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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금수저 출신 정치 9단 루스벨트…'뉴딜 신화'로 진보의 세상 만들다

[리더십의 결정적 순간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위기 돌파 드라마

망토 차림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반려견 팔라 조각상(워싱턴 FDR 기념공원·1997년 개관). 오른쪽 아래 사진은 소아마비 극복 의지를 담은 휠체어 탄 루스벨트 동상(2001년 제작). 박보균 대기자

망토 차림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반려견 팔라 조각상(워싱턴 FDR 기념공원·1997년 개관). 오른쪽 아래 사진은 소아마비 극복 의지를 담은 휠체어 탄 루스벨트 동상(2001년 제작). 박보균 대기자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리더십 드라마다. 그는 미국의 유일한 4선 대통령(32대)이다. 집권 기간(1933~45)은 대공황과 전쟁 때다. 그는 국가 위기를 돌파했다.
 

뉴딜, 대공황 극복의 신화지만
결정적 해결사는 2차 세계대전
복제 계속되나 벤치마킹 힘들어

루스벨트 ‘여우와 사자’ 넘나들며
대중교감 언어 만들어 위기 타개

80년대 레이건 진정한 보수 회복
586세력, 한국판 ‘뉴딜 연합’ 열망

루스벨트의 상징은 뉴딜(New Deal)이다. 그것은 경제 파탄의 대공황 극복 정책이다. 끊임없는 벤치마킹 소재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을 내걸었다. 코로나19 이후 디지털·그린 뉴딜 사업이다. 하지만 뉴딜의 성취·한계는 지금도 논란거리다. 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 탈출의 해결사였다. 루스벨트는 세상을 뒤집었다. 미국의 정치 지형은 재구성됐다. ‘뉴딜 진보연합’은 장기간 위력을 발휘했다. 나는 그 드라마를 찾아다녔다. 그것은 뉴딜의 진실 해부작업이다.
  
뉴욕주 하이드 파크의 방 35개 저택
 
뉴욕주 하이드 파크의 화려한 루스벨트 저택(국립사적지) 앞은 박보균 대기자. 박보균 대기자

뉴욕주 하이드 파크의 화려한 루스벨트 저택(국립사적지) 앞은 박보균 대기자. 박보균 대기자

미국 뉴욕주 하이드 파크(Hyde park). 그곳은 루스벨트의 고향이다. 뉴욕시 맨해튼에서 북쪽 130㎞. 나는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코로나19 창궐 오래전이다. 허드슨강변을 2시간쯤 달렸다. ‘루스벨트 국립 사적지’ 표지판이 나온다. 그곳은 스프링우드(Springwood)-. 네덜란드풍 저택과 정원이다. 그는 (1882~1945) 거기서 태어났다. 죽어서 그곳 장미 정원에 묻혔다. 그의 약칭 FDR(Franklin Delano Roosevelt)이 익숙한 곳. 친구 케네스 톰슨이 먼저 와 있다. 그는 올버니(뉴욕주 주도)에서 내려왔다. 전직 공공도서관 사서(대통령학)다.
 
안내문은 이렇다. “3층 집에 방 35개, 집과 땅을 합해 부지 3.24 ㎢, FDR은 부유한 귀족가문 외아들.” 그는 집에서 가정교사 교육을 받았다. 14세 때 사립 기숙학교(Groton) 입학, 하버드대를 나왔다. 전직 사서 톰슨의 호기심이다. “동부의 전형적인 금수저였던 루스벨트가 출신 계층과 달리 사회적 약자 위주의 정치를 편 것은 특별한 서사다.” 집 1층 전시공간은 100여 종의 박제된 새들이다. 그의 평생 취미는 우표수집. 톰슨은 “FDR은 추상적인 것을 싫어했다. 실물 수집은 그의 실용주의와 관련 있다”고 했다. 그는 12촌 엘리너(Eleanor) 루스벨트와 결혼했다. 엘리너는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대통령)의 조카다.
 
하이드 파크 정원에 루스벨트와 엘리너 동상(1933년 8월 대통령 부부 사진을 형상화). 박보균 대기자

하이드 파크 정원에 루스벨트와 엘리너 동상(1933년 8월 대통령 부부 사진을 형상화). 박보균 대기자

저택 옆은 박물관이다. 대공황(Great Depression) 전시물이 기다린다. 1920년대 경제는 번창했다.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가난이 추방될 날을 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재앙이 기습했다. 1929년 10월 주식시장 폭락이다. 대공황의 시작이다. 사진들은 우울하다. 은행 앞 현금 인출 인파, 대량 실업, 기업 도산, 굶주림이다. 나는 워싱턴의 FDR 기념공원을 떠올렸다. 그곳은 타이들 베이신(인공호수) 주변. 공원 조형물은 대공황의 악몽을 포착한다. 무료 급식 줄(bread line)의 조각상은 고통과 시련이다. 루스벨트는 권력의지를 단련했다. 1932년 그는 대선에 출마했다. 그는 소아마비(39세에 걸림)를 이겨낸 뉴욕주지사. 그해 7월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다. 그는 다짐한다. “미국인을 위한 뉴딜을 맹세한다.” 11월 대선에서 그는 후버(공화당)에게 압승했다(선거인단 531명 중 472명).
  
역사의 전진에 동참한다는 의식 주입
 
냉랭한 사이의 전·현직 대통령 후버(왼쪽)와 루스벨트. 1933년 4월 루스벨트 취임식에 가는 동안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중앙포토]

냉랭한 사이의 전·현직 대통령 후버(왼쪽)와 루스벨트. 1933년 4월 루스벨트 취임식에 가는 동안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중앙포토]

뉴딜 진열판 첫 구절은 취임사(33년 3월 4일)다. “이 나라는 지금 행동을 요구한다(action, and action now).” 취임 100일 입법은 전광석화다. 뉴딜 정책의 키워드는 3R. 구제(relief)·회복(recovery)·개혁(reform)이다. 뉴딜은 기존 질서의 해체다. 포커게임에서 카드를 다시 돌리는 거다. 전통적 자유시장 원리는 밀려났다. 연방정부의 규제·개입, 대규모 재정 지원, 일자리 창출, 공공 투자가 펼쳐졌다. 친구 톰슨이 여러 글귀를 압축한다. “뉴딜은 미국인의 경제적 삶 전반에 관여했다. 사회·정치·문화 분야도 뉴딜 이전과 이후가 판이했다. 패러다임의 거대한 전환이다. 뉴딜 진보주의 (progressivism)는 미국의 주류로 진입했다.”
 
전시실에 국가산업부흥국(NRA)의 푸른 독수리 포스터가 걸렸다. 그 기관은 뉴딜의 간판이다. ‘뉴딜 벽화’가 시선을 끈다. 테네시강 개발공사 노동자들을 묘사한 그림이다. 공공사업진흥국(WPA) 고용 프로젝트에 참가한 예술인의 작품이다. 시대의 지배언어가 바뀌었다. “다원주의(Pluralism)는 루스벨트의 세계를 특징짓는 말이다”(조지 맥짐시 지음 『The Presidency of FDR』). 다원주의 어휘는 개인보다 공공, 경쟁보다 타협, 노조와 사회보장이다. 보수층·자본가·기업인은 반발했다. 1936년 대선이다. 그는 적과 동지로 선거판을 나눴다. 친기업·부자 대(對) 친노동·빈곤층. 그는 “(힘센 기득권자들의) 증오를 환영한다”고 했다. 결과는 기록적인 압승이다(득표율 61%, 선거인단 531명 중 521명).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루스벨트는 선거의 왕이다. 그의 지지층은 사회적 약자, 서민, 농민, 노동자. FDR은 복지·노동정책에 그들의 분노와 좌절, 대안을 주입했다. 전시실 설명은 인상적이다. “쌍방향 소통의 법안·정책개발은 역사의 전진에 동참한다는 의식을 유권자에게 넣어주고 충성도를 높였다.” 선거 전략은 이동(shift)과 동원(mobilization)이다. 동원은 무관심 유권자의 투표 독려다. 그들은 이민 1~2세대, 청년, 저소득층이다. 북부의 진보적 공화당원은 민주당으로 옮겼다. 그것으로 ‘뉴딜 진보연합’이 구축됐다. 그것은 민주당의 장기 집권 기반이다. 경제의 위기는 정치의 기회다. 1920년 그는 참패한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였다. 이제 그 패배의 기억은 파기됐다. 루스벨트 이후 공화당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와 닉슨·포드다. 1980년 레이건의 등장은 보수의 부활이다. 그것으로 ‘뉴딜 연합’ 50년 아성이 무너졌다.
  
적응력 뛰어난 ‘메타모르포세스’적 배우
 
대공황 시절 절망과 고통의 무료급식 대열 동상(워싱턴 FDR 기념공원). 박보균 대기자

대공황 시절 절망과 고통의 무료급식 대열 동상(워싱턴 FDR 기념공원). 박보균 대기자

‘FDR의 정치학’ 코너엔 이렇게 써있다. “뛰어난 타이밍 감각의 노련한 책략가(tactician), 권력 작동원리를 터득, 대중정서에 세심한 주의.” 그의 노변정담(fireside chat)은 대중과의 공감 통로다. 루스벨트의 언어 채집능력은 탁월하다. 그의 말들은 중독성을 갖는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 자체다.”- 그 말은 위기 타개의 감수성을 생산한다.
 
제임스 맥그리거 번즈의 저서(『The Definitive FDR』·퓰리처상 수상)는 흥미로운 분석을 한다. “루스벨트는 다면적이고 복잡했다. 마키아벨리의  
 
사자에서 여우로, 다시 사자로 변신(Metamorphoses)한다. 그는 승부수적 결단과 타협의 어떤 각본에도 적응하는 뛰어난 배우다.” 그는 진보주의다. 하지만 이념적 원리주의를 배격했다. 그의 강점은 실용주의다. 그는 자신을 풋볼 쿼터백에 비유했다. 경기 상황에 따른 작전(정책) 변화다. 그것은 후버에겐 기회주의적 실험, 카멜레온이다.
 
뉴딜의 유산은 매력적이다. 김대중(IMF 외환위기 극복)·노무현(뉴딜적 종합투자)·이명박(4대강 살리기)·박근혜(창조경제·스마트 뉴딜) 정권은 그것을 원용했다. 뉴딜은 종합예술이다. 권력과 대중, 정치와 경제가 얽혀 있다. 그 때문에 벤치마킹은 어렵다. 뉴딜 경제는 우여곡절이다. 뉴딜 정치는 변혁적 성취를 이뤘다. 문재인 정권 586 세력의 야망은 뉴딜 연합의 리메이크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루스벨트의 이너서클 선정 기준은 충성심이다. 해리 홉킨스는 최장수·최측근 참모다. 그 비결은 낮은 처신이다. 연방대법원은 뉴딜의 핵심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국가산업부흥법과 농업조정법에 대한 위헌 판결이다. 루스벨트는 그것을 권력 도전으로 파악했다. 1937년 그는 반격에 나섰다. 종신제 파기, 인원 확대의 사법개혁안을 내놓았다. 그 구상은 실패했다. ‘사법권 독립 침해’의 거센 비판 때문이다.
 
FDR 시대에 대공황은 퇴출했다. 하지만 그것은 뉴딜만의 업적은 아니다. 루스벨트는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미국은 민주주의 거대한 병기고”라고 했다. 전쟁 특수(特需)가 불황 탈출의 진정한 동력이었다. 영국 역사학자 폴 존슨의 비교는 신랄하다. “독일 히틀러는 (아우토반 건설을 빼고는) 체계적인 공공사업으로 경제를 어설프게 손보지 않았다(did not tinker)··· 나치 정권 출범 때 800만 명이 실직자였지만 1936년 사실상 완전고용이 이뤄졌다. 그 무렵 미국은 다시 경기 침체에 들어갔다”(『모던타임스』). 뉴딜의 진실 논쟁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것은 마법의 신화다. FDR은 결정적인 리더십이다.
 
루스벨트 별명 스핑크스…JP의 ‘소이부답’ 떠올려
스핑크스

스핑크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별명은 스핑크스(Sphinx)다. 1940년 대선이 다가왔다. 그의 3선 도전은 쟁점이다. 그때까지 3선 대통령은 없었다. 하지만 헌법 금지조항은 아니다. 그의 태도는 모호했다. 39년 12월 대통령과 언론의 연례 만찬이다. 주최는 워싱턴의 그리디론(Gridiron)언론인클럽. 거기에 스핑크스 미소의 FDR 조각상(2.4m 높이, 종이 반죽·윗 사진)이 등장했다. 스핑크스가 긴 홀더에 끼운 담배를 피운다. 그 모습은 자동차 운전석의 루스벨트(아래 사진)다. 차는 1936년형 포드 페이톤 컨버터블. 브레이크·액셀이 개조됐다. 소아마비 루스벨트는 손으로 조작했다. 그는 옆자리에 반려견(스코티시 테리어) 팔라(Fala)를 태웠다. 하이드 파크 뒷길을 질주했다.
 
루스벨트

루스벨트

이집트 피라미드 앞 스핑크스 미소는 미스터리다. 기자들은 그의 애매한 처신을 그렇게 풍자했다. 그 전시물 앞에서 나는 JP(김종필 전 총리)의 소이부답(笑而不答)을 떠올렸다. “미묘한 문제에 대답 없이 미소로 응수한다.” 정치 9단의 세계는 비슷하다. 쾌활한 낙관주의는 루스벨트의 성공 무기다. 보수 아이콘 레이건도 마찬가지다. 루스벨트는 링컨(16대)·워싱턴(초대) 반열의 위대한 대통령이다. 그는 달랐다. “루스벨트는 링컨처럼 『햄릿』의 어두운 구절을 기억해 인간 시련의 산문시(prose poems about ordeals)를 짓지 않았다. 그는 만화영화 미키마우스를 좋아했다”(조지 맥짐시 『The Presidency of FDR』).
 
하이드파크(뉴욕주)·워싱턴=글·사진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bg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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