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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친절이 사람 잡겠네, 적당히 친절합시다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71)

병원을 찾으려고 검색해보니 근처 병원들의 위치, 진료시간, 의사 수, 심지어 실제 이용자의 평가까지 나온다. 식당에 대한 평가가 ‘맛있다/맛없다’라면 병원 평가는 ‘잘 낫는다/안 낫는다’여야 할 텐데, 대부분 ‘친절’에 대한 평가였다.
 
아픈 몸을 보여주고 맡기려니 친절도는 꽤 중요한 요소다. 잠시 고민하다 ‘의사는 친절한데 직원이 불친절하다’는 병원에 갔다. 평가 이후 개선되었는지 사람에 따라 달랐는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아주 친절했다. 혹시 직원이 야단맞거나 바뀐 건 아닐까? 살벌함이 느껴진다. 도대체 친절이 뭐길래 사람을 불편하게, 화나게, 때로는 억울하게 만드는 걸까?
 
친절은 외부와의 소통과 교류에 있어 피부 같은 것이다. 피부가 없다면 빗방울 하나도 쓰리고 아픈 법, 그러니 모두 친절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그렇게 중요하기에 우리는 친절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또 그 반대편에 섰을 때는 너무 과한 친절을 요구받으며 스트레스받기도 한다. 세상은 점점 삭막해지는 데 반대로 세상은 점점 친절해지니 참 묘한 일이다.
 
친절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우리는 다정함, 상냥함 등 자의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그런데 책임감과 완성도가 빠진 친절이 성립될 수 있을까? 평균 정도의 응대와 완벽한 일 처리, 이 정도면 친절 같은 게 문제 될 리 없을 것 같다. [사진 pexels]

친절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우리는 다정함, 상냥함 등 자의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많다. 그런데 책임감과 완성도가 빠진 친절이 성립될 수 있을까? 평균 정도의 응대와 완벽한 일 처리, 이 정도면 친절 같은 게 문제 될 리 없을 것 같다. [사진 pexels]

 
어린 시절의 비슷한 말, 반대말 써오기 숙제가 떠오른다. ‘친절’의 반대말은 ‘불친절’이었다. 일치-불일치, 만족-불만족, 합격-불합격처럼 ‘아니 불(不)’의 뜻을 알게 되면서 세상은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딱 두 가지로 정리됐다. 그런데 정말 친절의 반대말이 불친절일까?
 
우선 나 자신에게 추상명사를 몇 개 던져보자. 나는 효자인가, 불효자인가, 우리 가족의 삶은 조화로운가? 부조화인가? 대부분 중간 어디쯤이다. 친절도 그렇다. 친절하지도 않고 불친절하지도 않은 상황이 반복되고, 우리는 그때마다 만족도 불만족도 아닌 기분으로 살아간다.
 
사실 굳이 친절이 필요 없는 때도 잦다. 자동판매기 앞에서나 뭘 간단히 주고받거나 바쁘게 거래할 때 친절보다 중요한 가치는 효율, 신속, 정확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친절의 반대말은 불친절보다 무(無) 친절, 즉 ‘친절함이 없는 상태’ 아닐까.
 
친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상당히 자의적이다. 좋은 표정과 상냥한 목소리로 길을 가르쳐주면 친절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식당 주인이 공깃밥을 서비스로 주면 친절하다 하고, 누구는 신호를 위반했는데 친절한 경찰이 봐줬다고 하며, 젊은 사람이 자기를 ‘아빠, 엄마’ 하며 불러주는 걸 친절로 여기는 어른도 있다. 공통점은 ‘나한테 좋은 것’이다.
 
하여튼 친절이 뭔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나’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친절의 모습이 왜곡될 때도 잦다. 특히 ‘을’의 입장에서 친절은 갑의 공격에 대비해 꼭 챙겨 입어야 하는 갑옷이다. 높임을 나타내는 ‘시’를 말끝마다 붙여 “주문하신 라떼 나오셨습니다” 하는 종업원은 “잘못된 어법인 줄 알지만 안 그러면 손님이 불친절하다며 화낸다”고 한다. 갑질 겪는 것보다 속 편하다는 것이다.
 
70~80년대만 해도 ‘친절본위’, ‘신용본위’가 적힌 가게가 많았다. 당시로써는 새롭게 중요성을 인식한 가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기술본위’, ‘실력본위’는 본 기억이 없다. [사진 박헌정]

70~80년대만 해도 ‘친절본위’, ‘신용본위’가 적힌 가게가 많았다. 당시로써는 새롭게 중요성을 인식한 가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기술본위’, ‘실력본위’는 본 기억이 없다. [사진 박헌정]

 
윗세대 분들은 친절을 ‘정(情)’, 특히 ‘다정함’으로 여길 때가 많다. 아파트 경비가 인사하면 친절하다 하고, 자신도 은행 직원에게 말 붙이거나, 남의 아이나 강아지 쓰다듬기를 좋아한다. 이런 정서에는 좋은 마음이 깔려있지만 젊은 세대는 불편해할 때가 많고 다정함이 오작동하면 오지랖이 된다.
 
오래전에 담양에서 떡갈비를 먹는데 값에 비해 양이 적고 더 추가하고 싶은 맛도 아니라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나는 좀 적게 먹었다. 그걸 본 종업원 아주머니가 큰 소리로 “아이고, 새끼들 먹이느라고 아빠는 안 먹네” 한다. 말은 맞는데 내 고모도, 이모도 아닌 사람이 왜 그런 말을… 아무리 다정한 게 좋아도 보편적인 양식과 ‘거리두기’는 필요할 것 같았다.
 
친절도 다정함도 다 좋지만 기본적인 경쟁력은 품질이다. 70년대 동네 이발소에 붙어있던 ‘친절본위(親切本位)’, 얼마나 친절하지 않던 시대였으면 친절이 핵심가치였을까. ‘신용본위’도 있었다. 하지만 ‘기술본위’는 본 적 없다.
 
기내식 맛있고 친절한데 사고 잦은 항공사, 환자를 잘 기억해주는 데 낫지 않는 병원, 친절하게 가르쳐준 길로 가보니 엉뚱한 곳, 끝까지 공손한데 해결해주지 못하는 콜센터… 친절만 있고 답은 없는 게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가. 그건 불친절이다.
 
자꾸 내 눈높이를 기준으로 서비스를 기대하다 보니 친절에 대한 과한 요구가 생기고 그것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나도 누군가로부터 과도한 친절을 요구받게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사진 pixabay]

자꾸 내 눈높이를 기준으로 서비스를 기대하다 보니 친절에 대한 과한 요구가 생기고 그것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나도 누군가로부터 과도한 친절을 요구받게 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사진 pixabay]

 
그렇다면 친절하면 좋지만 불친절하지도 않은, 그 ‘중간 어디쯤(Grey Zone)’에 친절을 놔두고, 본래 일을 잘 처리해서 상대의 이익을 지켜주는 사람이 친절한 사람 아닐까. 물론 내가 기대하던 친절은커녕 중간지대까지도 닿지 않는 친절로 분통 터질 때도 있다. 솔직히 그럴 땐 어떡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눈높이만 고집하면서 친절에 대한 기대수준을 높여가면 서로 옭아매게 되지 않을까.
 
회사는 직원에게 더 친절하라고 몰아붙이고, 손님은 특정 상황을 포착해서 인터넷에 고발한다. 결국 그 속에서 족쇄에 묶이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 미소에서 진심은 점점 빠져나가고 업무에 집중하면서도 고객 불만이 접수될까 봐 중간중간 웃음을 내보여야 한다. 서글픈 일이다.
 
친절? 물론 상대를 존중하는 일이지만 적당해야 한다. 사람 잡는 친절 말고, 사람 행복하게 만드는 친절이 필요하다. 친절은 중간지대에 놓아두고, 서로 하기로 약속된 일부터 정확히 챙기는 건 어떨까.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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