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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이선권 “미 집권자에 치적 보따리 안 줘”…트럼프는 침묵

북·미 정상회담 2주년

12일자 북한 노동신문 1면에 실린 양강도 삼지연 주택 건설 현장 사진. 공사장 전면에 ‘정면돌파전’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연합뉴스]

12일자 북한 노동신문 1면에 실린 양강도 삼지연 주택 건설 현장 사진. 공사장 전면에 ‘정면돌파전’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연합뉴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역사적인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이 12일로 2주년을 맞았지만 미국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주 앉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 외무상, 미국에 불만 표출 담화
“북·미 관계 개선, 절망으로 바뀌어”
미 국무부 “북 협상 참여하게 노력”

미 국무부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 한국 언론으로부터 정상회담 2주년에 대한 논평 요청을 받고서야 대변인실 명의로 짤막한 논평을 냈다. “미국은 북한이 더 밝은 미래를 실현할 수 있게 의미 있는 협상에 참여하도록 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이 제안은 여전히 협상 테이블에 남아 있으며, 우리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모든 약속과 관련해 균형 잡힌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유연한 접근을 할 용의가 있다”는 원론적 내용이었다.
 
반면 이선권 북한 외무상은 12일 “다시는 아무 대가 없이 미국 집권자에게 치적 선전 보따리를 던져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 명의로 발표한 ‘우리가 미국에 보내는 대답은 명백하다’는 제목의 담화에서다. 올해 초 외무상에 취임한 뒤 그가 담화를 발표한 건 처음이다. 이 외무상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남측 경제인들을 향해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가냐”고 힐난했던 인물이다.
 
그는 담화에서 “732일이란 짧지 않은 나날들과 더불어 흘러온 조미(북·미) 관계를 놓고 세계는 무엇을 목격하였으며 역사는 어떤 교훈을 남겼는가”라며 “명백한 것은 두 해 전 이 행성의 각광을 모으며 한껏 부풀어 올랐던 조미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은 오늘날 악화 상승이라는 절망으로 바뀌었고, 조선반도의 평화 번영에 대한 한 가닥 낙관마저 비관적 악몽 속에 사그라져 버렸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군중 궐기대회 등을 통해 남한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고 있는 것과 달리 담화 내용을 북한 주민들에겐 알리지 않고 “의심이 든다”는 식의 표현을 쓴 점으로 미뤄볼 때 북한 당국이 다소 수위를 조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과의 협상을 종료한다는 선언이라기보다는 대선 레이스에 접어든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고 미국과의 추후 협상에 대비하기 위한 발언이란 의미다.
 
이선권(左), 트럼프(右)

이선권(左), 트럼프(右)

미 국무부의 이날 반응은 2차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넉 달 뒤 모건 오르태거스 국무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직접 밝혔던 1주년 논평과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는 당시 “협상에는 언제나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김 위원장과 그의 정부가 북한 주민들에게 더 밝은 미래를 위한 길을 열어줄 것으로 확신한다”며 희망이 실린 논평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최대 피해국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조지 플로이드 시위 사태까지 겹치면서 재선을 위협받고 있는 처지다. 내 코가 석 자라 북한이 시야에서 멀어진 것이다. 그런 만큼 북한이 협상 복귀의 조건으로 내건 제재 완화 또는 해제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은 매우 작은 상황이다.
 
미 해군분석센터(CNA) 켄 고스 분석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북한과의 대화에서 얻을 게 거의 없기 때문에 11월 대선 전 대화를 재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재선에 성공해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면 북한과의 외교적 승리를 다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도 이를 알고 있으며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재개로 트럼프를 배신하지도 않고 있다”며 “트럼프가 다시 대화하자고 전화하면 바로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스 국장은 이어 “북한은 트럼프가 재선될 때를 기다리는 대신 한국에 강경 노선을 취함으로써 보수적인 미국 정부와 진보적인 한국 정부 사이의 틈새를 벌리는 전술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남북 통신선을 차단하고 군사합의를 파기하는 등 대남 위협을 고조하는 것도 한·미 동맹 이간 전략이란 뜻이다.
 
이와 관련,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를 맡았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의회 전문지 ‘힐’ 기고에서 “한반도의 위기는 동맹의 필요성을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코로나 방역 성공에 대한 언급에 점점 더 짜증을 내는 듯하며 분명 한국을 성공 모델보다는 경쟁자로 보는 듯싶다”며 “미국은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많이 내지 않으면 주한미군 철수를 시작할지 모른다는 무언의 협박까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힐 전 차관보는 이어 “북한이 한국을 괴롭힐 때 미국의 전통적인 대응은 한국을 지지하고 동맹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번 통신선 차단에 대한 국무부의 ‘실망’ 표명과 대화 복귀 촉구는 한정된 수준에서 그중 일부를 실행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 확보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지하고 동맹과 더 가깝게 지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정용수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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