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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펜 포장해 먹고살았죠” 코로나에 공장 간 여배우의 컴백

지난해 충북 단양 만종리 대학로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옥자 공연 모습. [사진 단양군]

지난해 충북 단양 만종리 대학로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옥자 공연 모습. [사진 단양군]

 
충북 단양군 영춘면 만종리 대학로극장 단원인 김미숙(52)씨는 귀농 연극인이다. 연극배우 30년 경력의 김씨는 원래 서울 대학로에서 활동했었다. 그러다 2015년 4월 동료였던 허성수(53) 감독이 오지마을인 단양 영춘면에 만종리 대학로극장을 세우자 합류했다. 김씨는 농사와 연극 연습을 병행하며 그동안 250여 차례 공연했다.

충북 단양 만종리대학로 극장 21일 올해 첫 공연
문화재단 공연예술단체 온라인 지원 사업 선정
단원들 생계 위해 막노동, 학습지 아르바이트
배우들 "무대에 설 수 있어 행복하다"

 
 하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한 번도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김씨는 “공연 수익이 끊긴 데다 봄에 심은 농작물은 수확기까지 기다려야 해서 생계가 막막했다”며 “단양군 매포읍에 있는 형광펜 공장에서 3~4월 두 달 간 포장라인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고, 농장 일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허 감독에게 “곧 공연할 수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연극 무대를 동영상으로 촬영해 온라인으로 보여주자는 제안이었다. 김씨는 “비록 무관객 공연이지만 무대에 설 수 있어서 행복하다”며 “서랍에 넣어뒀던 대본을 다시 꺼내 읽고, 저녁 시간 짬을 내 리허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양군 산골마을에자리 잡은 만종리 대학로극장이 6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연다. 20일 단양군에 따르면 만종리대학로 극장은 올해 첫 공연인 연극 ‘옥자’를 오는 21일 무대에 올린다. 공연은 코로나19 여파로 관객 없이 진행된다. 극단 측은 영상을 녹화한 뒤 이달 말 온라인으로 연극을 선보일 예정이다.  
만종리 대학로극장은 단양 영춘면의 한 우체국 건물을 공연장으로 꾸몄다. [사진 허성수 감독]

만종리 대학로극장은 단양 영춘면의 한 우체국 건물을 공연장으로 꾸몄다. [사진 허성수 감독]

 
 만종리 대학로극장은 서울 대학로의 비싼 임대료를 피해 2015년 단양 영춘면 만종리로 이사했다. 이곳은 극단 대표를 맡은 허성수 감독의 고향이다. 허 감독은 “대학로의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 못 해 문 닫는 소극장이 늘어났다”며 “생계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연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귀농 연극인이 됐다”고 말했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주민 190여 명이 살고 있다.
 
 허 감독과 단원 6명은 9900㎡ 크기의 밭을 빌려 콩·감자·마늘을 재배하고 있다. 이들은 마을 주민에게 임대한 집에서 생활한다. 옛 우체국 건물과 비닐하우스를 공연장으로 꾸며 토요일마다 정기 공연을 해 왔다. 이들은 충북의 오지마을 70여 곳을 돌며 순회공연도 했다. 산골에서 연극을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인근 마을은 물론 전국에서 100여 명의 관객이 매주 토요일 만종리를 찾았다. 극단 측은 관람료 1만원을 받고, 커피를 대접한다. 개관 때부터 지난해 12월 29일까지 600여 차례 공연했다.
 
 만종리 대학로극장에 한파가 불어 닥친 건 코로나19가 시작된 지난 1월 말부터다. 허 감독은 “코로나가 마을에 퍼질까 봐 외지 관객이 오가는 정기 공연을 할 수 없었다”며 “어려워도 한두 달만 더 버텨보자고 했던 게 어느새 6개월이 지났다”고 말했다.
 
 극단의 주 수익원인 공연이 중단되자, 단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학습지 교사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공장 일용직으로 일해 돈을 벌었다.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단원도 생겨났다. 허 감독은 “혼자 극장을 지키면서 밭 관리를 하고, 연극 기획안을 짜며 시간을 보냈다”며 “농장 일을 돕던 단원들은 수확기까지 별다른 수익이 없게 되자 저마다 살길을 찾으러 떠났다”고 했다.
충북 단양 만종리 대학로극장에서 지난해 공연한 연극 옥자. [사진 단양군]

충북 단양 만종리 대학로극장에서 지난해 공연한 연극 옥자. [사진 단양군]

 
 허 감독과 단원들이 다시 만나게 된 계기는 공연예술 지원 사업 덕분이다. 충북문화재단은 이달 초 ‘코로나19 온라인공연 작품제작지원 사업’으로 37개 연극·음악·무용 단체를 선정했다. 만종리 대학로극장은 이 사업에 선정돼 1100여만 원 받고, 온라인 송출 기회도 갖게 됐다. 녹화한 연극 영상은 충북 인터넷 방송과 유튜브에 게시된다. 온라인 콘텐트 저작권은 문화재단이 갖는다.
 
 연극 ‘옥자’는 남편을 여의고 자식들과 떨어져 산골 마을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주변 할머니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허 감독은 “코로나에 지친 주민들이 온라인 연극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으셨으면 좋겠다”며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돼 평화로운 산골에서 공연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단양=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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