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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莫道君行早<막도군행조>

한자세상 5/23

한자세상 5/23

“그대가 먼저 나섰다고 말하지 말라. 그대보다 먼저 출발한 이가 있다(莫道君行早 更有早行人).” 중국 명(明)나라 말기 잠언(箴言)을 모은 계발서 『증광현문(增廣賢文)』의 한 구절이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라며 겸양(謙讓)을 권하는 격언이다. 송(宋) 승려 도원(道原)은 선승(禪僧)의 행적을 기록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아침 일찍 일어났다 했더니 밤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謂言侵早起 更有夜行人)”고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우한(武漢)에서 코로나19가 퍼지던 지난 1월 17~18일 미얀마를 국빈 방문했다. 중국이 올 한 해 주변국 외교에 힘쓰겠다는 메시지였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그대가 가는 길 이르다 말라, 도처에 친지와 친구가 있다(莫道君行早 是處有親朋)”라며 미얀마 방문을 결산했다. 관영 매체가 곧이어 “막도군행조, 시처유친붕”을 합창했다.
 
왕 부장이 인용한 문장은 마오쩌둥(毛澤東)과 천이(陳毅)의 시 두 편에서 따왔다. 1934년 마오는 장정에 앞서 ‘청평락회창(淸平樂·會昌)’을 지었다. “동방이 밝아 오니 그대 가는 길 이르다 하지 마오/ 청산을 두루 다녔어도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東方欲曉 莫道君行早 踏遍靑山人未老).” 장제스(蔣介石)에게 쫓기면서도 필승을 다짐한 구절이다. 겸양 대신 패기를 담았다.
 
1964년 천이 당시 외교부장은 미얀마·알제리 등 아시아·아프리카 6개국을 순방했다. 귀국 후 육국행(六國行)을 지어 마오에게 첨삭을 부탁했다. “서역으로 만리 길 급히 가면서, 바람 타고 우주를 주름잡노라/ 붕새가 날개를 펴지 않으면 새들이 어찌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으리/ 바다는 천 잔의 술을 빚는 듯 파도 거세고, 산에는 나무숲 만 겹 우거졌네/ 대지에 폭풍우 휘몰아치니 도처에 우리 친지와 벗이 있다네.(萬里西行急 乘風御太空/不因鵬翼展 哪得鳥途通/海釀千鐘酒 山裁萬仞葱/風雷驅大地 是處有親朋)” 마오는 고칠 데 없다며 칭찬했다.
 
미국과 대결이 힘에 부치던 올 초 중국이 마오와 천이의 시를 소환한 이유는 절박함이었다. 중국발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번졌다. 세계는 중국과 관계 조정에 나섰다. 중국은 절박함 대신 호전적인 ‘늑대 전사(戰狼·전랑)’ 외교 일변도다. 중국에 지금은 “이르다 말라”는 마오의 패기보다, 겸양의 가르침이 필요하겠다.
 
신경진 중국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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