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병상이 딱 하나면 90세·25세·3세 중 누구에게?

포스트코로나 대변혁이 온다 ⑦ 가치관의 충돌

지난 4월 15일 미국 켄터키주 프랭크포트에서 수백 명의 시민들이 주민 이동을 제한하는 봉쇄 조치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15일 미국 켄터키주 프랭크포트에서 수백 명의 시민들이 주민 이동을 제한하는 봉쇄 조치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재천 이화여대 자연과학부 석좌교수는 최근 놈 촘스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로부터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최 교수는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촘스키 교수와 미국 유학 시절 인연을 맺었다. e메일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막기 위한 한국의 추척·공개 시스템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방역 vs 사생활 보호, 봉쇄 vs 경제활동
세계 각국, 가치 선택의 기로 놓여

프랑스 대국민 토론회 ‘그랑데바’
‘사회적 공론장’ 모델로 삼을만해

최 교수는 “촘스키 선생은 한국의 시스템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반면 최 교수는 “동선공개 시스템 등 덕분에 한국에서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이 문제로 촘스키 선생과 e메일로 몇 차례 설전을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후 한국의 동선 추적 시스템의 효율성을 분석한 논문을 학술지 ‘인퍼런스(inference)’에 게재했다.
 
두 학자의 온라인 설전은 코로나19 사태로 발생한 글로벌 가치관의 충돌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진 뒤 각국은 가치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사회 전체의 안전보다 국민 개인의 자유를 더 보장할지가 대표적이다. 최 교수는 “사회적 거리두기 역시 국민의 자유와도 맞닿아 있는 문제”라며 “코로나19와 관련한 선택지 하나하나가 첨예한 논쟁거리”라고 진단했다.

관련기사

 
경제활동을 활성화할지, 방역을 위해 엄격한 이동제한 조치를 할지에 대해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세계화 시대에 국경을 어디까지 걸어 잠가야 할지, 다른 나라와 연대할지 문제도 불거졌다.
 
갈림길에서 국가들은 저마다의 길을 택했다. 베트남은 중국과 1400㎞에 걸쳐 맞댄 국경을 봉쇄했다. 중국에서 오는 여행객의 입국을 금지하고 4월 말까진 이동 제한령을 내렸다. 반면 스웨덴은 국민의 이동제한 조치 및 국경 봉쇄령을 내리지 않았다. 평상시와 같은 생활을 권장하며 ‘집단면역’ 실험을 했다. 영국에선 맷 행콕 보건부 장관이 지난 3월 70세 이상 노년층에게만 의무적으로 자가격리하도록 하는 권고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해 뭇매를 맞기도했다.
 
가치 선택의 문제는 일상으로 내려왔다. 직장인 김성진(27)씨는 5월 초 단체 채팅방에서 친구들과 말다툼을 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이태원 클럽을 방문한 사람들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김씨는 “이 시국에 저런 곳에 가는 건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 친구는 “개인의 자유인데 너무 심하지 않으냐”고 맞받아쳤다.
 
이석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철학 교과서에서만 보던 질문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눈앞에 펼쳐졌다”고 말했다. 그는 가치관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몇 가지 상황을 더 예시로 들었다. ‘병상이 딱 하나만 남았을 때 90세 노인, 20대 청년, 3세 아기 중 누굴 먼저 병상에 눕힐 것인가’ ‘전염병 백신이 한정적일 때 시장논리에 맞춰 비싸게 팔 것인가, 아니면 공적 마스크처럼 다수 시민에게 조금씩 공급해야 하는가’ 등이다.
 
명쾌한 해법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충돌하는 가치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사회적 공론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석재 교수는 “우리 공동체, 사회가 중요시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부터 논의해야 앞으로 더 강한 재난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서구식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공교육에도 토론 교육을 도입하긴 했다”며 “토론의 틀, 기준을 깨고 어릴 때부터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프랑스는 이슈를 둘러싼 난상토론이 가장 활발한 나라로 꼽힌다. 지난해 1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노란 조끼 시위’로 표출된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고자 3개월간 ‘끝장 토론’을 열었다. 대국민 토론회 ‘그랑데바’(Le Grand Debat national)는 세금·공공지출 절감·민주주의를 주제로 삼았다.
 
이 기간에 프랑스 각 지역에선 토론회가 1만134번 열렸다. 온·오프라인 토론회에 참석한 인원만 193만여 명이다. 정부는 편지와 e메일로 국민 의견 2만7374건을 받았다. 토론 후 프랑스 정부와 국민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프랑스 정부는 의견을 모두 수렴해 소득세 감면 및 엘리트의 상징인 그랑제콜 국립행정학교(ENA) 폐지를 발표했다. 노란조끼 시위 당시 21%까지 떨어졌던 마크롱의 지지율도 50%대까지 올랐다. 시위대는 한때 수류탄까지 던지며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지만, 답은 결국 대화에 있었다.
 
프랑스식 토론이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최 교수는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에서 봤듯 ‘한국인은 창의성이 없다’는 고정관념과 다르게 기막힌 창의성을 보여줬다”며 “시민들이 스스로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교육 등에서 자율성을 많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론이란 서로 다른 의견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상대의 의견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며 “토론을 말싸움하거나 서로를 공격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기회에 토론을 숙의를 거쳐 의견을 나눈다는 의미의 숙론(熟論)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김기환·김지아 기자 khkim@joongang.co.kr
 
중앙일보·정책기획위 공동기획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