자리에 모아 화제가 됐지만 한달 대여 후에 이들을 돌려보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당시 온전한 형태의 국내 소장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불자(拂子, 일종의 불교 도구) 1점뿐이었다. 특히 나전합은 전 세계 3점 정도만 알려졌는데 이 작품은 미술관이나 사찰 소장이 아닌 개인 소장이라 구입 가능성이 있었다. 2008년 박물관을 떠나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2012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출범하자 자문위원으로서 이 문제를 계속 얘기했다.”  
 
재단은 2018년 소장자와 접촉에 성공해 구매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지난해 11월 “운명처럼” 그가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14년 만에 다시 만난 일본인 소장자는 그에 대한 신뢰로 결단을 내렸다. “고려의 것이니 한국에 돌아가야한다.” 지난해 12월 최 이사장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언제 어떻게 이 땅을 떠났을지 모를 작은 합이 이렇게 올 초 한국 품으로 돌아왔다. 매입 가격은 상호 합의에 따라 공개하지 않는다.
 
국내에 돌아온 고려 시대 나전합 '나전국화넝쿨무늬합'. [사진 문화재청]

국내에 돌아온 고려 시대 나전합 '나전국화넝쿨무늬합'. [사진 문화재청]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은 얇은 나무판으로 몸체를 만들고 전복껍질(자개)과 거북등껍질(대모)로 상면과 측면을 장식했다. 안쪽과 바닥은 옻칠 그대로 마무리 했다..[사진 문화재청]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은 얇은 나무판으로 몸체를 만들고 전복껍질(자개)과 거북등껍질(대모)로 상면과 측면을 장식했다. 안쪽과 바닥은 옻칠 그대로 마무리 했다..[사진 문화재청]

정식 명칭은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이다. 나전이란 자개를 무늬대로 잘라 목심이나 칠면에 박아넣거나 붙이는 칠공예 기법. 고려 나전합은 커다란 원형 합(모자합·母子盒) 속에 5개의 작은 합(자합·子盒)이 들어있는 형태로 가운데 꽃 모양 합을 송엽형 자합 4개가 둘러싼 모습이다. 현재 완전체는 전해지지 않고 이번에 환수한 나전합은 송엽형 자합 4개 중 하나로 추정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중국도 극찬 "세밀하여 귀하다"  

돌아온 합은 12세기에 제작된 화장용 상자의 일부로 추정된다. 10㎝ 남짓한 길이에 무게는 50g에 불과하다. 깨알 같은 크기의 국화 꽃잎과 넝쿨무늬가 손바닥만한 크기의 함 둘레를 수놓듯이 새겨져 있다. 영롱하게 빛나는 전복패와 온화한 색감의 대모(玳瑁, 바다거북 등껍질), 금속선을 이용한 치밀한 장식 등 고려 나전칠기의 전성기 때 기법이 고스란히 반영된 수작으로 평가된다. 1000년 가까운 세월에도 정갈한 이음새 그대로다. 재단의 김동현 유통조사부장은 “일부 미세하게 빠진 부분도 후대의 보수가 없어 고려 기법을 원형대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나전 기법 자체는 중국·일본 등에도 전해졌지만 나전칠기는 특히 고려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워 불화, 청자와 더불어 3대 미술품으로 꼽힌다. 송나라 사절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高麗圖經, 1123년, 인종 1년)’에 ‘극히 정교하고(極精巧, 극정교)’, ‘솜씨가 세밀하여 가히 귀하다(細密可貴, 세밀가귀)’ 등의 찬사가 전해질 정도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이번처럼 온전하고 아름다운 유물이 돌아온 것은 독보적 사례”이라며 “앞으로도 전 세계에 흩어진 고려 유물들을 되찾아오는 데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 공개 행사 장면. [사진 문화재청]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 공개 행사 장면.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나전칠기국화넝쿨무늬합 방사선 조사 사진. [사진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공개한 나전칠기국화넝쿨무늬합 방사선 조사 사진. [사진 문화재청]

 
이로써 한국은 온전한 형태의 고려 나전칠기 유물을 3점 보유하게 됐다. 앞서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일본에서 사들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나전경함(螺鈿經函, 불교 경전을 보관하기 위한 함)은 2018년 보물 1975호로 지정된 바 있다.
 
돌아온 나전합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올 하반기에 특별전 ‘고대의 빛깔, 옻칠’을 통해 국민들께 14년 만에 다시 선보일 것”이려며 “이번 유물 귀환을 계기로 우리 문화의 높은 칠기와 공예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발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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