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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윤의 이코노믹스] 세금 올려 지급하는 기본소득 ‘아랫돌 빼 윗돌 괴기’

기본소득과 증세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 정부에서 ‘증세 없는 복지’가 뜨거운 화두가 된 바 있다. 당시 ‘증세 없는 복지’의 논거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하경제 양성화로 복지 지출을 위한 의미 있는 규모의 재원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금융실명제, 카드 사용 확대, 현금영수증 등 다양한 정책이 이미 시행됐기 때문에 지하경제의 규모 자체가 상당히 축소됐다. 시간이 갈수록 지하경제가 더 축소되면 이를 통해 만들 수 있는 재원은 점차 감소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 도입하면 증세 불가피
대상은 소득세·부가세·법인세
현재 여건으로는 증세 쉽지 않아
실업급여·EITC 강화가 현실적

따라서 복지제도 구축에는 반드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재원조달 방안이 필요하고 이런 관점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쉽지 않다. 한편, 세수 확대를 목표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면 대개 징세 행정의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결국 진행되는 바람에 사실상 증세와 다를 바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최근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다.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 입장과 별도로, 기존의 복지 지출을 축소하지 않으면서 기본소득을 제공하려면 증세는 불가피하다. 간단한 예로 1인당 연간 100만원(월 8만3000원)을 책정해도 전 국민에게 지급하면 5000만 명 기준으로 50조원이 소요된다. 2020년 우리나라 전체 국방예산인 50조1000억원과 비슷한 규모다. 즉, 한 달에 8만원씩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UBI)을 실현하려면 국방예산 규모의 재원이 있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개념상 일시 지출이 아니라서 그 재원이 매년 필요하다는 게 핵심 특징이라는 얘기다.
  
근본적 대책은 일자리 창출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따라서 기본소득이 정책적인 의미로 제기될 때, 대부분 논의는 기존 복지 축소 또는 대체와 함께 논의된다. 즉 여러 형태로 복잡하게 제공되는 기존 복지체계를 기본소득 개념으로 통일시켜 정비하고, 그 대신 지출에서 개인의 선택 범위를 넓힌다는 뜻이다. 그런 관점에서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설계된 복지를 제공하기보다 선택의 자유를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기본소득은 보수적인 정책으로 간주되곤 했다. 스위스에서 이루어진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투표가 이런 관점이다. 즉, 기존의 복지체계를 유지할 것인지, 이를 폐지하고 기본소득으로 제공할지 선택하는 것인데, 실제로 기존 복지를 정리한다면 수혜계층의 저항에 직면할 수 있어서 국민적 합의를 거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제시되는 기본소득 논의는 이러한 기존의 복지체계 정비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기존 복지체계는 그대로 둔 채 기본소득의 이름으로 추가로 현금 복지를 지급하는 형태에 가깝다. 이 경우는 추가적인 재정 부담을 피할 수 없다. 이런 부담은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의 선택 문제보다는 일반적인 복지 확대 차원에서 논의가 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소득을 지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가장 효과적인 복지 확대 방안인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기본소득과 관련해 제기되는 주장은 흔히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디지털 전환으로 노동 수요가 감소해 실업이 발생하므로 전 국민에게 일정 소득을 지급하자는 논점이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실업의 원인이 디지털 전환 자체보다는 기술 변화에도 새로운 산업과 부문으로 자원이 원활하게 이동하지 못하는 시장 상황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기본소득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규제 체계를 개편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새로운 기업과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실업이 정말 문제라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일정 금액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보다 일자리가 없는 계층을 대상으로 실업급여로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효과와 재원 측면에서 타당할 수 있다.
  
증세는 저소득층에도 영향
 
연 100만원 지급해도 50조원 필요

연 100만원 지급해도 50조원 필요

다만 일을 해도 근로소득이 작아서 빈곤 수준에 놓인 계층이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일종의 근로 연계 소득지원제도인 근로소득장려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 EITC)로 지원을 확대하는 방식이 타당하다. 즉, 일정 수입 이하의 저소득 가구에 가구원 구성과 소득 기준으로 근로장려금을 산정해 지급하는 것으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및 우리나라 역시 이미 시행 중이다.
 
따라서 막대한 재원이 소요돼 증세가 불가피한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모든 계층에 지급하기보다는 실업급여와 근로소득장려세제의 강화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물론 탄소세·데이터세·국토보유세·로봇세 등 새로운 세금으로 재원을 조달하자는 제안도 있다. 하지만 석유처럼 특정 자연자원을 국가가 직접 보유하고 이를 통해 대규모 수입을 거둘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특정 목적의 세원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처럼 대규모 재원이 필요한 예산을 계속 조달하기는 쉽지 않다.
 
부의 양극화 못 좁히는 보편적 기본소득

부의 양극화 못 좁히는 보편적 기본소득

만약 기본소득처럼 보편적 지출을 계획한다면 결국 3대 주요 세원인 소득세·부가가치세·법인세 가운데 하나를 인상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법인세는 국가 간 조세 경쟁이 심해서 추가 인상 시 기업 활동에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고, 이미 세율을 인상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기업 실적 악화로 추가 세원확보도 어렵다. 부가가치세 인상은 조세 저항이 심할 뿐만 아니라 소득과 관계없이 적용되기 때문에 소득이 낮은 사람이 부담을 더 느끼는 역진성 문제도 있다. 소득세도 이미 고소득자 세율은 상당히 높아서 실제로 고소득자에 한정해 세금을 인상하면 재원을 크게 확보하기 어렵다.
 
다만 2018년 귀속소득 기준으로 소득세 면제 대상이 약 40%에 달하는 현 상황에서, 기존의 소득세 면제 대상까지 세금을 내도록 하는 보편적 증세로 세금 납부의 저변을 확대하는 국민개세주의 원칙을 고려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전 국민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공하기 위해 중간 이하 계층까지 세금 징수를 강화하는 것은 전형적인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하석상대(下石上臺)가 될 수 있다. 타당성과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프리드먼의 ‘선별적 기본소득’도 대안
2018년도 16.4%, 2019년도 10.9%로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될 당시에도 저소득층을 지원하고 빈곤을 줄이는 데는 최저임금보다 근로소득장려세제(EITC)가 보다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면 고용이 유지되는 피고용인은 소득이 증가할 수 있지만, 고용주는 비용 증가로 고용을 오히려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소득층의 고용감소는 치명적인 소득 악화와 빈곤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반면에 근로소득장려세제는 고용, 특히 저소득층 고용에 대해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어서 일자리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것은 근로소득장려세제의 구조와 관련이 높은데, ‘마이너스 소득세’로 지칭되는 것처럼, 근로는 하지만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는 정부가 지원금을 제공하기 때문에 근로자는 조금 낮은 임금을 받아도 소득을 개선할 수 있다. 고용주는 비교적 적은 부담으로 고용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일자리와 소득 확대라는 정책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근로소득장려세제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실증 분석이 꼬리를 물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근로소득장려세제 확대의 필요성이 거듭 제기돼 오고 있다.
 
근로소득장려세제는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시카고대의 밀턴 프리드먼의 아이디어와도 맞닿아 있다. 이 아이디어는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 주는 ‘마이너스 소득세’ 개념에 기반한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기본소득 논의와 연결될 수 있다. 다만, 일정 소득 미만에 대해서만 기본적인 소득 수준을 제공하는 개념이라는 측면에서 최근 논의되는 ‘보편적 기본소득(UBI)’과는 차이가 있다. 이와 더불어, 실업급여 역시 일자리를 잃은 상태에서 일정한 소득을 보존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유사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만약 기본소득 논의를 확대해 나간다면, 전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제공하는 ‘보편적 기본소득’ 방식보다는 실업급여와 근로소득장려세제를 강화하는 형태로 실제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실업자나 저소득층에 타겟팅된 ‘선별적 기본소득’ 논의를 설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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