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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 뜨는 직종 ‘피커’…매일 2만보 걸으며 5000개씩 장 대신봐준다

15일 홈플러스 킨텍스점에서 피킹 중인 피커들. 사진 홈플러스

15일 홈플러스 킨텍스점에서 피킹 중인 피커들. 사진 홈플러스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텅 빈 대형마트 매장. 덜컹덜컹 카트 끄는 소리와 ‘딩동’ 바코드를 스캔하는 소리만이 드넓은 매장을 가득 채운다. 지난 15일 오전 7시 30분 경기도 고양시 홈플러스 킨텍스점의 하루를 여는 소리다. 소리의 주인공은 ‘피커’. 고객들이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대신 장을 봐주는 직원들이다.  
 

하루 2만보 걸어…1만개 장 본 적도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2~4월 홈플러스의 온라인 주문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4% 늘었다. 이중 가장 많이 늘어난 품목은 신선식품(66%)이다. 지난해에도 홈플러스의 신선식품 온라인 매출은 상온제품보다 2배 넘게 늘어 전체 온라인 매출의 약 43%를 차지했다. 유통기한과 신선도를 직접 확인하며 고르는 ‘피커’들의 역할도 그만큼 더 중요해졌다.  
15일 홈플러스 킨텍스점에서 피커들이 피킹 작업을 하고 있다. 매장 문을 열지 않은 이른 오전이라 매장이 텅 비어 있다. 사진 홈플러스

15일 홈플러스 킨텍스점에서 피커들이 피킹 작업을 하고 있다. 매장 문을 열지 않은 이른 오전이라 매장이 텅 비어 있다. 사진 홈플러스

홈플러스 전국 127개 매장에서 근무하는 피커는 1700여명. 1인당 하루 평균 30~40건의 장을 본다. 이들이 하루에 장을 보는 아이템 수만 한명당 보통 5000여개다. 최근 코로나19로 주문이 폭주했을 땐 하루에 한명이 최대 1만개(묶음상품 포함)까지도 기록했다. 롯데마트 역시 피커 수가 1월 699명에서 5월 755명으로 느는 등 대형마트에서 피커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피킹하는 데만 하루 최소 2만보를 걷는다는 피커의 새벽을 함께 했다.  
 
11년째 홈플러스에서 피커로 일하는 강은자(53) 이커머스 실장은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주문 라벨을 출력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1시간 전에 주문한 내역까지 이 시간 주문 라벨로 출력된다. 출력된 주문지를 정리해 별도 코너가 있는 베이커리ㆍ수산ㆍ축산ㆍ델리(즉석간편식) 등에 주문서를 전달한다. 피커가 다른 상품을 피킹하는 동안 해당 코너 담당자는 고기나 생선 등을 손질해 준비해둔다. 

피킹도 순서가 있다? 가공식품 ‘먼저’

▶7시 30분, 1차 피킹 시작 = 팀원들과 간단히 회의를 마친 뒤 매장 출격. 강 실장이 피킹 전 먼저 손에 든 건 NPD(New Picking Device). 고객이 주문한 상품의 매장 내 위치와 동선을 피커들에게 알려주고 신선도 체크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건(gun) 형태의 단말기다. 트레이(플라스틱 상자) 6개를 나를 수 있는 큰 카트에 미리 출력해놓은 고객의 주문 라벨을 붙인 뒤 NPD로 스캔하면 NPD가 알아서 어디서부터 어떤 물건을 피킹할지 안내한다. 
15일 홈플러스 킨텍스점에서 강은자 이커머스 실장이 가공식품 피킹을 하고 있다. 사진 홈플러스

15일 홈플러스 킨텍스점에서 강은자 이커머스 실장이 가공식품 피킹을 하고 있다. 사진 홈플러스

피킹에도 순서가 있다. 가장 먼저 가공식품(상온식품)을 피킹한 후 신선(냉장)식품, 냉동식품 순이다. 제품의 신선도를 유지하려면 상온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카트에 실은 파란색 트레이는 가공식품용이다. 물건을 스캔한 뒤 트레이에 붙은 라벨지를 스캔하면 피킹 1건이 된다. 
  
장류 진열대에서 문제가 생겼다. 고추장을 골라 스캔하니 NPD에서 ‘딩동’이 아닌 ‘띠-’ 경고음이 울린다. 물건을 잘못 골랐다는 뜻이다. ‘맛있게 매운 태양초 골드 고추장’, ‘우리쌀로 만든 매운 태양초 골드 고추장’을 거쳐 세 번 만에 ‘딩동’, 드디어 승인이 났다. 고객이 주문한 ‘우리쌀로 만든 태양초 골드 고추장’이라고 쓰인 가격표 앞에 비슷하면서도 다른 제품이 진열돼 있어서 생긴 문제였다. 강 실장은 “기계가 걸러주니 제품을 잘못 고를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계란 고를 때 바닥 살펴보는 이유? 

15일 홈플러스 킨텍스점 후방 공간에서 상온식품 전용 트레이에 주문 라벨을 붙이는 피커. 사진 홈플러스

15일 홈플러스 킨텍스점 후방 공간에서 상온식품 전용 트레이에 주문 라벨을 붙이는 피커. 사진 홈플러스

▶오전 8시, 트레이 교체 = 보통 상온 제품을 피킹하는 데 1시간이 걸리지만 이날은 꽤 일찍 신선식품(냉장) 피킹에 나섰다. 유난히 대량구매 아이템이 많았던 덕분이다. 피커들은 파란색에서 신선·냉동식품 전용인 하늘색으로 트레이를 바꿔 카트를 채운다. 냉장·냉동고에 보관해야 할 품목을 구분하기 위한 조치다. 파란색 트레이는 배송기사들이 먼저 차에 싣는다.
 
신선식품 피킹에서 가장 중요한 건 유통기한. 당일 입고된 상품 중 유통기한이 가장 긴 제품이나 육안으로도 신선도가 높은 제품을 선별하고 포장 상태까지 확인해야 한다.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경우엔 NPD가 알려준다. 해당 제품을 스캔하면 NPD에 “이 상품을 선택하시겠습니까?”라는 메시지가 뜨는 식이다. 장 실장은 계란을 피킹하면서 바닥을 살펴본다. “계란이 깨지면 바닥이 젖거든요. 깨진 계란이 있나 확인하는 거예요.” 
피커가 손에 든 NPD에 스캔한 상품 정보가 떴다. 사진 홈플러스

피커가 손에 든 NPD에 스캔한 상품 정보가 떴다. 사진 홈플러스

▶오전 8시 20분, 카트 교체 = 냉동식품 피킹에 쓰는 카트는 상온식품과 신선식품을 담았던 트레이가 아닌, 일반 카트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쓰는 카트에 보냉재를 둘러씌운 것이다. 냉동식품 피킹 역시 유통기한 확인이 키 포인트다. 냉동식품은 피킹 즉시 전용 트레이(신선식품 트레이와는 라벨지로 구분)에 옮겨담은 후 후방 공간의 냉동고에 보관해둔다.
 

냉동식품은 피킹 즉시 바로 냉동고로 

▶오전 9시 30분, 다시 출발지로 = “안녕하세요. 저희 거 준비 다됐죠?” 장 실장이 인사를 건네며 간 곳은 피킹 전 별도 주문서를 두고 나왔던 코너들. 피킹의 출발지가 업무 종착지인 셈이다. 피커는 각 코너를 돌며 담당자가 출근하자마자 준비해놓은 식품을 수거한 뒤 후방 공간으로 돌아가 트레이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면 다음 단계는 배송기사 몫이다.
 
▶오전 10시, 체크아웃 = “OO님, 저 호박 못 담았는데 매장에 들어왔나 찾아봐 줘요.” 일은 끝나기 전엔 끝난 게 아니다. 피킹하면서 물건이 없어서 담지 못했거나 찾지 못했던 물건들을 채워 넣기 위해 다시 한번 매장으로 나간다. 진정한 마지막 단계는 체크아웃. 피킹하지 못한 물건들을 최종 확인한 뒤 결품 처리를 하는 절차다. 영수증과 주문 명세서를 출력해 배송기사에게 전달하면 피커의 작업은 그제야 완전히 끝이 난다.  
 
1차 피킹은 보통 오전 9시 30분에 끝나지만, 이날은 평소보다 한 명이 적게 나와 일정이 밀렸다. 숨 돌릴 틈도 없이 2차 피킹(오전 10시)이 시작된다. 출력기가 2차 주문 라벨을 쏟아내는 사무실엔 2차 피킹 지원을 나온 다른 부서 직원이 대기 중이다. 3차 피킹(오후 1시)까지 마치면 오후 4시 30분. 숨가쁘게 돌아가던 피커의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메뚜기떼’ 취급받다 최우수 고객 대접

15일 홈플러스 킨텍스점에서 피킹 중 잠시 마스크를 벗은 강은자(53) 이커머스 실장. 사진 홈플러스

15일 홈플러스 킨텍스점에서 피킹 중 잠시 마스크를 벗은 강은자(53) 이커머스 실장. 사진 홈플러스

사실 피커는 외로운 자리였다. 홈플러스가 업계 최초로 온라인 사업과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2002년에만 해도 회사 내에서조차 ‘메뚜기 떼’ 취급을 받았다. 매장 직원들이 애써 진열대에 물건을 정리해놨는데 피커들이 한번 다녀가면 진열대가 듬성듬성 비었고, 다시 물건을 진열해야 했기 때문이다. 피커 때문에 일이 많아진다고 불평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온라인 주문이 크게 늘면서 피커의 위상도 달라졌다. 이젠 사내에서 “최우수 제품을 골라내는 최우수 고객은 피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회사 차원에서도 단말기나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 피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투자한다. 피커 업무가 폭증하면 다른 부서 인력을 지원해 부담을 줄여준다. 강 실장은 “최근엔 부지점장님도 피킹 지원을 나왔다”고 귀띔했다. 피커는 이제 홈플러스·롯데마트·이마트 등 대형마트 뿐 아니라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접목된 대부분 유통매장에서 운영중이다. 
 
“며칠 전에 야채를 피킹하는데 어떤 어르신이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아무거나 골라서 보낼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신중하게 볼 줄 몰랐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어르신들은 직접 매장에 와서 보고 골라야 마음이 놓이는데 저희를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해주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2시간 30분 동안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인 탓에 열이 오른 강 실장의 얼굴엔 송골송골 맺혀있던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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