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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필요할 땐 ‘성수당'으로 와요...화장지, 부채 파는 신개념 점집

지난 17일 ‘핫 플레이스’가 넘쳐나는 성수동 서울숲길에 수상한 기운의 가게 하나가 문을 열었다.  
트렌디한 맛집 거리로 유명한 성수동 서울숲길에 약 2주간 팝업 점집 '성수당'이 문을 연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트렌디한 맛집 거리로 유명한 성수동 서울숲길에 약 2주간 팝업 점집 '성수당'이 문을 연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입구에는 소원을 적은 종이가 펄럭이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대, 마치 마을 어귀의 서낭당을 연상시킨다. ‘무당 무(巫)’자를 크게 써놓은 쇼윈도에는 ‘위로가 필요할 때, 성수당’이라는 글이 붙어 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점집’이다.   

신개념 점집 팝업 프로젝트
친근한 우리 무속 문화 조명

물론 일반적이진 않다. 실내에선 향 냄새 대신 짙은 커피 향이 난다. 어두운 실내에는 굿을 하는 만신의 영상이 재생되고, 한쪽에는 부적을 그린 도장과 화장지‧볼펜‧부채 등의 판매 상품(굿즈)이 진열돼 있다.  
성수당 앞에 설치된 소원나무.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서낭당을 연상시키는 장치로 종이를 하나씩 떼어가 하루의 운세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성수당 앞에 설치된 소원나무.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서낭당을 연상시키는 장치로 종이를 하나씩 떼어가 하루의 운세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이곳은 브랜드컨설팅 전문회사 ‘필라멘트앤코’ 최원석 대표가 운영하는 팝업 매장 ‘프로젝트 렌트’다. 주 단위 혹은 월 단위로 작은 브랜드나 기획자에게 공간을 빌려주는 임대형 팝업 매장으로 가죽 브랜드의 공방, 문구 브랜드의 문구점 등이 수시로 열린다. 지난주에는 한 신인 여가수의 앨범 발매 이벤트가 열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점집 프로젝트 ‘성수당’이다.   
성수당 내부. 여느 카페와 다름 없이 현대적으로 꾸며놨다. 편하게 들러 도장 부적도 찍고 무속 문화와 관련된 영상물이나 책자도 볼 수 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성수당 내부. 여느 카페와 다름 없이 현대적으로 꾸며놨다. 편하게 들러 도장 부적도 찍고 무속 문화와 관련된 영상물이나 책자도 볼 수 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코로나 19도 그렇고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시기잖아요. 사람들은 마음이 불안할 때 점을 보러 가곤 하는데, 해답이 아니라 위로가 필요해서라고 생각했어요. 우리에게 익숙한 무속 문화를 재미있게 풀어 마음의 위안을 주고 싶었죠.”
최 대표는 “한국 문화의 원형이 들어있는 무속 신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보고 싶었다”며 “무엇보다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무당과 점집에 대한 편견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했다. 대중매체에서 그려지는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무당의 아니라, 문화 전승자로서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 
성수당 프로젝트는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 김가근 선생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성수당 프로젝트는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 김가근 선생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최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공부를 하다 보니 본래 무당의 역할이 미래를 점치는 것보다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상담사 역할이 더 강했음을 알게 됐다”며 현대인들의 왜곡된 시선을 아쉬워했다. 굿을 하는 것도 정신적 정화 과정인데 지금은 돈과 결부돼 그 목적이 변질됐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무당이 동서활인서(국립의료기관)에 소속된 공무원이었어요. 병 치료에 관련된 부적이 많은 이유죠.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지켜주는 영적인 의사였던 거죠. 조선 시대 때 유일하게 세금을 내는 여성 직업인기도 했고요.”
'성수당'은 무당의 본래 역할인 상담과 위로의 기능을 부각해 현대적인 콘텐트로 풀어낸 문화 프로젝트다. 사진은 성수당 내부. 스크린에선 김가근 선생이 굿하는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성수당'은 무당의 본래 역할인 상담과 위로의 기능을 부각해 현대적인 콘텐트로 풀어낸 문화 프로젝트다. 사진은 성수당 내부. 스크린에선 김가근 선생이 굿하는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성수당은 우리가 지켜가야 할 가치 있는 문화적 유산으로서 무속 신앙을 새롭게 조명한다. 다만, 진지한 접근보다 젊은층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재미있는 콘텐트를 더했다. 카페처럼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 한 편에는 8종류의 부적이 있다. ‘눈이 밝아지는 부적’ ‘정신이 맑아지는 부적’ ‘잠이 오지 않을 때’ 등 쉽게 풀이된 부적부터 만사형통을 의미하는 ‘적갑부’, 소원성취 개념의 ‘구령부’ 등 전문 용어의 부적도 있다. 변비 해결에 도움을 주는 ‘대변불통부’나 당첨·시험운을 좋게 해주는 ‘당첨부’는 재미 요소를 살린 부적이다.  
누구나 편하게 들러 엽서에 부적 도장을 찍어 볼 수 있다. 부적의 내용도 '눈이 밝아지는 부적' '대변불통부' 등 전통과 재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누구나 편하게 들러 엽서에 부적 도장을 찍어 볼 수 있다. 부적의 내용도 '눈이 밝아지는 부적' '대변불통부' 등 전통과 재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준비된 엽서에 부적 도장을 찍어 편지를 부칠 수도 있다. 자신을 위해 가져가는 부적은 로또 당첨을 기원하는 ‘당첨부’와 변비 해결을 위한 ‘대변불통부’가 제일 인기가 많다. 베스트셀러는 만사형통의 ‘적갑부’다.  
성수당의 부적 도장. 엽서에 찍고 편지를 써 지인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성수당의 부적 도장. 엽서에 찍고 편지를 써 지인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성수당의 세부 기획을 담당한 필라멘트앤코 정미경 디자이너는 “낯설고 조심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재밌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장 부적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근심 걱정을 흘려보내는 해우소(화장실) 휴지, 근심타파 부채 등을 상품으로 만들었다. 안쪽에는 작은 방을 마련해 하루 4명에 한해 예약을 받고 신점도 봐주고 있다.  
부적 도장 외에도 '근심을 덜어주는 부채', '화장지' 등의 상품 구성도 재미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부적 도장 외에도 '근심을 덜어주는 부채', '화장지' 등의 상품 구성도 재미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이번 성수당은 국가무형문화재 제82-2호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이수자인 김가근 선생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영화 ‘만신’으로 유명한 인간문화재 고 김금화 선생의 마지막 신딸로 서해안 풍어제 및 세월호‧삼풍‧대구 지하철 사건 등을 위로하는 나라 굿을 한 바 있다. 
성수당 팝업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는 김가근 선생. 성수당에선 하루 4명에 한해 예약을 받아 신점을 봐주고 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성수당 팝업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는 김가근 선생. 성수당에선 하루 4명에 한해 예약을 받아 신점을 봐주고 있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색동 옷 입으라고 했으면 안 했을 거야.”

최 대표가 김가근 선생을 찾은 건 지난해 11월. 우연히 점을 보러 들렀다가 비범한 기운의 김가근 선생에게 팝업 프로젝트를 제안했다고 한다. 세 번째 방문 때 비로소 승낙했다는 김 선생의 조건은 “전통을 고수하고 변형된 형태로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고 한다.  
“나를 만나러 들어오는 사람마다 잔뜩 긴장을 하는데 막상 들어와서 얘기하다 보면 무섭지 않다고 하더라고.” 
김가근 선생이 색다른 점집 프로젝트를 승낙한 이유는 편견을 없애고 싶어서다. 그는 “한국 샤머니즘 문화가 변질되면서 무당에게 저속한 이미지가 덧씌워졌다”며 “이질감이나 선입견 없이 무속 문화를 대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성수당 매장 앞 소원 나무도 김 선생의 아이디어다. 나무에 매달아 놓은 운세 종이를 사람들이 떼어 갈 수 있도록 했다. 김 선생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어 부적 도장을 찍고 소원 나무 종이를 뽑아가는 모습을 보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현재 성수당의 호응은 좋은 편이다. SNS로 받은 신점 예약은 한 시간도 안 돼 모두 마감됐다. 여느 매장과 다른 콘텐트를 보러 들어오는 이들도 많다.  
성수당에 들른 사람들. 주로 부적 코너에서 원하는 부적을 찍어 간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성수당에 들른 사람들. 주로 부적 코너에서 원하는 부적을 찍어 간다. 사진 필라멘트앤코

 
최원석 대표는 “만신 김금화 선생님이 생전에 늘 하셨던 말이 ‘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라는 말”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미신으로만 평가 절하된 우리 무속 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팝업은 28일까지 진행된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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