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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너는 나의 심장, 생명, 꽃…" 아빠가 이런 엽서를?

기자
푸르미 사진 푸르미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23)

 
- #1. 막둥이의 기억
“아빠의 어디가 좋았어?”
엄마의 대답은 늘 같았다.
“키가 커서. 할아버지도 오빠들도 다 작고 왜소했거든.”

듣기론 비슷한 시기에 집안에서 소개해 준 의사 신랑감도 있었다는데, 키 크다는 이유 하나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보길도 촌사람을 택했다는 건 바로 이해되진 않았다. 그러나 의사 신랑감을 마다한 이유에 대한 엄마의 명쾌한 대답을 듣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키가 너무 작았어.”
키 큰 남자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결혼 후에도 변함없었고, 심지어 딸들이 결혼할 남자에게도 적용됐다. 언젠가 직장 상사로부터 소개받아 만난 이가 있었는데, 우연히 그의 뒷모습을 본 엄마가 “설마 너, 그렇게 작은 사람하고 만나는 거야? 너도 작은데?”라고 하시는 바람에 어차피 엄마가 반대할 텐데, 더 정들면 안 되겠다 싶어 헤어진 적도 있다.
 
- #2. 언니3의 기억
“언니, 비밀 하나 알려줄까? 아빠가 로또 당첨되면 할 일 1번이 뭔지 알아? 언니네 융자 다 갚아 준데.”

동생이 말해 준 비밀에 울컥했다. 언니들과 동생은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부모님 도움받아 배움을 지속했지만, 나는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늘 내게 생활력이 강하다 말씀하셨지만 솔직히 스스로 부족함을 느껴왔다. 크게 성공하자는 마음은 없었다. 내 자리를 지키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뿐. 일하다 보니 욕심도 생기고 경제적으로도 자립하니 떳떳했다. 이제 내 몫을 하게 된 것 같아 스스로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영국으로 어학연수 갈 때도 결혼할 때도 부족하지만 내 힘으로 준비했다. 결혼 후 이사를 거듭하며 아등바등 살면서 부모님께 손 벌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내가 작아 보이는 것 같아 이를 악물고 참았다. 청소년기엔 부모님 속을 많이 상하게 했지만, 지금은 열심히 잘살고 있다고 보여주고픈 마음이 더 컸다. 보란 듯 살고 싶은 마음, 힘들지만 숨기고 싶은 그 마음을 아빠는 알고 계셨던 것 같다.
 
“1등 당첨되면 우리 셋째 빚은 내가 다 갚아주지.” 아버지는 복권을 사면서 늘 다짐하듯 말씀하신단다. 아무리 내색하지 않고 잘난 척해도 아빠는 다 아신다. ‘내 새끼 많이 힘들구나!’
 
엄마는 자신보다 머리하나가 더 큰 180cm 장신의 아버지를 사랑했다. [사진 푸르미]

엄마는 자신보다 머리하나가 더 큰 180cm 장신의 아버지를 사랑했다. [사진 푸르미]

 
- #3. 언니2의 기억

어느 겨울이었다. 교회 예배를 마치고 여의도 광장(옛 여의도 공원)을 가로질러 집에 오는 길, 아버지는 갈색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걷고 계셨다. 우리는 오리털 파카에 털모자, 목도리, 털장갑으로 중무장했지만 오로지 양복 웃옷만으로 칼바람을 막아내고 계셨다. 신호등 앞에 잠시 멈춰 섰을 때, 혼잣말로 “오늘 많이 춥네!” 하셨을 뿐이었다.

“아빠, 왜 점퍼를 안 입고 오셨어요? 날도 추운데!”

말없이 웃기만 하셨다.
시집간 뒤 친정에 와 부모님 옷장을 뒤적이다 그때 일이 생각났다. 나는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여쭈었다.

“아빠는 왜 추운 겨울에 코트도 안 입고 양복만 입고 다니셨어요?”
“그때는 양복 위에 입을 코트까지 장만할 여유가 없었다. 가을 바바리에 속감 붙여서 입는 정도였지 결혼할 때 받은 코트 한 벌 말고 겨울 코트를 사 입은 일이 없다. 내가 열이 좀 많거든.”
아버지는 멋쩍게 웃으셨다.
 
- #4. 언니1의 기억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난생처음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 설악산에 놀러 가 콘도에서 자고 오기로 계획하고 아빠에게 말씀드렸다. 벼락같이 화를 내셨다. 나는 더 이상 말도 못 꺼내고 울음을 터뜨렸고, 끙끙 앓다 잠들었다.
 
새벽 5시, 엄마가 조용히 나를 깨웠다. 빨리 준비해서 출발하라고, 뒷일은 당신이 책임진다 하셨다.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급히 빠져나온 나는 버스에 타기 전 공중전화를 찾았다. 꾸지람이 두려웠지만 몰래 떠날 용기가 내겐 없었다. 전화를 받은 아빠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숨 막힐 듯 침묵이 흐른 뒤 말씀하셨다.
“산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화하면서도 자랑할 줄 모른다. 그것을 보고 오너라.”

대학 들어간 뒤 학교로 엽서가 온 적이 있다. 아빠였다. 엽서 보내신 것도 의외였지만 시 같았던 문장이 잊히지 않는다.
“너는 나의 심장이다. 눈이다. 생명이다. 꽃이다.”

 
’1등 당첨되면 우리 셋째 빚은 내가 다 갚아주지.“ 아버지는 복권을 사면서 늘 다짐하듯 말씀하신단다. 아무리 내색 않고 잘난 척 해도 아빠는 다 아신다. ‘내 새끼 많이 힘들구나!’. [사진 Pixabay]

’1등 당첨되면 우리 셋째 빚은 내가 다 갚아주지.“ 아버지는 복권을 사면서 늘 다짐하듯 말씀하신단다. 아무리 내색 않고 잘난 척 해도 아빠는 다 아신다. ‘내 새끼 많이 힘들구나!’. [사진 Pixabay]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불쑥 솟아오른 뒤통수로 이정표가 되어줬던 독보적인 키. 아무리 꽁꽁 언 손도 잡는 순간 스르르 녹일 정도로 따뜻했던 손. 크리스마스이브, 배둘레햄(?) 선발대회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매력적인 허리선. 달려가 업혀 그 넓은 등에 머리를 대는 순간 하늘을 나는 듯 부러울 게 없었던 단단한 어깨.
 
그 아버지가 내 눈앞에서 쓰러졌다. 마치 종이 인형이 꺾여 흘러내리듯 힘없이…. 그 찰나의 순간, 마치 몸이 얼어붙은 듯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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