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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사진과 그림에 담긴 작가의 의도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전화기에 카메라 기능을 더한 것인지 카메라에 전화 기능을 더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휴대폰 덕에 요즘의 사진 촬영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이다. 예전과 달리 비용이 전혀 발생하지 않기에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사진 한장의 소중함이 사라지는 것 같은 아쉬움은 있지만 사진 촬영이라는 ‘예술 활동’을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기술적 진보가 가져온 놀라운 축복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휴대폰의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니 우연찮게 지인들의 사진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 사진에서 나는 종종 사진 속의 인물이나 피사체보다 그 사진을 찍은 이의 마음과 의도를 읽는다. 광각렌즈를 장착하는 휴대폰의 특성상, 네 귀퉁이의 피사체는 일그러질 수밖에 없는데 그 귀퉁이에 누군가 찍히도록 앵글을 취하는 것은 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무릎을 굽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셔터를 누른 사진을 보며 엄마·아빠의 사랑에 미소짓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머리 큰 가분수로 만든 무성의한 사진을 보며 혀를 찬다. 연인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을 보며 애정을 가늠하고 난잡한 배경처리를 보며 그의 무심함을 읽는다.
 

시선을 지배하는 화각과 구도
틀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보다
숨은 의도 파악하려는 노력 필요

중학교 1학년 가을이었던가? 읍내 음악감상실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듣고 무엇에 끌린 듯 음반 가게로 향했다. 그날이 음악과 동행하자 마음먹은 첫날이었다. 주머니를 털어 난생처음 구매한 그 음반은 4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연구실 한편에 고이 자리하고 있다. 1973년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발매한 그 음반의 표지에는 십자가에 달린 채 어두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정사각형으로 인쇄되어 있다. 그땐 몰랐다. 그 그림이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십자가의 성 요한의 그리스도’(1951)이며 전체가 아닌 윗부분만 인쇄한 것이었음을. 언뜻 잘 이해되지 않는 이 그림의 제목은 가톨릭 성인 ‘십자가의 성 요한’(16세기)의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음을 밝힌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천편일률적 앙각(仰角) 구도가 아닌 두 시 방향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부감(俯瞰) 구도를 취한 이 그림이 화가가 아닌 신학자에 의한 것임이 놀라울 따름이다. 달리가 얻은 아이디어는 다름 아닌 이 화각(畵角)이었고 그는 이를 살짝 틀어 정면에서 내려다보는 부감 구도로 바꾸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림의 화각에 따라 감상자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제재로 한 그림들이 한결같이 앙각 구도를 취한 것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진 그에 대한 감사와 경외감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즉 ‘사람의 시선’이다. 반면 성 요한과 달리의 부감 구도는 내 짧은 소견에 ‘인간을 사랑하기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대속의 제물로 내어 준 신의 시선’이다. 못 박힌 손과 발, 머리에 씌워진 가시관, 창에 찔린 옆구리에 흐르는 성혈, 그리고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건장하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그려진 그리스도는 신의 마음속에 각인된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이리라.
 
이렇게 그림이나 사진에는 그 틀 안에 포착된 대상에 대한 작가의 시선과 감정, 그리고 그 제재를 통해 구현된 순수한 아름다움이나 구체적 메시지가 담긴다. 화각을 눈높이로 할지, 앙각으로 할지, 부감으로 할지는 작가의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그 대상을 향한 작가의 입장과 표현 의도에 따라 결정된다. 즉 화가는 화각을 지정함으로써 일차적으로 감상자의 시선을 지배한다. 시선을 분산시키는 요소는 화면 밖으로 밀어내고 정밀한 구도를 통해 감상자의 시선을 의도한 대로 유도한다. 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작곡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음들을 테이블 아래로 버리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브람스의 말이다.
 
문학과 예술을 접하며 그 위대한 작가들과의 교감을 넘어 지배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그 작품의 틀이 이끄는 대로 눈과 귀를 맡기고 따라가다 보면 그리될 수밖에 없다. 그 순간이 꽤 짜릿하지만 냉정하게 한 걸음 물러서서 작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 또한 매우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더 높은 경지의 감상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 번쯤 작가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 지정한 화각과 교묘하게 시선을 유도하는 구도에 무력하게 끌려다니기보다 그 영악한 의도까지 파악하는 심미안과 이성적 판단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어찌 문학과 예술뿐이겠나만….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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