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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문화난장] BTS와 만난 통일신라 스님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2020년의 방탄소년단(BTS)이 1200년 전의 신라 고승(高僧)을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만일 알았다면 대단한 일이다. 지난 8일 유튜브에서 공개된 ‘디어 클래스 오브 2020’(Dear Class of 2020)에서 코로나19로 졸업식을 치르지 못한 전 세계 젊은이를 응원한 BTS 멤버 일곱 명 뒤로 국립중앙박물관 중앙 통로에 놓인 비석 하나가 희미하게 노출됐다. 통일신라 원랑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塔碑)다. BTS와 원랑선사의 조우, 뜻밖이었다.
 

코로나 세대 위로한 BTS
유튜브에 비친 신라 탑비
1200년 뛰어넘는 랑데뷰
문화는 이어지며 커간다

원효(617~686)·의상(625~702)대사는 친숙하나 원랑선사(816~883)는 ‘알못미’(알지 못해 미안해)다. 박물관에서 수없이 마주친 비석이건만 “꽤 훌륭하네”라며 지나치기만 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개설한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을 찾아봤다. 비문과 번역문이 자세하게 실려 있다.
 
지난 8일 열린 ‘디어 클래스 오브 2020’에 출연한 BTS. 화면 뒤쪽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중앙 통로에 놓인 원랑선사탑비(보물 360호)가 보인다. [유튜브 캡처]

지난 8일 열린 ‘디어 클래스 오브 2020’에 출연한 BTS. 화면 뒤쪽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중앙 통로에 놓인 원랑선사탑비(보물 360호)가 보인다. [유튜브 캡처]

선사의 이름은 대통(大通), 성은 박씨다. 어머니가 선사를 잉태한 날부터 예절을 지키고 경전을 외우는 태교를 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비범해 제자백가를 통달했다. 불교에 입문해 인생무상을 깨달았고, 당나라로 건너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했다. 신라에 돌아와 충북 월악산 월광사에서 불법을 펼쳤다. 그가 입적하자 높고 낮은 사람이 모두 애도했고, 그들이 흘린 눈물이 샘을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선사의 높은 뜻을 기려 890년 탑비(보물 360호)를 세웠다. 탑비는 버려진 월광사터에서 1922년 우연히 발견됐고, 이후 경복궁 경내로 갔다가 2005년 중앙박물관 용산 이전과 함께 옮겨왔다. 형태가 온전하고 조형미가 뛰어나 통일신라 탑비 가운데 걸작으로 꼽힌다. ‘역사의 길’로 불리는 중앙박물관 한복판 명당에 놓인 이유다.
 
원랑선사를 이해하려면 9세기 통일신라 사회를 돌아봐야 한다. 당시 신라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삼국통일 절정기를 지나 정치 불안이 극심해졌다. 왕위 다툼이 불거졌고, 지방호족 세력이 등장했다. 종교적으로도 변혁기였다. 왕실·귀족 중심의 교종(敎宗)이 약해지고, 호족이 지원한 선종(禪宗)이 일어났다. 경전보다 내면을 강조한 선종이 피폐해진 민심을 파고들었다.
 
시대 분위기를 타고 불교 문화도 달라졌다. 경주에 몰려 있던 사찰이 지방 곳곳으로 퍼졌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이다. 선종 계열 스님들이 전국 아홉 곳에 둥지를 틀며 고통스런 백성을 위로했다, 중국에서 받아들인 가르침이지만 우리 땅에 맞게 소화하며 중국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상으로 키워갔다. 공덕이 뛰어난 스님들의 탑과 비를 조성하는 문화도 이때 생겨났다. 원랑선사탑비는 9세기 후반 격동의 신라를 대표하는 문화재 중 하나다.
 
통일신라 원랑선사탑비

통일신라 원랑선사탑비

오늘날 한국불교 조계종의 뿌리가 된 선종의 핵심 가치는 개인의 각성, 내면의 깨달음이다. 제도·권위보다 개성·취향을 존중하는 21세기 문화와 겹치는 대목이 많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지난 8일 ‘코로나 세대’를 위로한 BTS 멤버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남다르게 들려왔다.
 
“저희는 아직 서툰 20대입니다(RM)” “걸음이 느린 대신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조금 더 들이는 습관을 갖게 됐다(진)” “나 자신에 집중하는 것, 나 자신의 틀을 깨보는 것(슈가)” “내 인생을 이끄는 건 나 자신(제이홉)” 등이 펄떡이는 생선처럼 다가왔다. 같은 말을 기성세대가 했다면 ‘나 때는 말이야’ 잔소리에 그쳤겠지만 동시대 동년배에게 건네는 말이기에 생명력이 넘쳤다.
 
중앙박물관 강삼혜 학예사는 신라 선승과 BTS의 교집합을 주목했다. “각각 외국 문물(선종과 팝)을 들여와 우리 문화를 살찌우고 외국에 더욱 널리 알린 점, 목표에 다가가고자 피땀 눈물을 흘린 점, 내면을 응시하며 다른 사람을 다독인 점이 닮은 것 같다”고 했다. 원랑선사의 이름 ‘대통’처럼 그 둘이 1200년 간극을 뛰어넘어 ‘크게 통한’ 모양새다.
 
‘디어 클래스 오브 2020’의 대미를 장식한 BTS의 ‘소우주’(Mikrokomos) 가사 한 토막.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한 사람에 하나의 별/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70억 가지의 world.’ 개인의 성찰이 곧 우주의 성찰이다. 단 하나, 절대 ‘국뽕’으로 오해하지 마시길…. 대중문화든 고급문화든 문화는 그렇게 서로 만나고, 커간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BTS가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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