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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탈출, 자선보다 연대

가난한 사람들의 선언

가난한 사람들의 선언

가난한 사람들의 선언
프란시스코 판 더르

보에르스마 신부의 실험
커피 농장 생산자들과 공정무역

호프 보에르스마 지음
박형준 옮김
마농지
 
“자선은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폭력과 배제에 종속되도록 밀쳐 버린 후 돈을 뿌리는 ‘병 주고 약 주는’ 행위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방치된 현실에 회계하고자 자선을 한다.”
 
우리에겐 ‘자선’에 대한 일상적인 믿음이 있다. 자선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사회적 선의이며, 가진 자들의 의무라는 생각. 하지만 앞에 인용된 주장에 대해 ‘비뚤어지고 잘못된 생각’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반박하기엔 꺼림칙한 게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어서다. 자선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위기를 넘기게 할 수 있는 정도일 뿐, 가난을 구제하는 구체적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자선의 대상이 되는 그들은 계속 가난 속에 살게 되리라는 것도. 그런데도 자선의 선의를 믿고 싶은 것은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 구체적 수단을 알지 못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자선을 거부하라”는 보에르스마 신부의 메시지는 강렬하게 다가왔다. 프란시스코 판 더르 호프 보에르스마. 네덜란드 출신 카톨릭 사제로 신학과 정치경제학 등 4개의 박사학위를 받은 지식인. 그의 말이 무게감 있게 다가온 것은 그가 바로 공정무역의 창안자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는 멕시코의 가난한 산악 지역 커피 소작농들과 30여 년간 육체 노동과 가난을 함께 하며 공정무역이라는 대안경제를 만들고 실천한 이론가이자 실천가이다.
 
커피 농부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에티오피아 남부 커피 농장. 커피 세척, 건조 시설도 농부들이 만들었다. [사진 마농지]

커피 농부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에티오피아 남부 커피 농장. 커피 세척, 건조 시설도 농부들이 만들었다. [사진 마농지]

보에르스마 신부가 쓴 『가난한 사람들의 선언』(마농지)에선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음직 한 ‘공정무역’의 발상과 실천과정, 그리고 기업이나 조직이 아닌 ‘사람’을 위해 작동하는 대안 경제로서의 ‘사회적 연대’에 대한 철학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사회적 연대를 통해 성공한 공정무역. 멕시코 커피농장에서 시작된 공정무역의 모델은 단순하다. 생산자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중개상을 거치지 않고 직접 커피를 수출하는 경로를 만든 것이다. 이전에는 커피 중개상들과 다국적 기업들이 수익을 대부분 독점하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생산자들은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경제 모델조차도 그동안 수익을 독점해온 다국적 기업들의 협박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다국적 기업들은 우리의 앞길을 막으려고 마피아와 같은 행태를 드러냈다.” 이 어려움은 역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소상점과 소규모 커피회사들과의 연대를 통해 뚫고 나갈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살길은 결국 함께 힘을 모으는 것, ‘연대’하는 것이다.
 
보에르스마 신부는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자존감을 지키면서 비참함에서 탈출해 품위있게 사는 것이라고 말이다. 자선은 가난한 이들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시킨다. 돈을 주는 대신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연대하는 것, 기부나 보조금 대신 노동에 가치를 부여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가난을 구제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지성인 한 사람의 열성과 헌신’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멕시코 커피 농장에 보에르스마 신부가 있었으므로 수 세기에 걸쳐 끊어내지 못했던 빈곤을 끊을 수 있었다는 것. ‘사람을 지켜내는 지성인의 힘’을 확인한 것이 이 책을 읽고난 뒤 남은 또 하나의 수확이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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