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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일본서 30년간 안중근·독도 연구…한·일 난제때마다 해결사

독도 영유권 갈등이 불거진 2005년 4월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오른쪽 둘째)이 일본 국회의원들의 요청으로 자신의 연구 성과를 설명하면서 ‘독도는 일본 땅’ 주장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중앙포토]

독도 영유권 갈등이 불거진 2005년 4월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오른쪽 둘째)이 일본 국회의원들의 요청으로 자신의 연구 성과를 설명하면서 ‘독도는 일본 땅’ 주장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중앙포토]

92세를 일기로 26일 영면한 최서면 선생은 ‘백과전서’적 지식인이자, 실천적 애국자였다. 개인의 영달보다 역사적 소명과 나라의 장래를 우선한 지사(志士)였고, 한·일 관계 막후의 민간 외교채널인 동시에 잠들어 있던 근현대사 사료를 발굴한 역사연구가였다.
 

최서면 선생
김구 ‘반탁 밀서’ 품고 38선도 넘어
일본 정계·학계에 친한파 만들어
지식인들 ‘최서면 둘러싼 모임’도

1928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고인의 일생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함께였다. 연희전문 시절 학생단체를 조직해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앞장서며 해방정국의 격랑으로 뛰어들었다. 이승만과 김구로 양분된 속에서 백범의 노선을 따른 고인은 백범의 밀서를 품고 조만식 선생과 반탁 공동전선을 펼치려 몰래 38선을 넘기도 했다. 만년의 고인은 “젊은 시절 백범의 가르침을 받은 게 내 일생의 나침반이 됐다”고 술회했다. 1949년 장덕수 암살 사건 배후로 연루돼 실형을 살 때, 이시영 전 부총리가 써준 휘호를 따라 본명 중하(重夏)대신 서면(書勉)이란 이름으로 살았다. 훗날 사료와 외교문서, 고지도 연구 발굴이 일생의 업이 됨을 예언한 이름이었다.
 
아베 일본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운데)와 함께 한 최서면. [중앙포토]

아베 일본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운데)와 함께 한 최서면. [중앙포토]

옥중에서 가톨릭에 귀의한 고인은 6·25전쟁 중 부산에서 고아원 운영에 헌신하다 노기남 전 대주교에 의해 가톨릭총무원 사무국장으로 발탁됐다. 이 때 사무총장이던 장면 전 총리의 비서를 겸직하는 바람에 자유당 정부에 의해 장면 측근으로 분류됐다.
 
운명은 1957년 급전한다. 자유당 정부가 장덕수 사건을 재론하면서 체포 위기에 처한 고인은 망명길에 올랐다. 도쿄에 머무는 중 국회도서관 등에서 일제 강점기 사료들을 접한 뒤 삶의 방향을 한국 근현대사 연구로 틀었다. “사료의 바다에 빠져 보니, 한국 역사를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닫고 한없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이후 사료 연구에 파고 들었다.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고서점에서 찾았고, 야스쿠니 신사 뒷켠에 방치된 임진왜란 당시 북관대첩비를 찾아내 한국 반환이 성사되도록 했다.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란 주장을 반박할 일본 사료들을 다량 발굴해 학계에 전파한 것도 고인이다.
 
안중근의 유묵 ‘국가안위노심초사’를 일본인 소장자로부터 반환받았다. [중앙포토]

안중근의 유묵 ‘국가안위노심초사’를 일본인 소장자로부터 반환받았다. [중앙포토]

1987년까지 30년 간 일본에 체류한 고인은 일본 정계와 학계, 언론계에 두터운 인맥을 쌓았고 한번 인연을 맺은 일본 지도층 인사들을 친한파로 만들었다. 그 중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와의 교분은 각별했고 이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많은 자문과 도움을 주었다. 그의 집은 한·일 관계에 난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해 주는 제2의 대사관 역할을 했다.
 
고인의 박학다식은 타고난 기억력과 집념, 노력의 결과였다. 유머와 여유 넘치는 인품, 원칙을 잃지 않는 자세, 사물의 본질을 궤뚫는 혜안을 배우려 그의 주변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본 정부와 일본인의 역사 인식은 가차없이 비판했지만, 일본 각계의 인사들은 ‘최서면을 둘러싼 모임’을 만들어 고인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그가 남긴 유산은 방대한 연구자료가 전부다. 상당수는 생전, 모교인 연세대 도서관과 외교통상부 등에 기증했다. 고인은 한국과 일본의 연구기관에 구술 회고록을 남겼다. 그 가운데 일본 연구자에게 남긴 일부가 『최서면에 듣다』는 제목으로 지난달 발간됐다.
 
고인의 장례는 최서면박사장례위원회(공동위원장 김황식·이낙연)주관으로 가족·사회장으로 진행된다. 유족은 부인 김혜정 전 경희대 혜정박물관장과 미국에 거주하는 장남 앤디 등.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8일 오전 8시다.
 
예영준 논설위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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