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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곡 설레며 듣던 ‘빽판’의 추억

빽판의 전성시대

빽판의 전성시대

빽판의 전성시대
최규성 지음

빽판 역사가 팝송 수입 역사
인기 높을수록 빽판 많이 제작돼

태림스코어
 
1970년대 불법 음반이 판을 치던 시절 영국 록밴드 롤링 스톤스의 ‘스티키 핑거스’(1971) 앨범이 정품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앨범 재킷에 달린 청바지의 지퍼를 내려보는 것. 흰색 삼각팬티가 등장한다면 바다 건너온 진짜였고, 지퍼는커녕 밋밋한 평면이라면 세운상가 어디선가 찍어낸 가짜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 시절 음악애호가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겪었을 이른바 ‘빽판의 추억’이다.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인 저자는 “사실 빽판은 존재가치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2009년 『한국 인디 뮤지션 사진집』을 시작으로 『대중가요 LP가이드북』(2014), 『골든인디컬렉션』(2015), 『걸그룹의 조상들』(2018) 등 한국 대중음악사를 집요하게 파고들던 그에게 빽판은 흑역사로 여겨진 탓이다. 수집광인 그에게는 역사가 깃든 물건이 더 소중할뿐더러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1966년 일본에서 발매된 이미자의 ‘사랑의 붉은 등불(동백아가씨)’ 싱글. [사진 최규성]

1966년 일본에서 발매된 이미자의 ‘사랑의 붉은 등불(동백아가씨)’ 싱글. [사진 최규성]

1966년 대도레코드에서 발매한 이미자 일본어버전 ‘동백아가씨’ 7인치 빽판(왼쪽)과 같은 해 톱히트레코드에서 발매한 일본어버전 빽판. [사진 최규성]

1966년 대도레코드에서 발매한 이미자 일본어버전 ‘동백아가씨’ 7인치 빽판(왼쪽)과 같은 해 톱히트레코드에서 발매한 일본어버전 빽판. [사진 최규성]

하지만 2018년 청계천박물관에서 진행된 ‘메이드 인 청계천: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 전시가 생각을 바꿔놨다. 빽판 앞에서 저마다의 추억을 떠올리는 관람객들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빽판을 통해 처음 팝 음악을 접했고, 금지곡을 들었으며, 음악에 빠져들게 됐음을 알게 됐다. 빽판의 역사가 곧 팝송의 유입 역사이자 한국 음악사와 맞닿아 있다고 판단한 그는 그동안 무자비하게 버렸던 빽판을 다시 찾아 나섰다.
 
그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빽판’의 유래가 된 ‘동백아가씨’ 일본판을 찾아냈고, 1966년 일본 정서에 맞춰 리요시코의 ‘사랑의 빨강 등불’이라 표기된 7인치 LP 빽판도 손에 넣었다. 당시 음악 관계자들은 “반일 감정을 고려해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하얀 라벨의 음반이라 일컬은 데서 나온 말”이라고 설명했다. 은밀하게 뒤에서 제작됐다 하여 ‘Back’판이라는 설도, 반복된 복제로 뿌옇게 변해 ‘白’판이라는 설도 있다.
 
700여장에서 시작한 LP는 1년 반 만에 5000여장으로 늘었다. 1950년대 시작된 국내 빽판의 역사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춤바람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거나 60년대 신진과 미미레코드의 ‘탑 튠 쇼’ 시리즈는 100편이 훌쩍 넘는 시리즈로 제작된 것을 보면 가히 흥이 넘치는 민족이구나 싶을 정도.
 
엘비스 프레슬리가 출연한 1965년 영화 ‘멋대로 놀아라’의 주제곡 앨범. [사진 태림스코어]

엘비스 프레슬리가 출연한 1965년 영화 ‘멋대로 놀아라’의 주제곡 앨범. [사진 태림스코어]

같은 해 대도레코드에서 발매된 ‘멋대로 놀아라’ OST 빽판. [사진 최규성]

같은 해 대도레코드에서 발매된 ‘멋대로 놀아라’ OST 빽판. [사진 최규성]

당시 얼마나 많은 빽판이 제작됐는지가 곧 인기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1965년 영화 ‘멋대로 놀아라’에서 미국 가수 겸 배우 엘비스 프레슬리가 신나는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스웨덴 출신 상대역 앤 마그렛은 편집 음반의 흥행보증수표로 떠올랐다. 69년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첫 내한공연 이후에는 미원에서 제작한 공연실황 음반은 물론 크라운제과에서 고객 사은품으로 만든 빽판까지 등장했다.
 
1969년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 내한기념으로 크라운제과에서 사은품으로 만든 빽판. [사진 최규성]

1969년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 내한기념으로 크라운제과에서 사은품으로 만든 빽판. [사진 최규성]

가장 많이 제작된 것은 영국의 비틀스로 100가지가 넘는다. 68년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처음으로 함께 만든 앨범인 ‘언피니시드 뮤직 No.1 투 버진스’는 그중에서도 희귀본으로 꼽힌다. 파격적인 누드 사진으로 전 세계에 파장을 불러왔으나 한국에서는 신문지로 주위 부위를 가리는 등 자체 검열을 한 것. 저자 역시 “한 외국인이 100만원에 사겠대도 주인이 팔지 않아 아쉽게 돌아서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본인도 간신히 사진만 찍었단다.
 
1964년 미미레코드에서 발매된 ‘TOP TUNE SHOW VOL.7 그녀 손목 잡고 싶어’ 재반. [사진 최규성]

1964년 미미레코드에서 발매된 ‘TOP TUNE SHOW VOL.7 그녀 손목 잡고 싶어’ 재반. [사진 최규성]

72년 음반법 시행과 81년 대대적 단속에도 멈출 줄 몰랐던 빽판의 전성시대는 90년대 접어들어 끝이 난다. 91년 BMG를 시작으로 세계 5대 메이저 음반사가 직접 배급을 담당하고 빽판의 제작비도 올라가면서 더는 경쟁력을 갖지 못하게 된 탓이다. 560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이지만 원판과 빽판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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