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김재규 "유신헌법은" 재판관 "그만하십시오"···10·26의 최후

민주주의를 위한 거사였을까. 감정이 빚어낸 우발적 범죄였을까.

발굴! 그때 그 목소리, 10ㆍ26 최종

10ㆍ26을 둘러싼 시각은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팽팽하다. JTBC가 군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1ㆍ2심 재판 육성기록은 진실에 한 발짝 더 들어갈 수 있게 해줬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유신 체제를 종식하기 위해 10ㆍ26 이 전에도 최소 3차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10ㆍ26은 즉흥적으로 벌인 범죄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는 법정에서 “제가 이런 이율배반적인 결심을 할 때까지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겠나”라고도 말했다.  
10.26사태 현장 검증에 참여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과 박흥주 대령 [중앙포토]

10.26사태 현장 검증에 참여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과 박흥주 대령 [중앙포토]

 10.26사태 현장 검증에 참여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과 김계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포토]

10.26사태 현장 검증에 참여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과 김계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포토]

그에 비해 10ㆍ26의 진행은 매끄럽지 않았다. 김 전 부장은 자신의 측근들에게 10월 26일 만찬 직전에서야 계획을 알렸고 부하들은 당황했다. 김 전 부장의 비서실장이던 박흥주 대령은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셔서 무척 당황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부장은 김 전 대통령과 차지철 전 경호실장을 저격한 뒤 뚜렷한 계획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궁정동 안가에 남겨둔 김계원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 전 대통령을 국군병원에 옮긴 것에 대해서도 “몰랐다. (알았다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혁명의 실패는 김계원 비서실장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재판정에선 날 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 전 부장은 10ㆍ26의 계기로 ‘부마항쟁’의 과격한 진압 가능성을 꺼냈고, 재판관은 “부마사태에서 희생자가 있었냐, 죽은 사람이 있었냐”며 추궁했다. 김 전 부장이 “유신헌법”이라는 말을 꺼내면 “진술을 제한하겠다”며 막았다.
 
10.26 재판에 참석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중앙포토]

10.26 재판에 참석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중앙포토]

10.26 사태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전두환 전 합동수사본부장 [중앙포토]

10.26 사태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전두환 전 합동수사본부장 [중앙포토]

김 전 부장의 마지막 부탁은 부하들에 대한 선처였다.  
그는 “이 사람들은 무슨 어떤 이념이나 혹은 어떤 목적이나 이런 게 있어서 행한 것이 아니라 졸지에 그냥 명령에 의해서 그냥 동원된 것”이라며 “이 시퍼렇게 젊은 친구들 제발 죽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사형이 선고됐다. 
 
김 전 부장은 법정에서 “오늘 현재 지금 재판을 받는 이 결과는 4~5개월 후에는 제가 다시 심판을 받으리라.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24일 사형이 집행됐다.  
 
 10ㆍ26의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섰지만 이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역사의 해석에 남겨진 몫으로 남게 됐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