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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중앙일보 논설위원, 고용노동전문기자

'정치 전리품' 취급 말라…폴리텍 이사장의 이유 있는 태업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이 나라를 복구하는 데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다. 일제의 수탈로 피폐해진 한국은 북한의 남침으로 초토화됐다.
 

[김기찬의 인(人)프라]
폴리텍대 신설·유치 공약에 몸살
선거 때마다 표 모으기 먹잇감 돼
이석행 이사장, 지연 작전 맞대응
정치적 전리품 삼지 말라는 항변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라. 자원도 없는 나라. 믿을 건 오로지 ‘사람’뿐이었다. 기술만큼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도움으로 국립직업훈련원을 세웠다. 1968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일이었다. ‘기술보국(技術報國)’이란 말이 탄생했다. 훈련원 출신이 산업현장에 투입되며 경제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1기 훈련원생이 입학할 때 1인당 국민소득(GNI)은 169달러였다. 지난해 3만2115달러로 184배나 늘었다. 그 토대를 국립직업훈련원생이 닦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직업훈련원은 기능대학을 거쳐 폴리텍대학(이하 폴리텍)으로 확대 개편됐다. 고용노동부 산하 사립대학이다. 전국에 38개 캠퍼스가 있다.
 
2015년 10월 한강의 기적을 일군 폴리텍대 전신인 국립직업훈련원 1기 훈련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재는 대기업 임원, 교수 등으로 활동 중이다. [중앙포토]

2015년 10월 한강의 기적을 일군 폴리텍대 전신인 국립직업훈련원 1기 훈련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재는 대기업 임원, 교수 등으로 활동 중이다. [중앙포토]

이런 폴리텍이 위기다. 정치권에 휘둘리면서다. 선거철이면 폴리텍은 승자의 전리품처럼 공약에 오른다. 정부 산하 기관이란 점을 악용해 표를 위한 먹잇감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백년대계가 있을 리 만무하다. 21대 총선 출마자 중 폴리텍 신설·유치를 공약한 후보만 14명이다. 이낙연 전 총리, 심상정 정의당 대표까지 가세했다.
 
이러자 이석행 폴리텍 이사장이 태업에 들어갔다. 설립 지연 작전이다. 4곳이 늦춰졌다. 영천, 경기북부(파주), 밀양, 서천 캠퍼스다. 모두 국회의원의 입김으로 착수했다.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7명도 곧 가세할 전망이다.
 
이석행 이사장

이석행 이사장

이 이사장의 말이다. “캠퍼스 신설은 속도전 대상이 아니다. 산업 여건과 학령 감소 등 고려할 게 많다. 지을 땐 정치인을 비롯해 모두가 관심을 가진다. 정작 학교가 설립되고, (학생 부족, 운영난과 같은) 어려움이 닥치면 ‘나 몰라라’ 한다. ‘학생 모집이 가능한가. 지역 기반 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가’라고 조목조목 물으면 답을 못한다. 그저 세워만 주면 최선을 다하겠단다. 무책임하다. 세금과 노동자·사업주가 낸 고용보험기금을 허투루 쓸 수 없다. 내가 미루니 노동부에 얘기하는데, 그럴 사안이 아니다.”
 
지연되고 있는 4곳 중 영천 로봇캠퍼스는 올해 2월 교육부에 세 번째 대학설립인가를 신청했다. 2012년 국회의원이 제기하며 시작된 사업이다. 교육부는 앞서 두 차례 신청을 반려·거부했다. 문제는 교육부의 조치에 아랑곳없이 건축공사가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 이사장의 설명이다. “대구권역에 대학이 많다. 학교를 만드는 게 맞나 싶었다. 스톱하려다 멈칫했다. 공정이 40%나 됐다. 그만두면 세금을 날리니 어쩔 수 없이 추진했다. 대신 설계를 5번이나 변경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업을 벤치마킹해 기업형 실습시설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엔 종합대학이나 전문대학의 로봇학과와 차별화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정치권의 입김에 전리품형 캠퍼스가 또 하나 들어서는 것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돌파구로 대학이기보다 통합실습장으로 변신시켰다. 전문대와 고교에 완전 개방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대교육협의회는 반대 성명을 냈다. 정부 산하 교육기관이 민간의 기술 교육형 전문기관을 밀어내는 구축(驅逐)효과를 가속화한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의 결정만 남았다.
 
21대 총선 폴리텍 신설 공약 낸 후보

21대 총선 폴리텍 신설 공약 낸 후보

폴리텍은 2006년 구조조정을 경험했다. 거창·고창·제천·김천·정선 등 5개 캠퍼스를 폐교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전체 교육기관의 생존력 등을 고려했다.
 
한국폴리텍 5대학의 신기술공학관.

한국폴리텍 5대학의 신기술공학관.

최근엔 보은과 음성 캠퍼스 설립 계획을 백지화했다. 국회의원의 압박에 못 이겨 4~6년 동안 타당성 조사 등으로 돈과 행정력을 허비한 뒤였다. 음성 인근에 청주와 충주 캠퍼스가 있다. 490억원의 사업비를 들일 이유가 없었다. 보은은 충북도로부터 특별회계 지원을 받을 정도로 낙후지역이다. 학생이 모집될 리 없고, 보은군의 재정부담 여력도 없었다. 결국 이 이사장이 백지화했다. “있는 캠퍼스를 제대로 개혁해서 바꾸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지난해 4월 폴리텍 설립 때 타당성 조사를 의무화하도록 시행령·시행규칙을 개정했다. 하지만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서천 캠퍼스만 해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타당성 용역을 거쳤다. 2017년엔 부지까지 확보했다. 이듬해 기획재정부가 심층평가를 거쳐 제동을 걸었다. 바뀐 시행령·시행규칙에 명시된 타당성 조사 지정기관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다.
 
공업계 고교 출신인 이 이사장이 정치권에 들으라는 듯 한마디 했다. “아닌 건 아니다.” 교육기관을 ‘정치 전리품’ 취급하지 말라는 뜻 아닐까.
 
폴리텍대학은…
·1968년 6월 25일 중앙직업훈련원 설립
·77년 기능대학법 제정
·97년 산업학사 학위부여 근거 마련
·2006년 한국폴리텍 출범
·2020년 현재 38개 캠퍼스(4개 교육원 포함),
인재원, 다솜고 등 40개 하부조직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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