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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는 정치

서승욱 도쿄총국장

서승욱 도쿄총국장

선양(禪讓). 일본어에선 ‘왕이 왕위를 세습하지 않고 덕망있는 사람에게 물려준다’는 뜻이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다음의 총리, ‘포스트 아베’의 유력 후보 중 한 명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에게 이 단어가 자주 따라붙는다.
 
아베는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울트라 보수 ‘호소다파’의 실질적 수장이다. 반면 기시다는 리버럴계 명문 파벌 ‘고치카이(宏池會)’를 이끈다. 그의 지역구는 원폭 피해를 입은 히로시마, 성향과 기질이 아베와는 딴판이다. 하지만 호소다파에 변변한 총리감이 없다고 판단한 아베가 총리직을 기시다에게 물려주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것이 ‘선양설’의 요체다.
 
기시다는 아베 밑에서 4년 7개월간 외상을 지냈다. 그리고 2017년부터 지금까지 자민당 내 요직인 정조회장을 맡고 있다. 2018년 9월 자민당 총재 경선 때는 “아베와 맞붙어야 한다”는 파벌 내부 압박 속에서도 불출마로 아베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강경파 대장인 아베가 비둘기파 기시다를 미는 이유에 대해선 “온건파 기시다를 앞세워 개헌을 완수하려 한다”“라이벌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이 총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파벌 대연합” 등의 해석이 나온다.
 
글로벌아이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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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로선 아베의 낙점만 받으면 차기 경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경쟁자 가운데 바닥 수준이다. 하지만 일본의 총리는 국민이 뽑는 게 아니다. 대과 없이 잘만 버티면 파벌연합으로 자민당 총재직과 일본의 총리직이 넝굴째 들어온다.
 
감나무 밑에서 각도를 잘 잡고 입을 벌리면 된다. 물론 이런 정치에도 어려움은 있다. 자기 목소리를 내기보다 아베의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다. 그럴수록 존재감은 더욱 추락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맞장을 뜨자니 아베의 눈밖에 날까 두렵다.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답답한 정치다.
 
그런데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건 기시다뿐이 아닌 것 같다. 한국의 보수 정치인들중에도 그런 분들이 꽤 보인다. 대권 도전이 자신의 마지막 꿈이라고, 2022년이 마지막 기회라고, 차기 대선에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분들이다.
 
현재 이들의 지지율은 입에 올리기 조차 비참한 수준이다. 하지만 보수 인물난 속에서 ‘잘 하면 감이 내 입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느껴진다. 궤멸적 총선 참패로부터 불과 50일, 대선 운운하기보다 허물어진 보수 토양을 살릴 비전을 고민하는 게 이 분들이 할 일이다. 자기들을 ‘세종’,‘태종’이라고 부르는 여당과 대결하려면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는 정치로는 승산이 있을 리 없다.
 
서승욱 도쿄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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