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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피할 수 없다면 깨자" 던 러시아…온난화로 열린 반전

러시아 아르한겔스크의 성당과 항구. 3월인데도 항구가 얼어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러시아 아르한겔스크의 성당과 항구. 3월인데도 항구가 얼어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19. 러시아의 부동항(不凍港)  

2017년 3월 말, 러시아가 주최한 제4차 국제북극포럼 참석을 위해 러시아 서북단, 북위 64도의 아르한겔스크(Arkhangelsk)에 도착했다. 북극바다로 이어지는 백해(White Sea)의 이 거점 항구도시는 한겨울이 지났음에도 북극권의 냉기를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기온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얼어붙은 강은 현지인들의 지름길로 이용되고 있었다. 더군다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참석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삼엄한 분위기는 필자를 좀 더 움츠러들게 했다.  푸틴은 우리 대우조선해양이 만든 쇄빙LNG선을 야말에서 인수하고 오는 중이었다.  
 
‘대천사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백해(White Sea)의 거점도시 아르한겔스크의 항구에 러시아의 신형 쇄빙선이 정박해 있었다. 저 멀리 남쪽바다 지중해와 연결된 흑해(Black Sea)의 도시 이름을 딴 노보러시스크호였다. 얼어붙은 아(亞) 북극의 항구에 따뜻한 흑해 도시 이름의 쇄빙선이라니…. 노보러시스크란 이름도 ‘새로운 러시아’란 뜻이었다.  ‘동토(凍土)의 제국’,  러시아가 얼마나 간절히 얼음 없는 바다를 원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러시아 백해의 항구도시 아르한겔스크.

러시아 백해의 항구도시 아르한겔스크.

한때 러시아 유일 국제자유무역항

 
아르한겔스크는 1584년, 러시아 절대 왕정의 창시자 이반 4세에 의해 건설된 도시다. 백해로 흘러들어가는 북드비나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다. 1703년 표트르 대제에 의해 발틱해 연안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건설되기 전까지 러시아 유일의 국제자유무역항으로서 역할을 했던 곳이다.  
 
러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육지면적을 가진 대륙국가다. 하지만, 더 큰 세계인 바다로 진출하기 위한 여정은 쉽지 않았다. 러시아 해안 대부분이 사계절 얼음으로 덮인 북극해에 접해 있기 때문이다. 연중 출입항이 가능한 안정적인 항구, 즉 부동항(不凍港)의 확보는 지난 수백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였다. 이러한 항구의 부재(不在)는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러시아가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곳 아르한겔스크항에서 첫발을 뗀 러시아의 해양진출은 그마저도 겨울철에는 꽁꽁 얼어붙는 기후 때문에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부동항이긴 했지만 영국과 발틱국가들의 견제 때문에 대양 진출기반으로서는 여의치 않았다. 설상가상, 크림전쟁(1853∼1856년)에서 패하면서 결과적으로 남쪽 흑해와 지중해에서의 해상 주도권도 상실하였다.
아르한겔스크항구의 신형 쇄빙선.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아르한겔스크항구의 신형 쇄빙선.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얼음, 피할수 없다면 깨자"

 
러시아는 반대쪽 아시아로 눈을 돌려 1860년 베이징조약을 통해 태평양으로 나갈 수 있는 블라디보스톡 항구를 얻었다. 그러나 외해의 결빙으로 완전한 부동항이 되지 못했다. 청일전쟁(1894~1895년)에서 승리한 일본이 차지하려 했던 랴오동(遼東) 반도를 삼국간섭을 통해 저지하면서 잠시 동안 뤼순항을 지배했지만, 러일전쟁(1904~1905년)의 패배로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렇듯 러시아에는 얼지않고 상시운영 가능한 항구의 확보는 전쟁도 불사해야 하는 국운을 건 오랜 숙원이었다.
 
자유로운 항행을 위한 러시아의 욕망은 기술 개발로 이어졌다. 얼음을 피할 수 없다면 깨자는 것이었다. 1898년 최초의 북극 쇄빙선인 ‘예르막’을 시작으로 1957년 최초의 원자력쇄빙선 ‘레닌’을 건조하여 얼음바다 위의 항행기간과 구간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총 44척의 쇄빙선단을 꾸려 세계최대의 규모를 확보하고 있다. 덕분에 북극해에서의 항행주도권 유지와 해양안보능력에 있어 여타 국가를 앞서는 가장 강력한 기반이 되고 있다.
 
한편, 20세기 초반에 인간의 오랜 노력을 비웃듯 러시아의 부동항은 전혀 예상치 못 한 곳에서 나타났다. 북위 69도의 북극해에 위치하고 있지만, 북대서양해류 덕에 바다가 얼지 않는 스칸디나비아 북쪽 끝의 무르만스크항이 러시아 최초의 부동항이 된 것이다. 얼음을 피하기 위해 수세기 동안 부동항 찾기를 했지만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북극해 한복판에서 부동항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미약한 배후 세력권과 혹한의 기후로 인해 활용이 제한적이었고, 군사항으로 출발한 탓에 건설 후 거의 80년이 지나서야 상업항 기능이 추가되었다. 어쨌든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무르만스크에서 북극항로를 비롯한 북극해 개방과 북극평화지역 설립을 1987년에 제안한 것은 본격적인 부동항 확보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3월말의 아르한겔스크는 여전히 영하 10도를 넘어서는 한겨울이다. .얼어붙은 강은 현지인들의 지름길로 이용되고 있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3월말의 아르한겔스크는 여전히 영하 10도를 넘어서는 한겨울이다. .얼어붙은 강은 현지인들의 지름길로 이용되고 있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온난화로 열린 '북국' 러시아의 기회

 

21세기 들어 또 한 번의 반전이 나타났다. 지구온난화로 북극해의 결빙해역이 줄어들면서 상황이 또다시 변한 것이다. 북극해의 자연적인 개방은 러시아로서는 그동안 갈구했던 부동항을 다수 확보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등의 서방 해양강국의 간섭받지 않는 국제해운항로를 확보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북극권에 묻혀있는 막대한 자원개발을 위한 강력한 동기를 가지게 했고, 이에 필요한 첨단기술 발전까지 이룰 수 있는 혁신적인 성장동력을 갖게 됐다.  더불어 외자유치는 물론 북극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을 포함한 자국민들의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보장해, 장기적으로는 방대한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룰 전기도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얼어붙은 북극해 때문에 해양진출을 위해 수백년간 대서양과 지중해, 태평양을 떠돌면서 부동항이라는 보물을 찾아 험난한 여정을 거쳐 온 러시아가, 기후변화로 북극해가 녹으면서 갑자기 해양국가로 변신하게 된 것은 무척이나 역설적으로 비춰진다. 앞으로 러시아는 부동항을 이미 구축된 강력한 쇄빙선단과 결합시키고, 여기에 북극항로와 자원개발 잠재력을 더하여 북극해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꿀 것이다. 그리고 이 차가운 북극의 공간과 자원은 러시아에게 극동과 유럽국가들과의 새로운 협력을 열어갈 뜨거운 이슈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불안정한 국제정치로 인해 가야할 길이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최소 10년간은 우리가 북극을 주목해야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이다.
 
20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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