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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도시락, 사 가느냐 싸 가느냐

1990년 한해만 해도 국립공원에서는 2만3000t의 오물이 쏟아져 나왔다. 바로 이 해 취사·야영이 금지됐다. 산행객들에게는 날벼락이었다.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 버너(스토브)에 올린 넓적돌 위에서 노릇노릇 익던 삼겹살을 먹던 사람들은 입맛만 다시게 됐다. 이후 1991년에 자연휴식년제, 1998년에는 계곡휴식년제가 도입되면서 행락객으로 가득했던 계곡의 모습은 사라졌다.
충북 단양에서 난 지역 농축산물을 이용해 만든 단양로컬푸드협동조합(대표 박경희)의 소백산 국립공원 도시락. 잡곡밥에 단양 마늘 한우 불고기, 더덕 무침, 황태국 등이 어우러졌다.. 소백산=김홍준 기자

충북 단양에서 난 지역 농축산물을 이용해 만든 단양로컬푸드협동조합(대표 박경희)의 소백산 국립공원 도시락. 잡곡밥에 단양 마늘 한우 불고기, 더덕 무침, 황태국 등이 어우러졌다.. 소백산=김홍준 기자

 2030 레깅스 등산족인 양선아씨는 퇴근길 마트에서 산 재료로 등산 도시락을 만들었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삼색 김치볶음밥, 닭가슴살 무쌈말이, 토핑 유부초밥, 삼색과일. 북한산=김홍준 기자

2030 레깅스 등산족인 양선아씨는 퇴근길 마트에서 산 재료로 등산 도시락을 만들었다.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삼색 김치볶음밥, 닭가슴살 무쌈말이, 토핑 유부초밥, 삼색과일. 북한산=김홍준 기자

30년이 지났다. 삼겹살이 익던 넓적돌의 그을음도 비바람에 씻겨 나간 지 오래. 넓적돌 삼겹살 구이 대신 도시락이 산행 끼니로 자리를 단단히 잡았다. 

‘사 가는’ 도시락 만드는 50대 사장
소백산 근처 식재료 써 50㎞ 배달

‘싸 가는’ 도시락 만드는 30대 회사원
샌드위치 등 피하고 국물·냄새 NO


 
#도시락, 넌 누구냐 
정현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도시락은 점심밥을 넣어서 다니는 식생활 용구 또는 점심밥을 통칭한다”며 “옛 문헌에서 행찬(行饌)·행주(行廚) 또는 행주반(行廚飯)으로 일컫듯 ‘휴대밥’의 개념이다”라고 말했다. 도시락이란 명칭은 1920년에 나온 조선어사전에 처음 등장한다. 1728년 김천택이 엮은 ‘청구영언’에는 ‘점심 도슭 부시고’ 란 표현이 나온다. 이는 도시락의 어원이 ‘도슭’이라는 설을 뒷받침한다. 조선의 경종은 관원들에게 도시락을 지참하게 했다(승정원일기, 1721년). 경주 천마총과 광주광역시 신창동 유적지에서 찬합이 나온 것으로 보아 도시락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알프스에서 기원전 3400~3100년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 옆에 놓인 ‘괴나리봇짐’ 안에는 딸기·버섯류가 들어 있어 도시락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20세기 상당 기간 학생들과 동고동락했던 도시락은 1998년 급식이 전면 실시되면서 학교에서 멀어졌다. 대신 친환경, 건강 등의 수식어가 앞에 붙게 됐다. 
 
1990년의 취사·야영 금지 조치가 친환경에서 시작했듯, 2020년의 도시락도 친환경이 메인 메뉴다. 대충 먹자가 아닌, 제대로 된 한 끼다. 단, 선택의 고민은 ‘사 가느냐’와 ‘싸 가느냐’에 있다.
 
#사 가느냐 
박경희(50·단양로컬푸드협동조합 대표)씨는 소백산 국립공원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소백산 국립공원은 2018년 8월 국립공원 중에서 처음으로 도시락 배달 서비스 ‘내 도시락을 부탁해’를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2019년 3월에 전국 21개 국립공원으로 확대됐다. 
소백산 어의곡에서 자신이 대표로 있는 단양로컬푸드협동조합에서 만든 도시락을 선보이고 있는 박경희씨. 단양로컬푸드협동조합은 3년째 소백산 국립공원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소백산 어의곡에서 자신이 대표로 있는 단양로컬푸드협동조합에서 만든 도시락을 선보이고 있는 박경희씨. 단양로컬푸드협동조합은 3년째 소백산 국립공원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국립공원 도시락의 원조 격인 소백산 자락을 지난 2일 찾았다. 김동준 국립공원공단 과장은 “소백산 도시락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면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취지로 처음부터 ‘단양로컬푸드’에서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박씨는 마침 왕복 20㎞를 달려 소백산 입구인 어의곡에 도시락 25개를 배달하고 왔다. 국립공원 도시락은 카톡으로 신청하고, 지정된 탐 방지원센터에서 픽업과 반납을 한다.  

 
오늘 메뉴는 뭔가.  
잡곡밥에 한우 버섯불고기와 더덕 무침·계란말이가 주메뉴다. 무김치와 황태국도 곁들였다.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쓴다. 직접 농사지은 반찬도 쓴다.
 
불고기에는 단양 명물인 마늘이 들어갔다. 단양 마늘은 큰 일교차 속에 석회암 지대에서 재배돼 조직이 단단하고 맛과 향이 뛰어나다. 이르면 이달 중순부터 수확에 들어간다. 한입 먹어봤다. 마늘은 고기 조직 속으로 거침없이 침투하며 누린내를 단단히 잡아주면서도 육질의 부드러움을 끌어냈다. 황태국은 시원함과 개운함이 합창했다.  
 
메뉴는 어떻게 선정하나.  
처음에는 등산객들이 세 가지 메뉴 중 하나를 고르게 했다. 그러다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 가지로 바꿨다. 소백산 철쭉 축제 때는 많게는 하루에 도시락 50개가 나가기도 한다.
보온 도시락 용기를 쓴다.  
도시락은 집밥을 들고 나가는 것이다. 따뜻해야 한다. 게다가 소백산은 겨울 산행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8000원이면, 내용물과 노고에 비해 싼 편 아닌가.  
새벽 5시에는 일어나 3시간은 준비한다. 9시까지 픽업 장소에 갖다 놓는다. 반납 도시락을 다시 가져오면, 하루에 50㎞는 달려야 한다. 처음 소백산 국립공원에서 제안이 왔을 때 이익을 생각했다면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지역을 알리고 건강을 선물하는 게 즐겁다.
 
천동계곡에서 더덕무침을 씹었다. 바삭 소리가 경쾌하게 났다. 짧은 쓴맛 뒤의 긴 단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더덕의 사포닌 성분이 몸속에 달라붙는 기분. 다리에 힘이 갔다. 
#싸 가느냐 

양선아(31·회사원)씨는 요즘 잘나간다는 2030 레깅스 등산족이다. 인스타그램 '_sna_table' 계정에 자신이 만든 등산 도시락을 올리고 있다. 3년 전부터 산에 가기 시작했다. 도시락 싸는 솜씨는 산에서 빛을 발했다. 지난달 31일 그를 북한산에서 만났다. 예상대로 레깅스를 입고 나왔다. 1m 74㎝의 큰 키에서 나오는 길고 빠른 걸음을 기자가 따라가기 벅찼다.  
북한산에서 자신이 만든 도시락을 선보이고 있는 양선아씨. 2030 레깅스 등산족인 양씨는 "친구들과 산에 와서 도시락을 나눠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북한산에서 자신이 만든 도시락을 선보이고 있는 양선아씨. 2030 레깅스 등산족인 양씨는 "친구들과 산에 와서 도시락을 나눠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오늘 메뉴는 뭔가.  

삼색김치볶음밥에 토핑유부초밥·닭가슴살무쌈말이·삼색과일이다. 재료는 퇴근길에 마트에서 산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도 충분히 활용한다.
삼색김치볶음밥이 눈에 띄었다. 햄·계란·어묵이 각각 김치볶음밥을 껴안고 있었다. 아주 살짝 데친 부추가 이 둘의 이 별을 원하지 않는 듯, 단단히 둘러 처졌다. 입 안에 넣었다. 부추가, 어묵이, 김치볶음밥이 너울처럼 잇따랐다. 
 
메뉴는 어떻게 선정하나. 
낱개로 집어 한입에 먹기 좋은 걸 생각한다. 주먹밥·유부초밥을 자주 싸고 나눠 먹기 불편한 샌드위치나 토스트는 피하는 이유다. 산에 갈 때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움직임이 많다 보니 국물 없고, 잔반 없고,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한다. 재료비는 1만 5000원 선에서 제한한다. 이 돈으로 3~4명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성비를 추구한다.
양은 도시락을 쓴다.  
일회용품을 절대 안 쓰려니 3년째 쓰고 있다.
만드는데 들이는 시간은.  
오늘은 3시간 걸렸다. 평소에는 2시간이다. 만드는 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도시락을 함께 나누는 그 시간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도시락 사진 보여주면서 ‘산에 가자’라면 여지없이 넘어온다.(웃음) 
요즘 2030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토핑 유부초밥에 선뜻 젓가락질하기 어려웠다. 게맛살, 마요참치, 새우 등 어느 것을 고를지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새우를 집었다. 2030의 발랄함이 입안에서 펄떡거렸다. ‘사 가는’ 소백산 집밥 도시락과 ‘싸 가는’ 2030 퓨전 도시락. 이들 등산 도시락 뒤로 산행 명언이 떠올랐다. '산에는 먹으러 간다'는 말이다. 거기에 환경과 건강을 챙기면 마음의 배부름부터 느낄 터이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퇴근길에 마트에서 산 재료로 만든 양선아씨의 등산 도시락. 김홍준 기자

퇴근길에 마트에서 산 재료로 만든 양선아씨의 등산 도시락. 김홍준 기자

충북 단양에서 난 지역 농축산물을 이용해 만든 단양로컬푸드협동조합의 소백산 국립공원 도시락. 김홍준 기자

충북 단양에서 난 지역 농축산물을 이용해 만든 단양로컬푸드협동조합의 소백산 국립공원 도시락. 김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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