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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를 아세요" 막말 뒤엔…방송 시사프로 ‘마약팬덤’ 경쟁

김갑수 시사평론가 [중앙포토]

김갑수 시사평론가 [중앙포토]

지상파 방송사가 의욕적으로 선보인 신(新) 시사프로그램들이 잇따라 여론의 역풍에 휩싸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사 강화’를 앞세우며 관련 프로그램을 신설하거나 기존 프로그램에 유명 평론가를 투입했지만 기대 효과보다는 논란거리로 주목받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계륵(鷄肋)’ 신세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KBS는 15일 ‘사사건건’에 고정 출연해온 시사평론가 김갑수씨를 하차시켰다. 8일 불거진 막말 논란 때문이다. 그는 이날 방송에서 대북 전단을 옹호하는 탈북민 출신 지성호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분수를 아세요. 우리가 받아주고 의원까지 시켰으면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이에 지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북한 정권의 냉혹한 인권 현실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김 평론가의 말처럼 탈북민을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논란이 커지자 KBS는 ‘사사건건’의 앵커가 이틀 뒤 유감을 표명한 데 이어 김씨를 하차시키며 진화를 서둘렀다.
 
앞서 지난 5월 MBC FM은 33년간 ‘싱글벙글쇼’의 진행을 맡아온 강석ㆍ김혜영씨를 하차시키고 시사평론가 정영진씨와 가수 배기성을 낙점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정씨가 과거 EBS 프로그램에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인해 ‘여혐’ 논란에 휩싸였던 게 재조명되면서다. 시청자 항의가 쇄도한 끝에 정씨 하차로 결론이 났지만 서민들의 애환과 사연 중심으로 꾸려온 ‘싱글벙글쇼’ 이미지는 이미 상처입은 뒤였다.
 
KBS 1TV 시사 프로그램 '오늘밤 김제동' [연합뉴스]

KBS 1TV 시사 프로그램 '오늘밤 김제동' [연합뉴스]

지난해 8월엔 출범 때부터 잡음이 일었던 KBS1 ‘오늘밤 김제동’이 1년만에 폐지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김제동씨가 회당 350만원(연 7억원)에 시사 마이크를 잡으면서 고액 출연료 논란이 불거진 데 이어 지난해 4월 강원도 대형 산불 당시 특보를 중단하고 4ㆍ3 보궐선거를 다루는 ‘오늘밤 김제동’을 방송해 비난이 확산됐다.
 
한번 논란이 되면 프로그램 존폐까지 위협받는 ‘리스크’에도 방송사들은 예능을 줄이고 시사 프로를 늘리는 시도를 계속한다. SBS FM은 최근 음악방송 ‘오빠네 라디오’와 ‘김창렬의 올드스쿨’을 폐지하고,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진행하는 ‘이철희의 정치쇼’와 시사와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을 표방한 ‘시사특공대’를 신설했다.  
 
 
 
연예인 MC를 정치 셀럽으로 교체하는 식으로 프로그램 물갈이를 꾀하기도 한다. 지난 2월엔 KBS2 ‘거리의 만찬’이 가수 양희은, 개그우먼 박미선 등을 하차시키고 방송인 김용민을 새MC로 낙점했다. 하지만 양희은씨가 교체 과정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역풍이 일어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돼 버렸다.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존재해왔지만 최근의 선호 현상은 유난스러울 정도다. 이를 두고 다매체 시대에 지상파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식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 방송 관계자는 "요즘 오락거리는 유튜브 등 다른 대안 매체에 더 풍성하다. TV와 라디오가 그나마 통하는 게 시사프로그램이고 특히 라디오의 경우 정치인들이 출연을 원해서 캐스팅 문제도 양호하다"고 말했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공식 홈페이지 [홈페이지 캡쳐]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공식 홈페이지 [홈페이지 캡쳐]

 
시사 셀럽들이 일종의 ‘팬덤’을 형성하면서 이를 프로그램 인기로 가져오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특히 2017년 대선 이후 지상파 3사는 각종 개편을 통해 연예인 못지않은 추종자를 몰고다니는 ‘나는 꼼수다’ 출신 방송인들을 대거 수혈했다. 2017년 5월 대선 이후 김용민은 SBS 러브FM ‘김용민의 뉴스브리핑’과 ‘SBS 정치쇼’, KBS1 라디오 ‘김용민 라이브’ 진행을 잇달아 꿰찼다. 주진우는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와 ‘판결의 온도’를, 김어준은 SBS에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의 진행을 맡았다. 특히 교통방송 라디오의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각종 편파성 논란에도 2018년 1분기 이래 청취율 1위를 이어오면서 지상파에 '신(新) 시사저널리즘' 모델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MBC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

MBC 시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

이들 프로그램은 정통 시사프로같은 심층 취재나 토론보다는 진행자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때로 '음모론'으로 비판받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팟캐스트 ‘나꼼수’식 진행방식을 지상파에 옮겨오면서 화제성은 잡았지만, 일종의 마약처럼 '팬덤'에 기대는 시도가 공공성 강화라는 시사프로의 본질을 해칠 역효과 우려도 나온다.

 
김도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예를 들어 방송법 6조에는 ‘양 측의 의견을 균형있게 소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진영 논리에 따라 한 쪽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팟캐스트 때의 진행방식이 그대로 구현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재미와 인기를 이유로 이런 포맷이 확산하면서, 저널리즘 전체가 후퇴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 자리에 모인 `나꼼수' 멤버들 [연합뉴스]

한 자리에 모인 `나꼼수' 멤버들 [연합뉴스]

진보 진영에서 언론개혁을 주도해 온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비슷한 지적을 한 바 있다. 손 교수는 지난 1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저널리즘을 바로잡겠다는 KBS의 ‘저널리즘토크쇼J’가 보여주듯 KBSㆍMBC, 교통방송(TBS) 시사프로그램들은 친정부 편향 세력의 영향권 아래 있다”며 “교통방송의 김어준 시사프로그램은 노골적인 진영 방송이다. 그 결과 저널리즘은 쇼나 희화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최근의 시사프로그램들은 ‘셀럽’을 이용한 마케팅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도 진실을 알리기보다는 진행을 맡은 셀럽의 이해관계나 가치관에 따라 끌려다닌다”고 지적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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