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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용보험기금은 정부의 ‘쌈짓돈’이 아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보험은 사고에 대비해 기금 적립으로 공동재산을 형성하고 유사시 보험금을 지급해 경제적 불안을 구제하는 제도다. 일반 보험의 보험료는 사고 확률에 따라 정해지지만, 사회보험은 임금이나 소득으로 결정돼 소득재분배 기능을 내포한다. 사회보험인 고용보험은 수혜자인 근로자와 사용자가 보험료를 낸다.
 

정부, 노사가 만든 고용보험 의존
기금 아닌 특별재원을 편성해야

고용보험은 실업급여(구직급여), 고용안정, 직업 능력 개발사업 등에 쓰인다. 실업급여 재원은 노사가 절반씩(급여의 0.8%) 분담하며, 고용안정 및 직업 능력개발 비용은 사업주가 전액 부담한다. 실업급여를 제외하면 고용유지 지원금, 고용촉진 장려금 등의 재원은 모두 사용자 적립분이다.
 
고용보험은 근로자 의지와 무관한 비자발적 실업으로 초래되는 위험을 보호하고, 기업의 인적자원 관리상 위협을 완화하며, 노동시장의 안정을 지원하는 제도로 해석하면 맞다. 미국 사회철학자 칼 폴라니가 ‘악마의 맷돌’이라 부른 자본주의 시장으로부터 노동자의 생존과 삶을 보호하기 위한 탈 상품화 기획의 핵심이 고용보험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고용보험기금이 고갈 위험에 직면했다. 코로나19 위기 이전부터 실업급여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더니 법적으로 1.5~2.0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적립 배율이 지난해 0.4까지 떨어졌다. 적립액 대비 지출이 많다는 뜻이고, 고갈 직전이란 의미다. 게다가 코로나19 여파로 기업의 고용유지 지원금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6월 초까지 지원금 신청 사업장은 7만1000여개, 지급액은 3410억원(약 27만명)이나 된다.
 
3차 추경을 통해 구직급여 3조4000억원, 고용유지 지원금 8500억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하지만 보험금 수요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추경의 지원을 받는다 해도 현재 6조5000억원 수준인 보험기금은 연말이면 5조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위기가 지속하면 기금은 바닥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노사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어려운 현재의 노동시장 위기 대응을 온전히 고용보험에 맡겨서는 안 된다. 상당 부분은 정부의 몫이어야 한다. 고용보험기금은 노사가 조성한 위험 대비 재산이다. 구직급여와 고용안정 지원금은 정부가 따로 대책을 안 내놔도 지급 의무가 있는 법정 보험금이다.
 
따라서 고용보험을 활용한 대응은 위기에 따른 특별 조치라기보다는 처방 없이도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상비약인 셈이다. 온전한 정부 대책이라고 보기 힘들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나라마다 경쟁하듯 돈을 풀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한국처럼 노사가 조성한 보험금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정부의 일반 예산을 동원한다.
 
미국은 ‘CARES 법’으로 시장을 지탱하고 있고 고용유지와 임금 보호를 위해 다양한 지원금과 대출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영국도 휴업 노동자의 월급을 최장 4개월간 80%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설계했다. 지원 첫날에만 18만5000개 기업 130만명이 신청했고, 15억 파운드가 소진됐다. 프랑스는 휴업수당 전액을 국가가 지원하도록 했다. 모두 사상 유례없는 규모다.
 
한국도 비슷한 대책을 설계하고 있으나 고용보험을 동원하는 것 말고는 정책이라고 할 게 없다. 고용보험과 별도로 고용유지와 실업지원 등을 위한 특별재원을 규모 있게 편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고용보험 미가입 중소·영세 사업장까지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급한 대로 3차 추경 예산 가운데 고용유지 재원으로 더 많이 편성하고, 끌어다 쓴 고용보험 기금은 특별 지원의 형태로 메워놔야 한다. 고용보험기금을 지속가능한 안전망으로 유지하려면 적립금 여유분을 10조원 이상으로 회복해야 하고, 구직급여 적립 배율도 법적 요건에 맞춰야 한다. 위기가 예외적인데, 노사가 모아둔 돈만 빼 써서야 되겠는가.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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