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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전 그의 의미심장 한마디…김연철 떠나자 임종석이 뜬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성동구 레노스블랑쉬에서 열린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회'에 참석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뉴스1]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성동구 레노스블랑쉬에서 열린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회'에 참석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뉴스1]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또다시 화제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전날(17일) 전격 사의를 표명한 뒤 후임자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다. 청와대를 떠난 지 1년 5개월,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통일운동)로 돌아간다”며 4·15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지 7개월 만이다.
 
임 전 실장이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건 정치인 출신 장관이 과감하게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주길 바라는 여권 주류의 기류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가 지난달 30일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와 대담하면서 했던 말 때문이기도 하다. “남북문제에서의 어떤 변화와 함께 정치적 역할이 있으면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꼭 제도정치여야 한다면 솔직하게 설명드리고 그걸 할 겁니다.”(『창작과 비평 188호』)
 
KBS가 지난 17일 휴전선 인근 비행금지선(NFL)에 인접한 파주시 문산읍의 상공에서 폭파 후 뼈대만 남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모습을 촬영해 보도했다.(KBS 1TV 캡처) [뉴스1]

KBS가 지난 17일 휴전선 인근 비행금지선(NFL)에 인접한 파주시 문산읍의 상공에서 폭파 후 뼈대만 남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모습을 촬영해 보도했다.(KBS 1TV 캡처) [뉴스1]

마침 북한이 지난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대남도발을 감행하면서 ‘남북문제에서의 어떤 변화’가 생겼다. 지난 4·15 총선 때 지원 유세로 잠시 모습을 드러냈던 임 전 실장의 ‘정치적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친문 성향의 한 재선의원은 “실행력 있는 통일부 장관이 들어설 때다. 그런 면에서 임 전 실장을 생각해볼 만하다”고 말했고, 안보통인 한 초선의원은 “남북관계에서 뭔가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며 임 전 실장을 적임자로 꼽았다.
 
임 전 실장과 함께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그룹 핵심이었던 이인영·우상호 민주당 의원이나, 임 전 실장의 오랜 친구이자 통일부 장관(이재정) 정책보좌관 출신인 홍익표 민주당 의원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그러나 여권에선 임 전 실장을 더 유력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현재 북한의 강경 입장을 대변하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그의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카운터파트였다. 실제 임 전 실장은 지난해 초 김연철 장관 임명 때도 유력한 후보군으로 거론됐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8년 2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반얀트리클럽앤스파 서울 호텔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 등 북측 대표단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8년 2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반얀트리클럽앤스파 서울 호텔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 등 북측 대표단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386세대로 불리는 우리에게 남북통일은 언제 어디에서나 심장을 뛰게 하는 인생의 이정표이자, 동시에 평생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이라는 임 전 실장의 말처럼, 통일운동에 대한 그의 애착은 남다르다. 그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한양대 총학생회장) 시절인 1989년 당시 전대협 구성원이던 임수경 전 민주당 의원의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를 주도했다. 임 전 의원의 불법 방북을 기획한 혐의로 임 전 실장은 당시 3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 수배·수감 생활 중 동유럽 몰락과 독일 통일 소식을 접한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같은 분단국의 청년이건만 나는 통일운동을 하다가 쫓기는 신세였고, 그 친구들은 분단의 상징 베를린 장벽을 손수 부숴내고 있었다. 당시로선 마냥 부러울 뿐이었다.”(『장산곶매, 평화로 날다』)
 
임 전 실장은 출소 후 시민운동계에서 활동하다 2000년 16대 총선을 계기로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다. 임 전 실장은 17대 국회까지 재선 의원을 지내며 남북교류협력법의 첫 개정과 남북관계발전법·개성공단지원법 제정을 주도했다. 남북 간 주민접촉을 승인제가 아닌 신고제로 하고, 남북 간 거래를 민족 내부거래로 보는 등의 내용이 이때 남북교류협력법에 명시됐다.
 
1990년 2월 26일 임종석 전대협 의장이 첫 공판을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며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0년 2월 26일 임종석 전대협 의장이 첫 공판을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며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불법 방북했던 임수경(당시 대학생) 전 민주당 의원과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통해 월경하고 있다. [중앙포토]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불법 방북했던 임수경(당시 대학생) 전 민주당 의원과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통해 월경하고 있다. [중앙포토]

남북관계에 대한 그의 철학은 자서전에 잘 나타나 있다. “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태에서는 한반도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실상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 한반도 정세의 핵심변수가 북한이고, 우리 입장에서 남북관계는 이 변수를 통제하는 유일한 수단이다.”(『장산곶매, 평화로 날다』) 
 
임 전 실장은 이남주 교수와 대담에서도 “유엔 제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일을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한다. 제재의 판정 기준을 월경(越境)이 아닌 이전(移轉)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남북 간 적극적인 교류협력 추진을 주장했다.
 
2018년 9월 6일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평양정상회담 준비위원회 1차 회의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9월 6일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평양정상회담 준비위원회 1차 회의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다만 임 전 실장의 주변에선 그의 입각 가능성을 낮게 점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임 전 실장의 한 측근은 18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실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거 같지도 않고 향후에도 부름이 있을 거라고 보진 않는다”며 “임 전 실장은 남북관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주변국의 눈치를 살피거나 야당의 견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공적 영역보다 당분간 민간 영역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것이란 뜻이다. 
 
임 전 실장은 실제 지난 1일 자신이 2004년 설립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 이사장에 재취임한 지 채 한 달이 안 됐다. 이미 장관급인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그가 부총리급이 아닌 장관직을 다시 맡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2018년 남북관계의 훈풍을 주도했던 임 전 실장이지만,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교착상태가 장기화할 경우 자칫 그에게 통일부 장관직은 ‘독이 든 성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찰의 수배를 받아오던 전대협 의장 임종석(오른쪽)군과 평양축전 준비위원장 전문환(가운데)군이 1989년 6월 29일 집회에 모습을 나타내 통일 선봉대로부터 건네받은 한라산의 물과 돌멩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경찰의 수배를 받아오던 전대협 의장 임종석(오른쪽)군과 평양축전 준비위원장 전문환(가운데)군이 1989년 6월 29일 집회에 모습을 나타내 통일 선봉대로부터 건네받은 한라산의 물과 돌멩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그가 울산시장 선거개입 및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사건 피의자로 검찰 수사 받고 있는 점도 변수다. 수사·재판과 별개로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 사건과 관련한 의혹이 새롭게 부상할 가능성도 부담이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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