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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닥치고 전쟁' 볼턴, 그를 만든 건 56년 전 골드워터 DNA

존 볼턴(72)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살아있는 권력’인 도널드 트럼프(73) 미국 대통령의 외교 내막을 만천하에 공개한 회고록 『그 일이 벌어진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을 출간했다. 백악관과 청와대는 회고록 내용에 잘못된 부분이 많다며 수정을 요구하지만, 그 파장은 이미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회고록으로 자신이 업무상 획득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이면 정보를 공개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로이터=연합뉴스

회고록으로 자신이 업무상 획득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이면 정보를 공개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로이터=연합뉴스

볼턴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기에 이런 적나라한 외교 이면을 공개했는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볼턴을 제대로 아는 것은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가 왜 트럼프 정권과 갈등을 일으켰는지, 미국 공화당의 내부 기류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는 데에도 필요하다.  

1964년 공화당 대선후보 골드워터
‘핵사용 불사’ ‘강한 미국’ 앞세워
공화당을 전투적인 우파 정당 재편
당시 10대 볼턴, 감격해 선거운동
군사력 앞세운 공화당 매파 유전자
레이건-부시 부자-트럼프로 이어져
불턴, 역대 공화당 정권서 일하며
이라크전, 이란핵합의 폐기에 앞장
민주당 클린턴과 오바마의 업적 훼손
제네바합의 폐기, 하노이 철수 유발
‘폭격’ 볼턴, ‘득표’ 트럼프와 거리감
공화당 매파 유전자 지금까지 연연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 AP=연합뉴스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 AP=연합뉴스

 

볼턴, 38년 전부터 공화당 행정부서 일해  

주목할 점은 볼턴이 그리 간단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볼턴은 2018년 4월 9일부터 2019년 9월 10일까지 트럼프 행정부의 세 번째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외교안보 정책을 담당했다. 하지만 북미 협상이나 이란에 대한 정책을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과 이견을 보이다 해임됐으며, 이번에 회고록을 출간해 트럼프와 미국 외교의 민낯을 공개했다.  트럼프는 지난 6월 25일 폭스뉴스 주최 타운홀 미팅에서 “폭격만 원하는 미치광이”라고 그를 비난했지만 볼턴은 그렇게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사실 볼턴은 역대 미국 공화당 정권에서 상당 기간 비중 있는 자리를 맡아왔다. 트럼프가 부동산 사업과 방송으로 유명해져 대통령이 된 공화당의 외곽 인사라면, 볼턴은 오랫동안 행정부에서 정책을 주물러온 공화당 핵심 인사인 셈이다.  
1981~1989년 재임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1981~1989년 재임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레이건 시절 공직 발탁, 국무부서 활약  

볼턴이 처음 공화당 정권에서 일한 것은 3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일대와 예일대 법과대학원 출신의 변호사 볼턴은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17~2004년, 재임 1981~1989년) 시절 공직에 처음 들어갔다. 조지 HW 부시 대통령(1924~2018년, 재임 1989~1993년), 조지 W 부시 대통령(73·재임 2001~2009년)에 이어 트럼프로 이어지는 역대 공화당 정권에서 고위직을 맡아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폭로 회고록 발간은 여러모로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로펌에서 일하던 볼턴은 레이건 시절인 1982년 해외 원조를 담당하는 국제개발처(USAID)에서  법률 고문으로 공직의 첫발을 디뎠다. 그곳에서 1983년까지 일하다 법무부로 옮겨 1989년까지 근무했다. 1989년 조지 H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자 국무부로 옮겨 국제기구 담당 차관보를 맡았다.  
2002년 2월 22일 한국의 판문점 인근 DMZ 초소를 방문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둘째). 연합뉴스

2002년 2월 22일 한국의 판문점 인근 DMZ 초소를 방문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둘째). 연합뉴스

볼턴이 거물급 인사로 떠오른 때는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였다. 그해 5월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을 맡아 2005년 7월 31일까지 5년 이상 일했다. 그러다 부시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2005년 8월 2일부터 2006년 12월 31일까지 유엔대사를 지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볼턴이 민주당의 견제로 의회 인준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의회 휴회 중 전격적으로 그를 임명했을 정도로 신임했다. 볼턴은 민주당 정권이 집권한 동안에는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 등 방송의 정치평론가, 공화당의 정치 컨설턴트로 일했다. 트럼프 대통령과는 선거 캠프에 합류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관의 백악관 회의에 참석한 모습.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10일 볼턴 보좌관을 전격 경질했다. AP=뉴시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관의 백악관 회의에 참석한 모습.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10일 볼턴 보좌관을 전격 경질했다. AP=뉴시스

중동 독재자 선제공격 주장-이라크전 성사

볼턴은 국제문제의 해결 도구로서 외교적 대화와 협상보다 군사력의 적극적인 사용을 강조해온 대표적인 매파다. 볼턴이 지명도를 얻은 것도 끊임없이 무력사용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이란·이라크·시리아·리비아 선제공격을 주장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에서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을 맡고 있던 2002년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WMD)와 생산시설을 은닉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이 됐다. 볼턴이 앞장서서 WMD 문제를 제기하면서 침공을 강력하게 주장해 성사시켰다. 당시 다국적군을 결성한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이라크 전역을 점령하고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WMD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전은 명분이 없는 비도덕적인 전쟁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볼턴은 쿠바도 이라크처럼 WMD를 감추고 있다고 주장하며 무력 사용을 주장했지만 이뤄지지는 않았다.  
볼턴은 핵 개발 의심을 받던 이란과 리비아에 대한 선제공격도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이뤄지지는 못했다. 리비아의 경우 지도자 무아마르 가다피가 발빠르게 핵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가다피는 2003년 12월 핵과 생화학무기 완전포기를 선언하고 이듬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받고 미국에 핵개발 장비와 문서를 넘겼다. 2005년 10월 핵 프로그램을 완전 정리했으며 그 대가로 2006년 6월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할 수 있었다. 이른바 ‘리비아 모델’이다. 하지만 가다피는 2011년 2월 리비아에 ‘아랍의 봄’ 봉기가 발생하면서 피신 중 그해 10월 주민에게 살해되면서 사라졌다.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달21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트럼프가 대통령 3연임을 추구하지 않는 데 ’감탄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달21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트럼프가 대통령 3연임을 추구하지 않는 데 ’감탄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백악관 들어가자 시리아 폭격, 이란핵합의 탈퇴

볼턴은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취임한 지 불과 닷새 만인 2018년 4월 9일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지배하는 시리아의 미사일 공격을 성사시켰다. 알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을 응징한다며 화학무기 시설 3곳을 순항미사일로 공격했다. 영국·프랑스도 동참했다. 이른바 ‘코피 전략’으로 불리는 제한적 선제공격이다. 누가 봐도 매파 볼턴의 입김이 작용한 공격이다.    
볼턴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58·재임 2009~2017년) 행정부가 2015년 7월 이룬 이란핵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도 대놓고 반대하고 무력을 통한 해결을 주장했다. 그는 2015년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이란의 핵개발을 막으려면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군사행동이 미국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2009년 시카고대 연설에서는 “이란 핵보유를 막으려면 이스라엘이 먼저 이란에 핵공격을 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트럼프는 오바마의 업적인 이란핵합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지만 2017년 1월 취임 뒤에도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진 못했다. 하지만 이런 볼턴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기용한 지 한 달만인 2018년 5월 8일 유럽국가들의 반대에도 이란핵합의에서 탈퇴했다. 볼턴이 어떤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달 23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좌관이 폭스뉴스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지난달 23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좌관이 폭스뉴스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북핵 중단 제네바합의 폐기도 볼턴 작품  

볼턴은 앞서 미국과 북한이 1994년 맺은 제네바 핵합의를 2003년 깨는 데도 일조했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가 핵발전용 경수로를 건설해주고 완공 전까지 발전용 에너지인 중유도 제공하는 대가로 핵 활동을 중단하기로 하는 내용이다. 제네바 합의는 결과적으로 북한에 핵개발의 시간을 벌어줬다는 비판도 있지만 당시에는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 대통령(73·재임 1993~2001년)의 업적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2001년 집권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3년 북한을 ‘악의 축’으로 비난했으며 그 결과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핵무기 개발을 재개하면서 제네바 합의는 종잇조각이 됐다. 앞서 미국 의회는 공화당의 반대로 경수로 건설 예산의 통과를 거부했다. 볼턴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비난할 당시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으로 북핵 분야를 맡고 있었다.  
1964년 대선후보로 출마한 배리 골드워터 후보(왼쪽)를 위해 로널드 레이건이 찬조 연설을 하고 있다. 레이건은 골드워터의 강경 보수주의 후계자로 통한다. [위키피디아].

1964년 대선후보로 출마한 배리 골드워터 후보(왼쪽)를 위해 로널드 레이건이 찬조 연설을 하고 있다. 레이건은 골드워터의 강경 보수주의 후계자로 통한다. [위키피디아].

 

매파 볼턴은 현대 공화당의 전통과 연관

볼턴은 왜 이처럼 흥정은 말리고 싸움은 붙이는 인물이 됐을까? 이를 알려면 볼턴의 뿌리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볼턴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인물이 아니다. 공화당 정권의 오랜 매파 뿌리와 연관이 있다.  
볼턴은 ‘힘의 외교’를 강조한 미국 공화당의 강경 주전파인 배리 골드워터 전 애리조나주 연방상원의원(1909~1998년, 재임 1953~1965년, 1969~1987년)의 유전자를 계승한 매파 인물이다. 골드워터는 1964년 미국 대선에서 린든 존슨 대통령(1908~1973년, 재임 1961~69년)에게  역사적인 대패를 당한 공화당 정치인이다. 골드워터는 애리조나주 연방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공화당의 강경 보수화를 이끈 인물이다. 온정주의적 정당이던 공화당을 전쟁도 불사하는 강력한 우파 정당으로 바꿔놓았다. 볼턴은 그런 골드워터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고향 메릴랜드 주에서 장학생으로 고교에 다니던 1964년 골드워터가 공화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자 지지단체를 만들어 선거운동을 했을 정도로 그를 따랐다.  
골드워터는 애리조나 연방상원의원으로 국방위원회와 정보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군사력의 적극적인 사용을 주장했으며, “핵무기도 쓸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무력을 앞세운 정책을 강조했다. 미국 국내정책에서는 1950년대 중반 시작된 인종통합과 1930년대 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1882~1945년, 재임 1933~1945년)의 뉴딜 정책에서 기인한 복지제도 확대에 반대한 보수적 인물이다. 골드워터는 이런 정책을 통해 온정주의 공화당을 전투적 매파로 바꾼 결정적 인물로 통한다.  
미국 현대 공화당의 강경 보수주의 원류로 통하는 배리 골드워터 애리조나주 연방상원의원(오른쪽)이 1984년 백악관에서 당시 로널드 레이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위키피디아]

미국 현대 공화당의 강경 보수주의 원류로 통하는 배리 골드워터 애리조나주 연방상원의원(오른쪽)이 1984년 백악관에서 당시 로널드 레이전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위키피디아]

 

골드워터 DNA, 역대 공화당 정권에 전달돼

힘을 내세운 골드워터의 DNA는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아버지 부시로 불린 조지 HW 부시, 아들 부시로 불린 조지 W 부시에 이어 트럼프까지 전달됐다. 이들은 화법만 달랐지 지향하는 정책은 유사했다.  
특히 국제정치에서 군사력을 앞세운 점에서는 일치했다. 레이건은 미국이 절대적으로 앞선 경제력을 최대한 활용해 소련과 스타워즈 프로젝트를 포함한 무한 군비경쟁에 나섰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나선 소련에 대항해 무자히딘(이슬람 전사)에게 다량의 무기를 공급했다. 이런 레이건의 무제한 경쟁은 결국 소련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소련은 1991년 지도에서 사라졌다.  
레이건의 부통령을 하다가 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조지 HW 부시는 1990~1991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상대로 걸프전을 벌여 쿠웨이트를 점령했던 이라크군을 몰아내고 개전 목적을 달성했다. 전쟁으로 국제정치 과제를 해결한 사례다.  
그의 아들인 조지 W 부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1957~2011년)을 내놓지 않는다는 이유로 탈레반 정권이 지배하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점령했다. 2003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WMD를 숨겼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점령하고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다.  
 
2003년 이라크전에서 미군 전차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로 진입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3년 이라크전에서 미군 전차가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로 진입하고 있다. [중앙포토]

미국 전쟁 주도,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변화  

공화당 정권의 이런 군사 개입과 정쟁을 통한 국제정치 해결은 역사적으로 이전 정권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이전까지 미국 역사에서 주요 전쟁은 주로 민주당 정권에서 벌어졌던 것과 대조적이다. 제1,2차 세계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이 대표적이다. 1차대전은 우드로 윌슨 대통령(1856~1924년, 재임 1913~1921년), 2차대전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6·25전쟁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1884~1972년, 재임 1945~1953년), 베트남전은 린든 존슨((1908~1973년, 재임 1963~1969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개입했는데 한결 같이 민주당 대통령이다. 공화당 정권이 20세기 후반 이후 대외 전쟁에 이처럼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은 미국 역사에서 의외의 일이다.  골드워터의 군사력 중심의 강경 외교정책의 유전자 영향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베트남전 패배를 국내외 반전시위를 비롯한 ‘등 뒤의 칼’ 때문으로 보던 공화당 정권은 1990~1991년 걸프전 당시 철저하게 전쟁보도 통제에 나서기도 했다. 전쟁보도는 군이 제공한 홍보 영상 중심으로 이뤄졌다. CNN을 비롯한 미국 방송에선 미국이 발사한 미사일이 목표물로 날아가 명중하는 모습만 보였다. 이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 파괴된 시설, 고통 받는 민간인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전쟁 보도 영상은 비디오 게임을 보는 것과 진배없었다. 전쟁 보도 영상과 사진에는 이라크군이 황급히 쿠웨이트를 떠나면서 고속도로에 자동차와 장비를 두고 간 것만 보였지, 미군이 이끄는 다국적군의 폭격으로 희생된 사람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걸프전은 없었다』로 역설적인 제목의 저서에서 실상과 다른 전쟁 이미지 보도를 비판했다. 실제가 아닌 모사만 판을 찬다는 비판이었다.  
존 볼턴의 회고록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 경제에 대한 나쁜 소식이나 시진핑에 대한 비판적 발언 모두를 듣기 싫어했다“고 한다. 이게 미중 무역담판에 악영향을 줘 자신의 연임 가도에서 ‘표’가 떨어질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존 볼턴의 회고록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 경제에 대한 나쁜 소식이나 시진핑에 대한 비판적 발언 모두를 듣기 싫어했다“고 한다. 이게 미중 무역담판에 악영향을 줘 자신의 연임 가도에서 ‘표’가 떨어질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닥치고 전쟁’ 대 ‘닥치고 득표’의 대립

이런 골드워터의 강경 사상을 추종해온 볼턴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한 것은 공화당의 뿌리 깊은 강경 주전파 유전자가 지금까지도 연연히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볼턴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된 데는 선거 캠프에서 일하며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 업적인 이란 핵합의 등에 반대하면서 의기투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이 사뭇 달랐다. 볼턴이 ‘닥치고 전쟁’ 이라면 트럼프는 ‘닥치고 득표’였기 때문이다. 볼턴은 ‘폭격’을 외쳤지만 트럼프는 세금으로 거액의 전비를 뿌려가며 이란 등을 공격하는 데는 반대했다. 트럼프가 가장 원한 것은 납세자의 세금을 아끼고 유권자의 표를 얻는 일이었다.  
트럼프의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지난 1월 3일 이라크의 바그다드 공항에서 드론을 동원해 이란 구드스군(예루살렘군)의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암살한 공작이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해외공작부대인 구드스군은 중동 전역에서 이란 세력을 확대하고 반이스라엘·반미·반서구·반사우디아라비아 공작을 수행해 부대다. 이라크의 시아파 정권과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중동의 친이란 시아파 세력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를 지원해왔다. 한결같이 반서구 및 반이스라엘 성향의 정부나 조직이다. 트럼프는 드론을 이용한 저비용 정밀 타격으로 이란을 경고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볼턴이 추구한 이란 공습이나 전면전과는 거리가 있는 작전이다.  
현대 공화당을 강경 보수주의 정당으로 변화시킨 배리 골드워터의 연방 상원의원 시절 모습. 위키피디아

현대 공화당을 강경 보수주의 정당으로 변화시킨 배리 골드워터의 연방 상원의원 시절 모습. 위키피디아

 

‘힘의 공화당’ 이끈 골드워터, 동성애·낙태 용인

골드워터는 레이건과 조지 HW 부시 정권 탄생에 기여했으며 군사력을 앞세운 힘의 외교를 지지했지만 이들 정권을 받친 또 하나의 기둥인 ‘공화당 기독교 원리주의 우파’에는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트럼프도 공화당 기독교 원리주의 우파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골드워터는 어머니의 종교에 따라 미국성공회 신자로 성장했지만 그의 부친은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었다는 점이 작용했을 수 있다. 이런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 원만해진 것인지 골드워터는 만년에 군사 외의 분야에선 유연함을 보여 시선을 끌었다. 무엇보다 그는 “로마의 카이사르 이후 강한 군대에는 동성애자 군인이 있었다”는 말로 동성애자의 군 복무에 찬성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인 손자를 사랑했다. 골드워터는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공화당 보수주의자들이 펄쩍 뛰며 반대하는 임신중절에 대해서도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자”는 입장을 보였다. 골드워터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공화당 본연의 모습을 강조하고 공화당의 한 분파를 차지한 종교 우파와는 거리를 뒀다. 만년에는 외국의 분쟁에 미국의 세금으로 개입하는 것에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에 군사비 지출 확대를 요구하며 갈등하는 것은 만년의 골드워터에서 발원한 현대 공화당의 불개입주의와 일맥상통할 수도 있다.  
지난해 7월 방한한 존 볼턴 당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을 위해 이동 중 '존 볼턴 방한 항의' 집회 참석자들을 향해 손 흔들고 있다. 변선구 기자

지난해 7월 방한한 존 볼턴 당시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이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을 위해 이동 중 '존 볼턴 방한 항의' 집회 참석자들을 향해 손 흔들고 있다. 변선구 기자

 

볼턴, 군사력 의존의 확증편향 증폭  

미국 공화당에는 이처럼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는 셈이다. 그 중에서 볼턴은 레이건식 종교 우파도, 골드워터 만년의 유연한 보수도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신념을 보였다. 그것은 군사력을 앞세워 미국의 시대를 더 길고 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자신이 10대 때부터 존경하고 따랐던 골드워터의 폭넓은 스펙트럼에서 ‘주전파 유전자’만 편식해 ‘군사력만이 유일한 수단’이라고 과신하는 확증편향을 증폭한 셈이다. 볼턴이 트럼프와 갈등하고 반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볼턴이 트럼프의 모습을 대놓고 폭로한 회고록 사태가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다.  
더욱 큰 문제는 미국 공화당의 매파 유전자가 지금까지도 연연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봉합될 것인지 전 세계가 초조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올 11월 3일 열리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할지 주목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존 볼턴의 회고록인 '그것이 일어난 방'의 표지. 아마존

존 볼턴의 회고록인 '그것이 일어난 방'의 표지. 아마존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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