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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뉴딜 ‘토끼’만 좇지 말고…기후위기 ‘사슴’을 잡아라

포스트 코로나 경제 과제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 3년 대국민 특별연설을 했다. 연설에 담긴 전 국민 고용보험 단계적 추진에 주목한다. 고용보험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일자리를 잃거나 위협받는 임시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보호망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배송 업무가 폭주하면서 배송기사들은 노동현장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다. 지난 3월 분초 단위로 뛰어다니던 쿠팡 소속 40대 배송기사의 죽음을 뉴스로 접했다. 이들은 건강이 자산이다. 건강 문제로 노동에서 배제되면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다. 이렇게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삶을 나라가 구제한다는 면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은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원청직원과 같은 업무를 해도 하청직원이라 임금을 덜 받고,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없고, 위험한 일은 도맡아야 하는 불공정한 노동환경을 고용보험 확대로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다.
  

디지털화는 이미 세계적인 흐름
굳이 ‘뉴딜’이라고 할 필요 없어

정부 경기 부양은 파편화된 정책
재생에너지 전환도 진척 안 돼

문 대통령 “그린뉴딜 포함” 지시
‘새 딜’에 걸맞는 경제 뼈대 세워야

195개 국가, 파리기후변화 협약에 서명
 
혁신은 이래야 한다. 경제가 고도성장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자리 잡은 불공정, 왜곡,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한국판 뉴딜로 내세운 ‘디지털 뉴딜’은 토끼 잡겠다고 사슴사냥 대오에서 이탈하는 행위와 다를 게 없다. 다만 문 대통령은 20일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을 포함하라고 지시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사슴사냥은 게임이론과 비슷하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사슴사냥에 나선 마을 주민들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마을의 주요 식량 공급원은 사슴과 토끼다. 주민들은 산자락부터 대오를 형성해 사슴을 정상으로 몰아가 포위해 잡는다. 사슴을 잡으면 주민들은 열흘간 고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사냥 도중 주민 하나가 옆으로 지나가는 토끼를 잡겠다고 대열에서 이탈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주민들은 사슴을 놓치고 만다. 한 주민이 토끼를 잡겠다고 대열에서 벗어나면서 생긴 틈으로 사슴이 빠져나간 탓이다. 마을 주민들은 사슴은 놓쳤지만, 대열에서 이탈한 주민은 토끼를 잡아 하루 치 식량을 구한다. 그가 토끼를 잡은 게 이득일까 이웃과 협력해 사슴을 잡는 게 이득일까? 이웃 주민들은 토끼를 잡겠다고 대오를 이탈한 주민을 가만히 놔둘까? 과연 그 주민은 토끼를 무사히 집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
 
기후위기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초래한 위기와 차원이 다르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했으므로 어떤 재난인지 가늠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어떻게 대처할 방법도 없다. 세계 과학자 90% 이상이 기후위기 원인으로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을 꼽는다. 가늠조차 되지 않는 위기를 막기 위해 195개 국가가 2015년 파리기후변화 협약에 서명했다.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국가부터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피해국까지 기후위기라는 사슴을 잡겠다고 대오를 형성한 것이다. 태평양에 산재한 작은 나라들까지 포위망에 합류했다.
 
디지털에는 굳이 뉴딜을 붙일 필요가 없다. 세계가 이미 디지털화로 나아가고 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같은 개인용 전자기기가 대량 보급되면서 디지털화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유럽 27개국 정상이 지난 3월 27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포괄적 경제 회복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디지털화를 통한 비대면 서비스 증가와 업무의 디지털화가 중요 의제로 떠올랐다. 유럽의 디지털화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수단을 담았다는 점에서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의 디지털 뉴딜은 뉴딜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좁고 파편화된 정책이다. 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을 포함하라고 지시했지만, 다음 달 발표할 세부 내용이 관건이다. 기존 사회·경제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딜은 뉴딜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1932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한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가 뉴딜이다. 미국 정부는 사회보험과 노동조합 육성 정책으로 당시 가장 고통받던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뉴딜은 말 그대로 국가와 개인이 맺고 있던 기존 계약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계약을 뜻한다. 불합리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던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새로운 ‘딜(Deal·협약)’인 것이다.
 
한국의 디지털 뉴딜로는 한국 경제가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원청과 하청의 차별, 불공평한 임금 차이,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한 해 1만4000명에 이르는 대기오염 조기 사망자와 2000명이 넘는 산재사망자(2019년 기준)를 구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기후위기 해결 방안이 없다. 세계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대오를 유지하기 위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지속가능한 성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에릭 마머 유럽의회 수석대변인은 “유럽의 그린 딜은 유럽 경제 성장전략”이라고 강조한다.
  
유럽 그린딜, 기후위기 막는 수단 담아
 
한국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가 전력의 46%를 만들어낸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로는 전력 3%만 생산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의 디지털화는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230개 이상 기업이 재생가능에너지 100%로 전환을 선언했다. 국내 기업 중 재생가능에너지로 100% 전환을 실행한 곳은 없다. 삼성전자가 2017년 해외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선언했지만, 국내 공장은 대상에서 빠졌다. 네이버는 2015년 이를 선언했지만, 진척도는 언급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세계가 석탄 사용을 줄이고 있는 와중에 한국은 2022년까지 석탄발전소 7기(7기가와트 규모)를 새로 건설할 예정이다. 세계가 공적 금융을 통한 해외 석탄 투자를 중단했지만, 한국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공적 금융기관을 내세워 동남아시아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다. 한국이 기후위기를 잡기 위한 사슴몰이 대열에서 이탈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사슴을 잡아야 하는 이유조차 한국 정부는 모르는 듯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민에게 지속 가능하고 더 나은 삶을 제공해야 할 정부의 역할이 훨씬 중요해졌다. 정부는 ‘새로운 딜’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회·경제 구조의 뼈대를 구축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토끼 대신 사슴을 사냥해야 하는 이유다.
 
기후위기가 바꾼 경제지형…테슬라 시총, 폴크스바겐의 2배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10일 이산화탄소 환산 t당 75달러까지 탄소세를 올리도록 권고했다. 세계 탄소세는 평균 2달러에 불과하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경제가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지난 1월 “기후위기가 금융시스템을 완저히 바꿔놓을 것”이라며 “앞으로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블랙록은 5조6000억 달러(약 7000조원)를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50주년을 맞아 “기후위기 포함 환경 문제가 가장 실현 가능성 큰 리스크”라고 평가했다.
 
테슬라

테슬라

경제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기후위기는 세계 산업지형을 파괴적으로 바꾸고 있다. 전력 산업부터 보면 태양광·풍력의 발전 단가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석탄발전소가 줄지어 문을 닫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지난해 176 기가와트(GW) 늘어나 지난해 완공한 신규 발전설비의 72%를 차지했다. 2000년대 초반 이 수치는 20%가량이었다. 그마저 수력발전댐이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중 90%는 태양광과 풍력이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세계 자동차 판매대수는 7750만대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총 1097만대를 팔아 판매량 기준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폴크스바겐 시가총액은 710억 달러로 3위에 오르는 데 그쳤다. 시가총액 2위는 전기차·태양광·전기저장장치를 개발해 판매하는 테슬라(사진)가 차지했다. 지난해 전기차 40만대 남짓 판매한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1481억 달러로 폴크스바겐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324억 달러, 포드는 195억 달러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도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기후위기가 초래한 환경 변화에 맞춰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려면 파괴적 혁신을 감행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경제 문제이기도 하다. 기후위기가 국민과 경제에 가장 큰 위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 전략에서 탈피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기부양책으로 꼽는, 5세대 이동통신,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화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재생가능에너지에 기반을 두고 추진해야 한다.
 
이현숙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프로그램 국장
서울사무소 및 홍콩 프로젝트를 총괄한다. 2017~2018년 네덜란드 암스텔담 소재 그린피스 인터내셔널(본사)에서 석유 관련 선임 전략가로도 활동했다. 한국이 2050년 탄소순배출 제로와 재생가능에너지로 100% 전환 등 기후위기 분야에서도 세계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는 게 그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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