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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중 팬데믹…필사의 쿠바 탈출, 뉴욕선 ‘피자 집콕’

코로나 오디세이…좌절된 부부의 7개월 여행 꿈

3월 17일-쿠바 아바나의 거리.

3월 17일-쿠바 아바나의 거리.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었다. 하루빨리 빠져나가야 했다. 하지만 쿠바는 지구상  최악의 장소였다. 인터넷으로 비행기 표를 예약하기엔 말이다.  
 

“번 돈 몽땅 털어 여행” 의기 투합
남편은 휴직하고 아내는 사표 내

22개국 중 절반도 못 가고 포기
취소한 항공권 아직 환불 못 받아

런던 거쳐 103일 만에 한국 귀국
자가격리 앱, 보건소 관리에 안심

 
 쿠바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인터넷 연결 카드를 먼저 사야 한다. 한 장을 사면 한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그다음엔 와이파이를 연결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하긴, 누가 쿠바에서 빠른 인터넷을 기대하겠는가. 전 세계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 건 문명이 닿지 않은 나라, 쿠바라서가 아닌가.  
 
 
 3월의 아바나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아바나를 즐길 수 없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고색창연한 건물도, 카리브 해안가에 늘어선 형형색색의 구형 자동차도 우리에겐 사치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쿠바를 빠져나갈 수 있는 비행기 표였다. 하지만 파나마 국적의 코파항공 사무실이 있는 낡은 회색 건물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항공사 사무실의 여자는 최소 이틀 밤낮은 줄을 서야 우리 차례가 될 거라고 말했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다. 쿠바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있었다. 전 세계가 팬데믹의 공포에 휩싸이는 중이었다.  
 
 
 2018년 11월 마치 장맛비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오후, 한국인 아내와 영국인인 나는 부산 해운대 한 카페에서 세계여행을 결심했다. 오랫동안 둘만의 긴 여행을 꿈꿔왔던 터였다. 계속 미뤄왔던 그 꿈을 이번엔 정말 꼭 이루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 동안 번 돈을 몽땅 이 꿈의 여행에 투자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 후 몇 개월 동안 우리 머릿속엔 세계여행에 대한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22개 나라를 7개월 동안 여행하기로 했다. 2019년 12월부터 발리, 호주, 뉴질랜드, 쿡 아일랜드를 여행하고 3월 말부터는 미국, 유럽, 아프리카를 돌기로 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아내는 회사에 사표를 냈고 나는 휴직을 신청했다. 항공권과 숙소 예약은 완벽했다. 문제는 딱 한 가지, 여행의 출발 일을 2019년 12월로 잡은 거였다.    
 
 
 
출발하는 날 ‘신종 폐렴 감염’ 첫 소식
 
  우리가 한국을 떠난 2019년 12월 19일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성 폐렴이 집단 발병해 9명이 신종 희귀 전염병에 걸린 것 같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가 호주 시드니에서 2020년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감상하고 있던 즈음 코로나19가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됐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코로나19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하던 2월 초 우리는 뉴질랜드에 있었다. 도보 여행을 하던 우리 귀에 뉴질랜드 정부가 중국에서 오는 여행자의 입국을 금지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화제에 오르기 시작했다. 바이러스는 별로 걱정스럽지 않았지만, 인종차별은 걱정이 됐다. 여행이 조심스러워졌다.  
 
 
 2월 7일 뉴질랜드를 떠나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쿡 아일랜드로 이동했다. 쿡 아일랜드 라로통가 섬 입국 심사대 직원은 아내를 쭉 훑어보더니 조사를 더 해봐야겠다고 했다. 관련 서류에도 여권에도 우리 둘 다 한국에 살고 있다고 분명하게 적혀있었지만, 조사를 받아야 하는 건 아내뿐이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우리는 분명 같은 곳에서 와서 함께 여행하고 있는데, 아내 혼자만 따로 불려가 건강 상태와 최근 이동 경로에 대한 기나긴 질문에 답해야 했다.  
 
 
 일주일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자에 대한 체온 검사도 건강상태에 대한 질문도 없었다. 해변과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코로나 19는 미국과는 거리가 먼일인 것 같았다. 다음날 멕시코로 향했다. 멕시코 입국도 문제 없이 이뤄졌다.  
 
 
 이때만 해도 우리는 우리가 한국에 없는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멕시코 여행 기간 한국의 확진자 수는 빠르게 늘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여행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시기는 없을 거라며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3월 5일, 우리는 예정대로 코스타리카 행 비행기에 올랐다. 전날 코스타리카 정부가 한국에서 오는 여행자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지만, 산호세공항 입국 심사에서 지난 3주간 멕시코에 있었다고 하자 별말 없이 입국을 허가했다. 당시 전 세계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수는 9만7343명, 한국은 5756명이었는데, 열흘 후 코스타리카에서 나올 땐 전 세계 16만5201명, 한국은 8162명으로 늘었다.  
 
 
 그리고 3월 11일 우리가 몬테베르데 운무림에서 자연을 느끼고 있을 때 WHO가 팬데믹을 선언했다. 몬테베르데 남쪽 케포스에서 우리는 여행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질지 모른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여행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계획하고 준비한 것을 포기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아직 여행해야 할 나라가 15개국이나 남아 있었고, 20개가 넘는 항공권이 예매돼 있었다.    
 
 
3월 28일-런던 히스로공항. 사람들이 지친 모습으로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3월 28일-런던 히스로공항. 사람들이 지친 모습으로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다음 여행지인 쿠바에선 3월 11일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미국에선 1000명, 영국에선 500명에 가까운 확진자가 보고됐다. 전 세계 확진자 수는 10만 명이 넘었고, 그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3월 14일 미국은 유럽뿐 아니라 영국에서 오는 여행자까지 입국을 금지했다. 영국 여권을 가진 내가 미국에 들어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뉴욕에서 만나 함께 여행하기로 했던 영국의 가족들도 미국에 들어갈 수 없었다.  
 
 
 계획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고,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이때 바로 한국에 오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여행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3월 15일 케포스에서 산호세를 거쳐 코스타리카를 떠나 멕시코시티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날 쿠바로 이동하기 전, 우리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여행을 완전히 중단하고 한국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일정을 조금씩 변경하며 여행을 이어나갈까,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계획한 대로 여행을 계속할까.  
 
여전히 결론은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다’였다. 아바나 여행 기간을 줄이고 영국으로 가면 괜찮을 거다, 영국의 가족들은 우리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 줄 거라고 생각했다.  
 
 
 3월 16일 아침, 아바나로 떠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바나에서 3박 4일 지낸 후 파나마를 거쳐 뉴욕으로 가서 바로 런던 행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영국에 좀 있다가 4월에 아이슬란드로 가자, 가서 다시 여행을 계속하자.  
 
 
 우리는 뉴욕행 비행기 표의 출발 날짜를 변경하기 위해 코파항공에 전화했다. 분명 코파항공 홈페이지에는 전화로 출발 날짜를 변경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쓰여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십 번 수백 번 전화해도 마찬가지였다. 영국과 미국에 있는 가족들을 총동원해서 코파항공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단 1초도 연결이 안 됐다. 다음 날 오전 7시 우리는 택시를 타고 멕시코시티 코파항공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 문이 열릴 때까지 가방 위에 걸터앉아 기다렸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건물 경비원은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3월 중순, 정말 평범한 월요일 아침이었다.
 
 
 쿠바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변경하지 못하면 나흘 뒤 뉴욕에서 런던으로 가는 계획도 무산될 수 있다. 구글 검색을 계속했다. 멕시코 공항에 코파항공 사무실이 있는 것으로 검색됐다. 다시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달렸다. 하지만 공항에 코파항공 사무실은 없었다. 구글이 틀렸다.  
 
 
 3월 16일 오후 6시 아바나에 도착했다. 쿠바가 국경을 봉쇄하기 나흘 전이었다. 이곳에서 할 일은 뉴욕행 비행기 표를 바꾸는 것, 그뿐이었다. 숙소 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다음 날 아침 코파항공 사무실이 문을 열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안심됐다. 그래 다 잘 될 거야. 따뜻한 태양 아래서 모히토를 마시고 시가를 피우며 남은 아바나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친절하게 비행기 표를 바꿔줄  코파항공 직원이 아니었다. 사무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도착한 우리를 맞이한 건 길고 긴 줄이었다. 줄은 3층부터 1층까지 계단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줄을 선지 1시간 반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왔다는 여자는 집에 돌아갈 비행기가 취소됐다며 전날부터 줄을 서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날씨는 덥고 습했다. 우리는 고립되었고, 계획한 시간 안에 뉴욕에 갈 방법도 없었다. 두려웠다. 이제 중요한 건 쿠바 여행이 아니라 쿠바 탈출이 됐다.  
 
 
 
3월 20일-뉴욕 JFK공항. 항공편 대부분이 취소됐다는 표시가 보인다.

3월 20일-뉴욕 JFK공항. 항공편 대부분이 취소됐다는 표시가 보인다.

 줄 서는 건 포기하고 가까운 호텔로 달려가 인터넷 카드를 사서 와이파이에 연결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날 밤 아바나에서 미국 마이애미로 가는 항공편이 있었다.  
 
 
 3월 17일 밤 11시 악몽 같은 쿠바에서의 약 24시간을 보낸 후 미국 마이애미로 향했다. 3월 18일 자정 조금 넘어 마이애미에 도착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6000명 이상의 확진자와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이애미공항에서는 누구도 우리에게 건강 상태나 이동 경로를 묻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약하기 위해 다시 마이애미공항으로 갔다. 하루라도 빨리 런던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직항은 없었다. 뉴욕을 먼저 가야 했다. 50분 뒤 출발하는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뉴욕에 도착하니 오후 3시였다.  
 
 
 우리는 사흘 전 같은 시각에 코스타리카에서 나왔다. 그 후 3일은 악몽이었다. 3개 나라에서 한 일이라곤 항공사에 전화하고, 답을 기다리고,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닌 게 다였다.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버렸다.  
 
 
 영국 가족의 품이 어둡고 긴 터널 끝에 있는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영국 가족에만 가면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다 괜찮아질 것 같았다. 휴식을 취하고 좀 회복하면서 기다리면 상황이 나아지고, 그러면 다시 여행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영국에 꼭 가야만 했다.
 
 
3월 19일-뉴욕 퀸스의 한 마트. 판매대가 텅 비어 있다.

3월 19일-뉴욕 퀸스의 한 마트. 판매대가 텅 비어 있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런던행 비행기 표를 위해 버진애틀랜틱항공사 창구로 갔다. 그곳의 창구 앞에도 긴 줄이 있었다. 2시간을 기다린 끝에 들은 말은 ‘출발 일자를 변경할 수 없는 항공권입니다’ 였다. 항공사 공식 홈페이지가 아닌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구매한 항공권은 출발 날짜 변경이 안 된다고 했다. 2박 3일 동안 우리는 코로나19가 한창 극성인 뉴욕에서 지내야 했다.
 
 
 꿈에 그리던 맨해튼 여행이었지만 이제는 유령 도시가 돼버린 맨해튼. 이제 더는 여행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퀸스에 사는 친구에게 가기로 했다. 친구 집 근처  호텔에 머무르며 테이크아웃 피자와 넷플릭스에 의존하며 지냈다. 이틀 뒤 예정된 비행기가 제발 취소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면서.  
 
퀸스에서의 이틀은 마치 어두운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영화 같았다. 사람 없는 거리, 문 닫은 가게들. 그나마 문을 연 가게의 선반도 텅 비어있었다.  
 
 
 우리가 뉴욕에 도착했을 때 뉴욕의 코로나 19 확진자 수는 2382명이었다. 이틀 후 우리가 떠날 때의 확진자 수는 7102명이었다.  
 
 
 드디어 3월 20일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7시간 비행 후 런던에 도착했다. 비행기 기장은 안내 방송에서 언제 다시 비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많은 직원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며 울먹였다. 마음이 먹먹했다.  
 
런던 히스로공항에 들어섰지만 아무도 우리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거나 여행 경로를 묻지 않았다. 오히려 전자여권 게이트를 통해 자동 입국심사를 해서 누구와도 만날 필요가 없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어쨌든 우리는 원하고 또 원했던 가족의 품으로 드디어 갈 수 있었다.  
 
 
 당시 영국 확진자 수는 거의 4000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사망자는 200명 가까이 됐다. 한국보다 2배 이상 많은 숫자였다.  
 
 
 우리가 영국에 도착한 지 사흘 후, 영국 정부가 국가 전체 봉쇄령을 내렸다. 우리는 집 안에만 있어야 했다. 생필품을 사거나 하루 한 번 운동하러 집 밖에 나갈 수 있었지만, 그 외 활동은 금지됐다. 세계여행에 대한 기대는 사라져갔다.  
 
 
안전한 피난처이자 천국일 것 같았던 영국 생활도 감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 안에 네 가족이 함께 지내야 했는데 장을 보러 자주 나갈 수가 없으니 음식을 먹을 때도, 집안의 물건을 함께 쓸 때도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한국에 돌아가기로 했다.  
 
 
  한국행 비행기 표를 구하는 건 마치 전쟁 같았다. 언제 어느 항공사가 갑자기 비행 일정을 취소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유럽을 빠져나가 아시아로 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직항이든 경유든 항공권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모든 항공권 예매 페이지를 검색했지만, 직항은 찾을 수 없었다. 2~3회 경유는 기본이었고 가격도 평소보다 몇 배 높았다. 겨우겨우 아부다비에서 15시간 경유하는 에티하드 항공 티켓을 예매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아랍 에미리트 정부는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모든 노선을 2주 동안 취소한다고 선포했다. 다시 다른 항공권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일매일 각국의 국경 봉쇄 조치가 이어졌고, 그에 따라 항공사 티켓이 취소됐다. 겨우 티켓을 찾아서 결제하려고 하면 바로 항공권이 사라지곤 하는 일이 반복됐다. 우리가 과연 한국행 비행기 표를 살 수 있을까, 희망을 잃어가던 중 대한항공에서 추가 운항을 발표했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3월 28일 한국행 직항 티켓을 (평소보다 훨씬 비싼 값을 내고)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영국 전체가 봉쇄돼 공항으로 이동할 때도 경찰의 허가증을 따로 받아야 했다.  
 
 
 드디어 우리는 여행을 떠난 지 103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은 우리가 경험한 다른 나라들과 달랐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위치추적이 가능한 자가격리 앱을 다운받아야 했다. 입국심사 전 체온측정을 했는데 생각해보면 코로나 19 기간 여행 중 체온 측정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입국 절차를 마치고, 대중교통 이용을 피해 택시로 집으로 가는데 아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금 자가격리지 이탈하셨다고 나오는데요, 집에 안 계시는가요?” 관할 보건소 직원이었다.  
 
조금 전 입국 후 앱을 다운받아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니 담당 공무원은 미안하다며, 우리가 집에 도착한 후 다시 전화했다.  
 
 
 
다른 나라선 경험 못 한 한국의 대응
 
3월 28일-런던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짐 불리·유진실 부부.

3월 28일-런던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짐 불리·유진실 부부.

 귀국 바로 다음 날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았고, 검사받은 지 8시간 만에 문자로 결과를 받았다. 다행히 음성이었다. 검사받은 날 기준으로 2주 동안 우리는 자가격리를 했다. 매일 2개 앱에 건강 상태와 증상을 보고해야 했고, 관할 구청과 보건소에서 거의 매일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하는 공무원들의 목소리는 정중했고, 미안함이 묻어있었다.  
 
 
2주 자가격리 기간, 여러 음식이 들어 있는 구호 박스와 지역 농산물 박스, 탈취제, 마스크, 손 소독 젤 등이 포함된 박스까지 무료로 받았다. 일주일에 3~4번은 담당 공무원이 직접 와서 자가격리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가정 내 쓰레기 처리를 위해 쓰레기봉투를 챙겨주는 섬세함도 보여줬다.
 
 
 한국 정부의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인권침해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나라를 다니며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고, 그때마다 알아서 대처하고 스스로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던 우리에게 2주 동안 한국 정부의 도움은 정말 큰 안심됐다.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이후 우리는 3개 대륙 6개국을 여행했고, 그중 미국, 영국, 한국에서 어느 정도의 자가 격리와 봉쇄를 경험했다. 우리가 여행을 계획했지만 결국 가지 못한 국가들 대부분이 현재 국경을 닫거나 필수 검역 조치를 도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중이다. 우리가 계획했던 장기여행을 다시 갈 수 있으려면 아마 몇 년은 더 지나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19 백신이 나올 때까지는 세계를 여행하는 계획을 하는 것조차 불가하겠지만, 우리의 세계여행 이야기에 잠시 책갈피를 끼워두고 기다리면 언젠가 아직 다 여행하지 못한 나라들을 여행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직 취소한 비행기 표 값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니까 말이다  
 
 
사진·글=짐 불리·유진실 코리아중앙데일리 비즈니스 에디터 jim.bull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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