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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그림 같은 12개의 예배당…신안에서 만난 '섬티아고'

기자
박재희 사진 박재희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44)

무작정 걷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일상의 무게가 버거워지면 묵묵히 길을 따라 걸었던 시간을 떠올려보곤 한다. 내게 수백 킬로미터의 길을 오로지 걷는 행위는 두 다리로 하는 명상이며 사색이자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이유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작은 산티아고 순례길, 12사도의 길이 전라남도 신안에 있다. 예수의 열두 사도 이름을 딴 작은 예배당 12개가 있는 곳, 순례자의 섬이라 불리는 ‘기점·소악도’이다. 마음이 부딪혀 힘에 부치던 날 한국의 ‘가고 싶은 섬’ 신안군 증도면의 ‘기점·소악도’를 찾아 걸었다.
 
순례자의 섬이라 불리는 '기점·소악도'.

순례자의 섬이라 불리는 '기점·소악도'.

 
순례자의 섬은 대기점도, 소악도, 진섬, 소기점도 그리고 딴섬까지 모두 다섯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이어진 곳이다. 오래전 사람들은 섬과 섬 사이 갯벌에 돌을 던져 길을 만들었다. 돌을 던져 만든 징검다리 노두길은 섬을 이었고 이제는 섬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잇는다. 노두길은 하루에 두 번씩 사라졌다 생겼다 한다. 물이 차면 수평선 아래로 숨었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나타나는 신비함 때문에 ‘기적의 순례길’이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베드로의 집. [사진 박재희]

베드로의 집. [사진 박재희]

기쁨의 집.

기쁨의 집.

 
“그리스 산토리니에 온 기분이에요.”
배가 항구에 닿기도 전인데 누군가 소리쳤다. 코발트블루 사파이어 지붕과 눈부시게 흰 회벽 건물이 단숨에 섬을 찾는 사람의 마음과 시선을 빼앗는다. 12사도의 길 코스는 대기점도 선착장에서 시작된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한 바다에 떠 있는 보석 같은 예배당이 1번 예배당 베드로의 집이다. 수채화가 얌전한 예배당에 들어가 눈을 감으면 섬에 닿았다는 실감이 밀려온다. 순례길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종을 치고 방파제 겸 선착장 길을 따라 걸었다. 분홍색 자전거를 빌려주는 대여소가 있어 잠시 자전거를 빌려 볼까 생각하다가 역시 두 발로 걷기로 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대기점도의 북촌마을이다. 병풍도와 연결되는 노두길을 내려다보는 작은 동산에 청옥색 둥근 지붕을 얹은 독특한 모양의 건물은 두 번째 예배당, 안드레아 성인의 생각하는 집이다. 고양이 두 마리가 첨탑에 올라가 있고 예배당을 지키는 것도 고양이다. 내부는 해와 달 공간으로 나뉘어 있고 예배당이라기보다 상상력의 사원으로 느껴지는 독특한 공간이다.
 
생각하는 집.

생각하는 집.

이 섬에서 내 마음을 온전히 내 마음을 빼앗아 간 것은 갯벌과 해무다.

이 섬에서 내 마음을 온전히 내 마음을 빼앗아 간 것은 갯벌과 해무다.

 
연못을 지나 그리움의 집 야고보 예배당을 향해 걸었다. 갯벌과 바다, 아무 언덕과 아무런 야산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섬이다. 그 깨달음이 왜 그리도 뭉클하고 좋았을까? 어마어마한 경관을 자랑하는 섬도 아니고 시골 마을 어디나 흔한 비슷비슷한 전설조차 없다.
 
‘기점·소악도’에서 사람들은 마늘과 양파를 기른다. 참깨와 고구마를 땅에서 내고, 김과 감태를 주는 바다와 낙지를 얻고 새우를 기르는 갯벌에 엎드려 산다. 살아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섬이 위로와 안식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가고 싶은 섬’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고요한 섬의 길을 걸으려고 뭍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호수 위 꽃처럼 떠 있는 감사의 집, 반짝이는 황금의 계단에 러시아 정교회처럼 양파 모양 지붕을 얹은 마태오의 집은 말 할 것도 없고 열두 개 예배당 그 어느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다 해도 마지막을 장식하는 열두 번째 가롯 유다의 집은 이 길의 하이라이트이자 아이러니일 것이다.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의 집은 모래 해변을 건너가는 작은 무인도 섬, 딴섬에 외따로 있다. 12개 예배당 가운데 유일하게 전형적인 성당을 연상시키는 경건한 느낌의 예배당이다. 해변에 물이 들어오는 시간을 살펴 방문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언젠가 다시 이 섬을 찾는다면 물이 차 건너지 못하는 딴섬에 홀로 떨어져 몇 시간쯤 완전한 고독을 선물로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롯 유다의 집.

가롯 유다의 집.

사랑의 집.

사랑의 집.

 
마음이 엉켜 풀어볼 방도가 없을 때, 산티아고까지는 갈 수 없지만 순례의 섬을 걸어보자. 세계 각지에서 건축 예술가 다섯 사람이 모여 열두 사도의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담아 지은 예배당은 아름답다. 각기 다르고 독특한 양식의 예배당은 종교와 관계없이 마음을 내려놓는 고요한 휴식의 장소다. 섬은 고요하다. 60가구가 채 되지 않는 100명 남짓한 사람들이 사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 너른 섬의 길을 걷는 시간은 호젓하다.
 
바람을 맞으며 걷다가 예배당에 들어가 짧은 묵상으로 마음을 내려놓았더니 처음 들었을 때 어색하게만 느껴지던 ‘섬티아고’라는 호칭이 어느새 자연스럽게만 느껴져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섬에서 내 마음을 온전히 빼앗아 간 것은 갯벌과 해무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보다 너른 뜰은 안개를 이불처럼 덮고 일렁이는 바다가 되었다가 산으로 차오르기도 했다. 산티아고를 걸으며 메세타의 밀밭에서 엉엉 울었던 것처럼 막막한 생명의 뜰이 생명을 기르고 길을 잇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망연했다. 시간이 어느새 뭉뚝 사라져버린다. 짱둥어가 신나게 뛰어다니던 갯벌, 뽀글뽀글 자기들 세상을 지어놓은 칠게와 농게 무리를 지켜봤던 그 시간과 노두길에 나가 해무에 젖어 보름달을 맞았던 밤의 기억을 차곡차곡 개어 넣고 섬을 떠나왔다.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찾아가는 방법 : 목포역에서 천사대교를 건너 압해도 송공선착장에서 배편을 이용한다.
하절기(4월1일~10월31일) 하루 4번 운행 06:50/ 09:40 / 13:10 / 16:00
나오는 배편은 각 1시간 10분 후에 있다.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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