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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가치관의 액상화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어릴 적 다니던 중학교는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등굣길 중간 꽤 가파른 언덕을 넘어야 했던 기억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아직 덜 자란 키로 올려다보면 까마득히 높아만 보이는 언덕을 견디기 위해 쓴 방법은 입학 선물로 받은 손목시계로 기록을 재는 것이었습니다. 지각하면 받을 꾸중이 무섭기도 했거니와 걸리는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당기는 재미도 붙어 숨이 가빠도 멈추지 않고 오르는 일을 1년 남짓하고 나니 가냘픈 허벅지에 조금씩 근육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팬데믹이 바꿔놓은 우리의 일상
기존 가치관 흔들며 변화 요구
나은삶 위해 가치관 의심해보고
세상에 꼭 필요한 것만 선택해야

아이들은 많고 학교의 수는 부족해 통학의 거리는 늘 멀었기에 등굣길마다 불만으로 툴툴대던 시절, 예기치 않게 얻은 건강의 기초 추억을 갑자기 떠올리게 된 것은 아침에 일어나 온라인 수업에 로그인하기까지 채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중학생 아이의 마른 다리 때문이었습니다. 갑자기 온 세상에 찾아온 바이러스로 통 나다니질 못하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있는데다 한참 키가 클 때라 살이 붙을 새 없이 길어지기만 한 아이를 보며 “나 때는 말야”라고 경험담을 이야기하려다 옛날 사람처럼 보일까 하여 멈추고 말았습니다. 온라인 수업에서 중학생은 웹캠으로 얼굴을 보여주어야 하니 고양이 세수라도 합니다만 대학생들은 아예 카메라를 켜지도 않고 이불 속에서 듣는다 합니다.
 
출퇴근은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예전 한 회사에서 출근시간에 늦은 직원들이 허둥지둥 뛰어들어오는 것을 잡아서 규칙을 어기게 된 이유를 인터뷰한 후 사내 방송을 통해 전 직원들이 보게 한 일화가 기억납니다. 출근기록기에 종이 카드를 넣고 찍던 것에서 지문과 같은 생체 정보로 인증하는 방식으로 진화했지만 어쨌든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반드시 모여서 일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또한 팬데믹 시대를 맞아 집에서 일하거나 공유 오피스를 빌려 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몇몇 회사들은 집안에 사무용 환경을 만들도록 직원들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앞으로 영구적으로 재택근무 방식으로 일할 것이라 선언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하긴 집과 일하는 공간이 분리되어 아침에 집을 나오고 저녁에 돌아가는 행위가 나온 것 역시 산업혁명 이후라니 출퇴근도 그리 오래된 관습은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로 보아 최근의 풍습인 출퇴근 역시 우리는 별생각 없이 의무라 생각해서 지켜왔지만 다른 방법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요즈음 알게 된 것입니다.
 
빅데이터 6/19

빅데이터 6/19

아직은 급진적인 주장으로 인식되거나, 필요성을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도 재정의 부담이나 이해단체 등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혀 단기간 내에 실행되지 못하던 일들이 코로나19 위기 해결책으로 여겨지며 속도감 있게 진행되기도 합니다. 기본소득이나 비대면 의료와 같이 지금껏 가졌던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방안들이 제도권에서 활발히 논의되며 부쩍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믿고 있던 가치관을 흔드는 지금과 같은 상태를 “가치관의 액상화”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지진 이후에 지반이 액체와 같은 상태로 변화하는 현상을 액상화라 하듯이, 단단한 반석과 같던 우리의 가치관이 환경의 변화와 팬데믹 같은 위기를 통해 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가치관의 변화는 삶의 변화에서 출발하기도,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1980년대 후반 은행원으로 일하던 덕선이 아버지가 “금리가 쪼까 떨어져서 한 15%밖에는 안 하지만”이라며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로금리’라는 말이 전 세계에서 나오고 있는 뉴노멀 시대, 열심히 일해 모은 목돈의 이자 수입만으로 노후생활을 꿈꾸려던 지난 산업시대 일꾼들은 은퇴 후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단단히 믿고 있던 안전판이 와르르 무너지며 발밑이 꺼지는 것 같은 경험은 인생을 살며 한 두 번쯤 있게 마련이지만, 저금리의 변화는 모두가 한꺼번에 겪으며 근로소득의 중요성과 은퇴의 시점에 대해 다른 가치관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공통의 경험은 더욱 빠른 가치관의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모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과 관점을 함께 시도하는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기존의 가치관을 다시 한번 의심해보고 숙고해 새로운 세상에 꼭 필요한 것만 선택하는 현명한 합의가 소중한 시기가 바로 지금입니다.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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