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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내 인생의 리셋 버튼, 그 남자의 완두콩밥

[더,오래]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5)

완두콩은 5월부터 6월까지가 제철이다. 시장에 완두콩이 나돌기 시작하면 몇 킬로그램은 거뜬하게 주문한다. 완두콩은 이래저래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 신선할 때 얼려두면 겨울까지 든든한 요리교실의 재료가 된다. 다만 대량으로 주문한 완두콩 꼬투리를 까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나는 원체 오랜 시간 같은 작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주말에 맞춰 완두콩을 주문해서 가족에게 꼬투리를 까달라고 부탁한다.
 
“이번 주말, 바빠요? 골프?”
“아니, 딱히 바쁜 일은 없어요. 조금 쉬려고. 책 읽거나 나름대로 할 일은 있어요.”
“아, 그래요.”
내심 남편에게 기대했는데. 원래 주말이면 완두콩 꼬투리를 까달라고 부탁하려고 5㎏이나 되는 완두콩을 근처 채소 가게와 거래 중인 자연 재배 농원에 주문한다. 일단 배달이 오면 남편이 눈치채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주말에 남편의 모습을 살핀 뒤, 완두콩을 한 아름 건네는 것이다. 네 가족이 먹을 분량의 몇 배나 되는 양이지만, 완두콩 꼬투리만큼은 불만 없이 영화를 보건 맥주를 마시면서 잠자코 까준다.
 
완두콩은 지중해 연안 지역이 원산지로 스페인에 살던 때, 역시 초봄이면 시장에 나오는 완두콩을 데치거나 푹 삶아서 올리브 오일을 듬뿍 뿌려 먹곤 했다. 친정어머니는 ‘완숙콩’이라고도 부르는 이 콩을 늘 ‘완두콩’이라고 부르면서 봄이 되면 매일같이 아침에 완두콩밥을 지어주셨다. 나는 어머니 덕분에 그 동글동글 통통한 완두콩이 완숙 콩과 같은 종류라는 것을 꽤 나중에서야 알았다.
 
어릴 적부터 콩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어머니의 완두콩밥만은 아주 좋아해서, 봄이 되면 완두콩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사진 pixabay]

어릴 적부터 콩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어머니의 완두콩밥만은 아주 좋아해서, 봄이 되면 완두콩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사진 pixabay]

 
초봄에 덜 자란 부드러운 콩 상태로 수확한 것은 ‘완두콩’, 요즘 시기에 콩이 완전히 익고 나서 수확한 것은 ‘완숙콩’이라고 하며, 가장 이른 시기에 수확해 꼬투리째 먹을 수 있는 것은 ‘꼬투리용’이라고 전문서에 적혀 있었다. 즉 한국에서 5월 말부터 6월 초에 수확되는 것은 충분히 익은 상태의 완숙콩인 것이다.
 
어릴 적부터 콩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어머니의 완두콩밥만은 아주 좋아해서, 봄이 되면 완두콩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므로 남편이 꼬투리를 까주면 처음으로 하는 요리는 완두콩밥이다. 흰쌀에 청주와 소금을 약간 넣어 짓고, 갓 지은 따끈따끈한 콩밥을 주걱으로 살살 섞어준다. 완두콩의 고소한 향과 입안에서 은근하게 간이 밴 밥과 콩의 풍미가 제대로 어우러질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분 좋아진다.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어머니의 맛이다.
 
“완두콩밥을 먹으면 일본에 계신 어머니도 생각나지만, 병진 씨가 만들어줬던 그 완두콩밥도 잊을 수 없죠!”
남편은 눈가에 웃음을 띄울 뿐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3년을 살았는데 스페인에 계속 있으면서 앞으로의 내 인생을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스물네 살에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곤 집을, 일본을 뛰쳐나오듯이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3년이라는 세월은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당시 외국인, 특히 아시아인이 거의 없던 스페인에서는 이방인을 향한 저항감이 컸다. 생각보다 보수적인 스페인 사람의 배타주의 속에서 생활비를 벌고 야간 대학원에 다니는 일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같은 유럽인 독일에서는 체험하지 못했던 고독을 느꼈다.
 
보통의 인생. 아버지가 일하던 제국호텔에 취직해 장기인 어학을 살려 호텔리어가 된다면 좋을 텐데, 하며 평범한 인생을 바라셨을 부모님을 두고 제멋대로 살아왔다. 그때는 이제 와 너무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일본에 돌아가더라도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분야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을 거듭하다 일본의 부모님 곁 대신 한국을 선택했다. 지금도 왜 그런 가시밭길 같은 삶을 밀고 나갔는지, 무엇이 나를 그쪽으로 내달리게 했는지 알 수 없다.
 
바르셀로나에서 실현하지 못한 꿈을 이어나가기 위해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서울로 거점을 옮겼다. 여전히 이방인이었기에 항상 일본인이란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유럽에서 느낀 고독감에 사로잡히진 않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연수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는 이중생활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연희동 하숙집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바르셀로나에서 배운 요리나 아버지의 레시피로 만든 요리를 선보이고, 토요일에는 연세대 친구들과 홍대에 몰려나가고, 일요일에는 밤새가며 서툰 한국어 능력으로 20쪽이나 되는 리포트를 써냈다. 20년도 더 지난 때라 당연히 지금처럼 한국말을 할 수 있던 것도 아니고, 한국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는 청춘을 달래려고 연애도 열심히 했다.
 
‘일본 사람이라서……’. 연애의 마지막은 늘 그렇게 끝났다. 연세대 일본인 유학생들과 소주를 마시면서 ‘한국 남자들 최악이야’ 같은 넋두리를 하며 분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서로 격려하며 배꼽 잡고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랬다. 그야말로 늦은 청춘을 서울에서 만끽했다.
 
대학 졸업 후 스페인으로 떠났다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자리를 잡았다. 연희동 하숙집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요리를 선보이기도 하고, 놀러도 다니면서 연애도 열심히 했다. [사진 pexels]

대학 졸업 후 스페인으로 떠났다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자리를 잡았다. 연희동 하숙집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요리를 선보이기도 하고, 놀러도 다니면서 연애도 열심히 했다. [사진 pexels]

 
서울에서의 연애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무렵, 지금 남편인 병진 씨와 묘한 인연으로 만나게 됐다. 나는 20대 후반이었고 당시 일본에 돌아가 한국의 문화인류학 교수가 될 생각으로 도쿄에 있는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준비 중이었으므로, 한국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다. 새로운 연애가 시작되려고 했지만, 연애 따위에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었다. 곧 일본에 돌아갈 거라는 전제하에 열심히 연애했다.
 
“짐도 많고 아침 첫 비행기니까 출근 전에 김포공항까지 바래다줄게요.”
서울을 떠나기 전날, 병진 씨는 차를 끌고 연희동 하숙집까지 나를 데리러 왔다. 3년 치 짐을 김포공항에 가까운 그의 집으로 옮겼고, 덤으로 나도 하룻밤 재워줬다.
 
그는 다음날 새벽녘, 공항 갈 준비를 하던 나에게 아침을 차려줬다. 완두콩밥과 오뚜기의 인스턴트 미역국, 스팸, 달걀프라이, 김, 멸치볶음이 담긴 작은 반찬 그릇들이 작은 접이식 소반 위에 올라갔다. 서울을 떠나는 날 처음으로 한국다운 평범한 아침밥을 먹는 느낌이었다. 병진 씨의 완두콩밥은 어머니의 완두콩밥보다 몇 배나 맛있었다. 어머니의 레시피처럼 청주라든가 소금 같은 비법 조미료 같은 것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완두콩밥을 한입 가득 넣을 때마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서 완두콩밥은 점점 짠맛이 났다.
 
“너희 아빠도, 너도, 도시히코(남동생)도 전부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살아왔잖아. 박상뿐이야. 엄마를 이해해주는 건!”
여든을 넘긴 어머니는 요즘 살짝 치매가 오긴 하지만, 사위를 보면 아직도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는 한국 사위인 박상을 정말 좋아한다. 결혼 후 얼마간은 한국에서 억지로라도 끌고서 일본에 데려왔어야 한다며 딸이 한국인과 결혼한 것에 부정적이었지만, 말이 생각대로 통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사위의 마음을 조금씩 헤아려주기 시작했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요리교실 횟수도 줄어들어, 시간은 많다. 하지만 제철 식재료에도 마음이 설레지 않는 것이 어쩌면 내 나름의 코로나 블루인가 싶다. 4월 말 무렵부터 나온 완두콩을 곁눈질하면서도 사지 않았다. 최근에는 병진 씨도 참 좋아하는 완두콩밥을 2인분만 지어야 해서 꼬투리를 깐 완두콩을 한 팩씩 사고 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주문한 꼬투리를 까지 않은 완두콩 1㎏이 종이봉투에 들어간 채로 서늘한 현관에 방치되어 있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병진씨에게 꼬투리를 까달라고 해야겠다.

 
키친 크리에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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