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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김지영 “꿈에서도 그리운 무대…후배들 창의력 보면 깜짝 놀라”

'이광기의 생활보물 찾기'에 나들이한 발레리나 김지영. 현재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로 일하며 프리랜서 무용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이광기]

'이광기의 생활보물 찾기'에 나들이한 발레리나 김지영. 현재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로 일하며 프리랜서 무용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이광기]

“코로나19 이후론 쉬고 있지만, 그 전까진 계속 공연하고 러브콜 받았어요. 학생들 가르치랴, 여러 발레단과 매회 다른 작품 협업하랴, 국립발레단 시절보다 더 바빴네요.(웃음)”
 

작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은퇴
학생 가르치며 ‘협업 공연’도 적극

지난해 6월 은퇴공연 ‘지젤’을 끝으로 국립발레단을 떠난 김지영(42)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의 얘기다. 당시 ‘나는 지난 세대의 무용수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며 수석무용수 자리를 내려놔 화제를 모았다. 최근 만나 이를 상기시키자 김 교수는 “너무 빨리 내려놨나? 더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며 웃었다.
 
“실은 발레단에서 춤추는 꿈도 여러 번 꿨어요. 한번은 ‘돈키호테’를 공연하는데, 저 혼자 몰래 연습하고 있더라고요. 깨고선 마음이 복잡했죠. 정작 현역 땐 스스로 머리채 끌고 가는 심정으로 출근하곤 했는데, 하하.”
 
그 ‘현역 시절’을 뜨겁게 달구었던 게 같은 국립발레단 소속이었던 김주원(현 성신여대 교수)과의 라이벌 관계다. 김지영이 1997년 역대 최연소로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이듬해 김주원이 들어왔다. 둘은 동갑내기 친구로 지내면서 발레단의 양대 스타로 군림했다. 김지영이 7년간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다가 2009년 국립발레단에 복귀하자 각자 팬덤도 다시 불붙었다.
 
“언론에서 그렇게 띄운 것도 있고, 투톱이라 서로에게 자극받은 측면도 있죠. 당시 저랑 주원씨는 무대가 너무 행복하고 열정이 150% 차 있을 때였어요.”
 
고전 레퍼토리는 물론 첫사랑에 빠진 여인(‘로미오와 줄리엣’), 시대의 비운을 껴안은 팜므파탈 스파이(‘마타하리’) 등을 몸짓으로 들려주었다. 관객이 보기엔 아름다운 ‘무중력의 도전’이지만 크고 작은 부상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공연을 하면 할수록 무대가 신성한 곳이란 생각에 너무 두려워 공황장애로 약을 먹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조금만 게을리해도 몸이 반응하거든요. 별수 있나요. 훈련을 거듭하면 신들린 듯 예상치도 않았던 것들이 막 나와요. 음악에 빠져 작품 안에서 헤엄치는 거죠. 끝나고 나면 그 시간이 그리워질 정도로.”
 
14세에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로 유학 다녀온 뒤 국립발레단 15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7년 등 도합 22년을 ‘직장인’처럼 성실하게 살았다. 해외 유명 발레단 에투왈(수석)에 오른 것도 강수진(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이어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였다.
 
“후배들의 창의력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면서 많이 배운다”는 그는 요즘도 매일 2~3시간 이상 연습한다. “강제성이 없으니,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게 더 힘든 것 같다”고 했다. 오는 7월 ‘한국현대춤작가 12인전’ 등 거의 매달 공연이 예정돼 있지만 코로나19로 실제 열릴지는 미지수다.
 
“요즘 온라인 공연도 많이 열리는데, 무용수 입장에선 그게 더 힘들어요. 딱 한 번 무관중 공연을, 어느 콩쿠르 1라운드에서 한 적 있는데, 정말 다시는…. 아무리 디지털 세상이라 해도 사람들 간 온기를 대신할 순 없지요. 얼른 코로나19가 극복돼서 무대에서 여러분의 기를 느끼고 싶네요.”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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