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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오직 신뢰와 인내’라더니

고정애 정치에디터

고정애 정치에디터

문재인 대통령의 상징물 남북연락사무소가 641일 만에 재로 변하기 전날인 15일, 더불어민주당은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 공언에도 불편함을 피력한 발언은 2시간 동안 세 차례 있었다.
 

북한 비판엔 인색한 집권 여당
우리 탓하다 종국엔 미국 책임론
햇볕정책 인식에 머문 것 아닌가

“북한도 합의 정신을 지켜주시길 바란다.”(박병석 국회의장)
 
“그동안 어렵게 쌓은 신뢰를 허무는 발언을 자제하고 남북 합의를 이행해주길 촉구한다.”(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북한의 위협 언사가 불쾌하고 유감스럽다. 이건 별건…(중략).”(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대략 90자 정도다. 동료 기자가 받아친 분량은 2만자 내외였다.
 
나머지는 책임론과 해법, 176석 거여(巨與)로서 밀어붙여야 한다는 당부였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브레인들(임동원·정세현·문정인·이종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충 정리하자면 ‘북한은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비핵화를 실현할 텐데’(임동원), ‘우리 정부가 미국의 이중성에 동조하는 게 아닌가 보고 있다’(문정인), ‘(우리가) 합의해 놓고 이행하지 못한 게 사실이니 북한에 질문하기 전에 우리에게 자문해야 하며’(이종석), ‘북한이 생각하는 대로 받아들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문정인)고 봤다. ‘미주알고주알 미국에 승인받고 하는 행태를 보여서 합의 이행이 안 됐는데’(문정인),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되기 전 대북전단 금지법 메시지를 줘야 한다. 176석으로 뭐가 녹록지 않느냐’(정세현)고 했다.
 
결국 우리 정부 책임론이며 종국엔 미국 책임론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도 유사했다. “기대만큼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나 또한 아쉬움이 매우 크다”고 했다.
 
서소문포럼 6/17

서소문포럼 6/17

일관된 노력으로 참을 거 참고 달랠 거 달래면서 대화하자는 얘기다. ‘오직 신뢰와 인내’(이해찬 대표)라고도 했다. 북한은 종국엔 비핵화하겠다고 수없이 약속하곤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 “북한이 보유하는 핵탄두는 올 1월 30~40개로 추정되며 지난해보다 약 10개 증가했다”(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고 한다. 그동안 약속 위반에 따른 벌 값으로 유엔 안보리가 북한을 탄도미사일(일명 미상발사체)을 쏠 수 없는 나라로 결의했지만 북한은 계속 쏘아대고 있다. 급기야 여권에서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되기 전’이라고 말한 지 20여 시간 만에 해당 건물을 폭파해 버리기까지 했다.
 
한때 운동권 출신으로 이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에게 연락했다. 그는 “보수가 80년대 냉전시대의 빨갱이론으로 우려먹는다면 진보는 80년대 운동권, 90년대 햇볕정책 사고에 머물러있다”고 진단했다.
 
여권은 북한 비판을 꺼린다.
“미·중 신냉전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중국 공산당과 북핵 위협이 요인들이다. 한반도에서도 한참 전 탈냉전시대가 끝났다. 2002년, 2003년이다. 북한은 사실상 핵 국가로서 지위를 확보했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주장하듯) 북한이 숨쉬기 힘들어서 도와달라는 게 아니다.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여권이) 그런 인식을 못 하고 있다.”
 
북한을 잘 안다는 이들이다.
“그냥 파란색 안경을 끼고서 파란색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2002년, 2003년 정도까지 통할 시각을 지금껏 교정하지 않고 있다. 근본적으로 뿌리의 대부분이 운동권이고, 그렇다 보니 사회주의에 대한 낭만적·온정적 태도다. 중국 공산당에 대해서도. 순진하다.”
 
구 원장은 ‘대부분’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거의 모두일 수도 있다. 이 와중 거여(巨與) 의원 173명이 ‘한반도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는데 민주당에서 “이 시기에 부적절하다”며 응하지 않은 이가 조응천 의원 정도라니 말이다. 대북 전단을 문제 삼는 북한을 비판한 건 박용진 의원 정도다.
 
그래서 두려운 건 이거다.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지식에 기댈 때,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생각이 비슷한 이들로 이뤄진 집단은 유추할 정보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한 명이나 다를 바 없을 것”(『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데이비드 엡스타인)이란 집단사고다. 새로운 도발 국면인데도 사실상 속내는 지금껏 해왔던 대로 “북한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대응하자”고 하지 않을까. 이미 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송영길 외통위원장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그런 것 같다. (대)포로 폭파 안 한 게 어디냐”고 했다. 또, 북한을 달래기 위해 자유·인권·민주주의 등 우리 체제의 비교우위를 언제든 내던질 수 있다는 이들의 언행도 두렵다. 진정 그렇다.
 
고정애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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