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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통했네" 붕어빵 봉투 내밀자 싱긋 웃은 아버지

기자
푸르미 사진 푸르미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21)

외출했다 돌아오신 아버지가 검정 비닐봉지를 내미신다. “씨 없는 청포도다!” 처음이다. 아버지가 먹을 것을 사들고 들어오신 것은. 어렸을 땐 술 드시고 들어오는 날엔 늘 우리 집 건너편에 있는 고려당에서 빵을 사 오시곤 했다. 물론 빵집이 문을 아직 닫지 않은 시간에 들어오실 때로 한정되지만. 그래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아버지를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성인이 된 뒤로는, 특히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랑 둘이 산 뒤로는 아버지가 먹을 것을 사들고 오시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아빠!” 하며 뛰어나올 어린 자녀도, 반겨줄 아내도 없어서일까? 대신 퇴근하고 들어오는 내 손을 궁금해하시는 것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마침 오늘은 나도 준비한 것이 있다. 아버지가 내미는 검은 봉지 앞에 붕어빵 가득한 종이봉투를 보였더니 “통했네!” 하며 좋아하신다. 1000원에 무려 6개나 주는 집이라 매일 사와도 좋다고 허락하신 먹거리다.
 
처음엔 포장마차 밖에 써 붙인 가격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1000원에 5개였던 것도 오래전이고, 요즘은 2~3개가 보통이다. 6~7개 준다면 작은 크기의 미니붕어빵인데, 이 집은 온전하게 큰 것으로 6개를 주신다.
 
청포도와 붕어빵. 검은 비닐봉지와 김빠지라고 구멍 낸 종이봉투가 정겹다. [사진 푸르미]

청포도와 붕어빵. 검은 비닐봉지와 김빠지라고 구멍 낸 종이봉투가 정겹다. [사진 푸르미]

 
부부가 함께 장사하니 아무리 못 벌어도 하루 10만 원은 벌어야 유지가 될 텐데, 그러려면 자그마치 600개를 구워야 한다. 말이 600개지,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걸 모두 다 팔아야 10만 원 매출이다. 아버지는 그래서 더 팔아줘야 한다고 열심히 드신다.
 
퇴근길 금방 구운 붕어빵을 안고 걸어가노라면 마스크 성능을 의심할 정도로 향기가 매혹적이다. ‘바삭할 때 먹어야 맛있다’는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2개나 먹은 적도 있다.
 
매주 일요일 교회 가는 길에 먹는 간식은 왕꽈배기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 타러 가는 길에 있는 집인데, 역시 1개에 1000원이다. 아버지는 개찰구를 빠져나오면서 1000원짜리 한 장을 꺼내 내 손에 쥐여주신다. 크기가 크긴 하지만 혼자 한 개를 다 못 먹을 양은 결코 아닌데, 꼭 하나를 사서 반으로 잘라 먹자고 하신다. 매번 그러는 것이 미안해 “오늘은 1인당 1개씩 먹읍시다” 설득해 보지만, “배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재미로 먹는 거다”하시며 극구 2인 1개를 고집하신다. 절약하는 성격 탓도 있겠지만, 뭔가를 함께 하는 것을 즐기시는 게 아닌가 싶다.
 
조금 늦게 퇴근한 날엔 여지없이 닫혀 있는 포장마차. ‘원조붕어빵 6개 1000원’이라 쓰여 있다.

조금 늦게 퇴근한 날엔 여지없이 닫혀 있는 포장마차. ‘원조붕어빵 6개 1000원’이라 쓰여 있다.

 
커피도 꼭 “커피 한 잔 타서 둘이 나눠 먹을까?” 하신다. 아버지와 커피 취향이 다른 내가 모른 척 그냥 타서 드리면, 잊지 않고 “너 한 모금 먹고 줘라” 하신다. 먹는 척만 살짝 하고 드리면, 기가 막히게 알아보시곤 “너 안 먹었지?”하며 기어이 한 모금을 먹이신다. 처음엔 커피를 타 달라고 하시는 것이 미안해 같이 먹자 하는가 했는데, “커피를 탄 사람이 맛있게 되었는가 먹어보고 줘야지”라고 이유를 말씀해 주신 뒤론 마치 내가 검식관이 된 양 한 모금 신중하게 맛보고 드린다.
 
저녁 드시고 2시간쯤 지나면 어김없이 “뭐 파삭파삭한 것 없냐? 입이 심심하다” 하신다. 그때는 강냉이, 뻥튀기 같은 옛날 간식을 드린다. 한번 입에 대면 바닥이 보일 때까지 계속 드시기 때문에 일정량을 나눠 담아 한 번에 싹 다 드셔도 무리가 없도록 조절한다. 한 가지 비밀을 공개하면 아버지가 “뭐 먹을 것 없나?”하고 물어보셔도 절대 내놓지 않는 간식이 하나 있다. 언니1이 만들어 보내주는 홍차쿠키다.
 
제빵이 취미인 언니는 가끔 아버지 드시라고 다양한 간식거리를 만들어 보내주곤 하는데, 다른 것은 다 아버지를 드려도 숨겨두고 나 혼자 먹는 것이 바로 이 홍차쿠키다. 처음엔 냉동실 서랍에 다른 빵, 과자들과 함께 두었는데, 나는 아끼고 안 먹은 것을 아버지가 구분 없이 싹 다 드셔버린 뒤론 내 방 서랍 깊숙이 모셔 두고 먹는다. 주말에 집에 혼자 있거나 늦은 밤 드라마를 보게 될 때 2개들이 한 팩을 꺼내 입 안에서 한참을 굴려 가며 녹여 먹는다.
 
나도 내가 왜 이 쿠키를 유독 아버지 몰래 먹는지 명확히 이유를 규명하지 못했다. 그 쌉쌀한 맛을 고요히 음미하노라면 가슴 속 큰 구멍이 메꿔지는 것 같다. 쿠키가 다 떨어지면 다시 구멍이 생기듯 허전하다. 먹지 않아도 서랍에 쿠키가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하다. 언니도 내가 홍차쿠키를 각별히 아낀다는 것을 안 뒤론 아예 홍차쿠키만 별도 포장해서 보내주곤 한다.
 
저녁 후식으로 아버지가 사 온 청포도를 냈더니, “나 먹으려고 산 게 아니다. 너 먹어라” 하신다. 그 말에 울컥했다. 엄마도 이렇게 훅 들어오는 한 방 때문에 아버지한테 넘어가셨을까? “나도 같이 먹어야 맛있어” 하면서 넘겼지만, 아버지의 한마디가 내 가슴을 물컹하게 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오늘 밤 “뭐 먹을 것 없냐” 하시면, 마지막 남은 홍차쿠키 1봉을 꺼내 입에 넣어드리고 곧바로 후회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아버지에겐 존재 자체가 비밀인 언니의 홍차쿠키 레시피.

아버지에겐 존재 자체가 비밀인 언니의 홍차쿠키 레시피.

 
추신: 지난 수요일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그리고 부정맥을 가진 고령의 고위험군 환자인 아버지에게 뇌경색이 왔다. 믹스커피도 담배도 붕어빵도 끊어야 할 상황이다. 아버지와 나눠 먹는 간식 시간도 이제 추억 속으로 떠나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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