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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증세를 다음 정권에 슬쩍 떠넘길건가

고현곤 논설실장

고현곤 논설실장

코로나 불황이 깊고, 길다. 급한 대로 재정 동원은 불가피하다. 불요불급한 세출을 줄이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적자 국채를 발행해 메워야 한다. 하지만 적자 국채를 마냥 찍을 순 없다. 어차피 빚이고, 못 갚으면 젊은이들이 물려받는다. 재정적자가 너무 늘면 남미·남유럽처럼 국가 부도가 날 수 있다. 재난지원금 몇십만원 줬다고 생색낼 일도, 받았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올 세수 펑크 20조 재정적자 112조
적자국채와 핀셋증세론 감당 못해
빅3 세목의 보편 증세 공론화해야
정부 인기 떨어진다 덮을 일 아냐

적자 국채로 버틸 수 없다면? 세입을 늘려야 한다. 불황으로 세입은 외려 줄고 있다. 정부는 올해 12조2000억원 세수(稅收) 감소를 예상해 추경예산에 반영했다. 실제로는 올해 세수 펑크가 20조원을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고 이 불황에 국세청이 세무조사 나서 탈탈 털 수도 없다.  
 
세입을 늘리는 방법으로 비과세·감면 축소가 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운 박근혜 정부가 이 방법을 썼다. 비과세·감면을 줄여 15조원을 마련하겠다고 큰소리쳤다가 용두사미로 끝났다. 비과세·감면마다 사연이 있다. 없애는 게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면세유를 줄이면 농어민이 반발한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한도를 축소하면 봉급생활자가 들끓는다. 지금은 다들 어려워 감면을 늘려야 할 판이다.
 
다른 방법은 부자 등 특정 계층에게 세금을 더 걷는 ‘핀셋 증세’가 있다. 대상이 한정돼 있어 증세해도 거둘 수 있는 돈이 얼마 안 된다. 일례로 부동산 부자 대상의 종합부동산세는 지난해 2조6000억원 걷혔다. 50% 늘린다 해도 1조3000억원이다. 올해 재정적자가 112조원이다. 자잘한 세목(稅目) 한두개 손대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결국 남는 건 큰 세목의 세율을 올리는 ‘보편 증세’다. 국세의 77%를 차지하는 소득세(지난해 83조원)·법인세(72조원)·부가가치세(70조원) 빅3가 대상이다. 이 또한 쉽지는 않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2018년 40%에서 42%로 이미 한차례 올랐다. 과세표준 8800만원 이상의 세율도 35%로 높은 편이다. 세율을 인상하는 게 어려우면 세율 구간을 낮춰 더 걷는 방법(예컨대 35% 구간을 8800만원에서 7000만원으로)이 있기는 하다. 조세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봉급생활자 근로소득세는 박근혜 정부 때 의료비·교육비·보험료 등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사실상 증세를 했다. 그 유명한(?) ‘고통 없이 거위 깃털 뽑기’ 증세다. 근소세는 2014년 25조원에서 2019년 38조원으로 큰 폭 증가했다. 추가 인상은 부담스럽다. 전문가들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민 개세(皆稅)의 원칙을 주장한다. 근소세를 내지 않는 저소득자(봉급생활자의 39%)에게 다만 얼마라도 거둬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세월 좋을 때 손봤어야지, 요새 같은 불황엔 가혹하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2018년 22%에서 25%로 인상됐다. 선진국이 법인세를 내릴 때 우리는 거꾸로 올렸다. 미국(21%)·일본(23.4%)보다 높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1.9%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 이후 리쇼어링(해외 진출기업의 국내 유턴)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법인세를 깎아주면 깎아줬지, 더 올리기는 쉽지 않다. 3대 세목 외에 상속세(50%)는 일본(55%)에 이어 OECD 2위다. 지금도 너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손대지 않은 건 1977년 박정희 정부에서 도입한 부가세 10%뿐이다. 부가세를 인상하면 세수에는 큰 도움이다. 12%로 2%포인트 올리면 단순 계산으로 14조원가량 더 걷힌다. 고부담 고복지를 추구하는 북유럽의 부가세는 24~25%다. OECD 평균도 19.3%로 우리의 두배 수준. 부가세를 올릴 여지는 있는 셈이다. 문제는 부가세를 인상하면 상품·서비스 가격이 오른다는 점이다. 국민, 특히 저소득층에 부담이다. 자영업자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큰 정부’와 ‘중부담 중복지’를 실현하려면 부가세나 소득세 인상의 공론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탄소세 같은 세목을 신설하는 방법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증세는 인기 없는 정책이다. 2022년에 대통령선거도 있다. 증세가 경기회복을 막을 수도 있다. 특히 부가세 인상은 정권의 명운을 걸고,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다. 77년 부가세 도입이 민심 이반을 불러 79년 부마항쟁과 10.26사태로 이어졌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에선 97년 하시모토 내각 등 소비세를 손댄 내각이 예외 없이 선거에 참패, 정권을 내줬다. 아베 내각도 지난해 10월 소비세를 8%에서 10%로 올린 이후 코로나 부실 대응이 겹쳐 최악의 위기다.
 
정부가 ‘국민이 봉이냐’는 반발을 뚫고, 증세를 단행할 역량과 뱃심이 있는지 의문이다. 올해 ‘5년 중기재정계획’에는 증세가 포함되지 않는다. 골치 아픈 증세를 다음 정권에 슬쩍 떠넘기려는 움직임이다. 빚더미와 함께. 하지만 이대로 쉬쉬하며 적당히 덮을 일이 아니다. 국민에 나라 곳간 사정을 설명하고, 증세를 하든지 그게 자신 없으면 씀씀이를 줄이든지 결단이 필요하다. 책임감 있는 정부라면 돈 풀면서 생색나는 일만 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고현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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