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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에듀]대화 많은 가정에서 우등생이 나오는 까닭은?

작년부터 시작된 한일 무역분쟁, 그리고 제11차 한미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협상, 코로나19 팬더믹 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원천기술의 가치가 확연히 드러나는 사건들이라는 점이다. 일본이 경제 보복의 무기로 삼은 포토레지스트나 고순도 불화수소,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는 코로나19 진료 키트,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운용하고 있는 방위체계 등이 그렇다. 
 

지하나샘의 교육을 부탁해

원천 기술이 없으면 비싼 가격으로 사야 할 뿐 아니라,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모든 나라는 가능한 한 많은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확보하려는 총력전을 펴고 있다. 물론 독자적인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걸음마 수준부터 시작하는 비효율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생산 시설과 연구 인력 육성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눈앞의 비효율이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효율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편리성과 단기적 효율성을 위해서 구매 버튼만 클릭한다면, 그야말로 장기적인 ‘호갱’이 될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매 금액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국가적 의존성이 ‘스스로 시작하고 세울 수 있다’는 굳센 기상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원리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얘기다. 그런데 교육에서는 거의 적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수수께끼라면 수수께끼다. 일단 교육의 ‘효율성’을 위해서 학부모 역할을 분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즉 교육 정보는 엄마가 담당하고 아빠는 재정적인 지원만 해주는 식이다. 오죽하면 입시 성공의 3요소가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라고 할까. 아이가 뭔가 잘못했을 때 남편이 아내에게 "애를 도대체 어떻게 키운 거야"라고 질책하는 드라마 장면도 많았는데, 진짜 어이없고 성차별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거꾸로 상대가 뭔가 참견할 때 “(교육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만히나 있지?”라고 쏴주고 싶다면, 이것 역시 성차별적인 발상이 아닐까?
 
모든 의사결정이 그렇듯이 한 사람이 독점했을 때는 실수가 잦을뿐더러, 한쪽에 치우치는 편향성을 고치기가 어렵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좁은 공간 안에 갇혀 있을 때 발생하는 감각의 왜곡을 ‘동굴의 우상’이라 표현했다. 예컨대 각종 정보가 쏟아지는 엄마들의 커뮤니티는 감각이 왜곡되기 쉬운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전체적 맥락보다는 눈앞의 성과에 마음이 급해지기 때문에, 자녀의 독자적인 리듬과 성장 곡선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자꾸 다그치게 되는 것이다. 다그치면 자녀는 도망가게 되니 결국 ‘비효율’적인 리듬이 된다. 그러다 보면 뭔가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교육 전문가들에게 자녀를 맡기고 싶어진다. 이렇게 해서 ‘유명하니까 이 사람 말이 맞겠지’ 식의 ‘극장의 우상’에 빠지는 것이다. 이렇게 원천 기술의 무게중심이 외부에 있게 되면, 학부모와 자녀가 의존적인 성향이 강해지게 되고 ‘스스로 시작하고 세울 수 있다’는 학습의 굳센 기상이 무너지게 된다. 시키는 숙제나 해가면 되는 줄 아는 아이에게 무슨 에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까.
 
또한 각자 관심사의 중요한 부분이 공유되지 않으니 갈수록 정보의 격차가 커진다. 그 결과 부부간의 대화가 적어지고 서먹해지는 간접적인 원인이 된다. 한국가족치료학회에서는 2010년에 부부의 대화 정도와 자녀 성적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학술 자료를 발표하였다. 말하자면 가족의 친밀감이 클수록 안정적인 심리상태에 기초한 에너지가 발휘된다는 얘긴데, 눈앞의 조그만 효율성을 찾다가 중요한 핵심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    
 
우상의 왜곡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각도에서의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 맞벌이든, 부모 중 한 쪽이 일을 하든 마찬가지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은 눈앞의 점수만이 아니라, 사회의 흐름에서 필요한 궁극적인 시야를 제공해줄 수 있다. 이렇게 각자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가정마다 독특한 교육 노선을 그려나가는 것, 이것이 교육의 ‘원천 기술’을 보유하는 길이다. 물론 처음에는 어이없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원천 기술의 시작이 그런 것처럼 부모도 걸음마 수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입시 제도나 개념은 하나씩 함께 익혀 가면 그만이 아닌가.  
 
바깥일도 힘들어 죽겠는데 거기까지 신경 쓸 틈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가정을 관찰하였을 때, 자녀가 어떻게 자라는가가 가족에게 끼치는 영향은 엄청난 것이다. 기껏 키워놨더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져서 가족 전체가 불행해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겪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이때는 그동안 아등바등해왔던 돈 얼마, 성적 몇 등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경우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모를 그저 돈 버는 기계, 밥 차려주는 잔소리쟁이로 인식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이런 경우 자녀의 동기부여나 인성에 부정적 영향이 큰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모든 관심을 한 사람은 돈벌이에 쏟고, 한 사람은 교육 정보에 쏟으면서 자녀를 내맡기는 것은 여러모로 어리석은 선택이다. 성장 과정 하나하나에 서툰 의견을 모아가며 원천 기술을 쌓아나간다면 교육적으로나, 가정 문화적으로나, 심지어 재정적으로도 훨씬 효율적인 방향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한 3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첫째, 학습이나 입시에 대한 콘텐트를 가족이 함께 읽고, 보고, 대화(잔소리가 아닌)해나가면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게 한다.  
 
둘째, 학원 등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서 자녀가 주체적으로 결정에 참여하게 한다. 한부모 가정의 상황이라면 이 부분이 더더욱 중요할 것이다. 자신에게 어떤 과목의 보완이 필요한지, 그리고 어떤 학원이 좋을지 여러 면을 고려하여 함께 대화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특정 학원을 그만두거나 옮기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셋째, 교육과 관련된 모든 결정은 가족 구성원이 함께 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어찌 들으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다. 가령 인기가 많아서 대기하는 사람이 많은 학원에 요행히 자리가 생겼다고 전화 왔을 때, 한가하게 함께 얘기하고 결정할 수 있겠냐고. 그러나 결국 공부는 자녀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명 학원에 넣는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다. 또한 지나고 보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결정들이 생각보다 그리 중요한 것들이 아니었으며, 동굴 속에서 극장의 우상에 휘둘렸을 때가 많다는 사실을.    
 
모 평론가는 “관계 속에서 성장은 쌍방향”이라고 했다. 눈앞의 가시적인 효율성은 작은 것이다. 그 작은 효율성을 위해서 교육 정보를 전담하고, 원천 기술을 외부에 맡겨 버린다면 그야말로 큰 효율성을 놓치는 소탐대실이 되어 버린다. 조금 답답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더라도, “보다 궁극적인 효율성을 향해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과정”으로 교육을 재정의하자.
지하나 덕소교 교사
  남양주 덕소고 교사. 23년 차 베테랑. 한문 교사이자 1급 학습 코치 및 전문상담교사. 취미이자 직업이 학생 상담. 1000여 명의 학생의 학습 심리 테스트를 진행했다. 자기 주도 학습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고 학교에서 ‘자기 주도 학습 클리닉’과 ‘학종내비게이션’(학종 지도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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