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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철의 시선] 공명의 조건

최현철 논설위원

최현철 논설위원

묘한 우연이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거푸 시간이 겹쳤다. 위안부 문제를 두고 극과 극으로 치닫던 두 단체의 움직임이기에 더 시선을 끌었다.
 

최근 반일종족주의 2편 출간
같은 날 터져나온 ‘정의연’ 비판
본질 다르지만 공명할까 우려

시작은 지난 5월 7일. 서점에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라는 책이 깔렸다. 지난해 발간돼 11만부가 팔렸다는 『반일 종족주의』의 2편이다. 책에 인쇄된 공식 발간일은 5월 16일인데 이미 4월 말부터 7일 발매를 예고한 터였다.
 
나열한 주제의 순서가 조금 바뀌었을 뿐 내용은 전편과 거의 같았다. 위안부 강제 연행이나 강제징용은 없었고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근거도 없다는 주장이 빼곡했다. 토지 수탈은 허구며, 한국의 근대화는 일본 식민지배 덕분이라는 주장도 전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위안부 관련해서는 일본 정부가 폭압적으로 끌고 간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기존의 공창제도의 일부일 뿐이며, 심지어 피해자 스스로 더 나은 수입이나 근무조건을 꿈꾸고 전선에 자원했다고도 했다.
 
같은 날 오후 대구에서는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더는 수요집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학생과 시민들이 낸 기부금을 할머니에게 주지 않았고, 제대로 해결되는 것 없이 이용만 당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에 대해선 “국회의원 하면 안 된다. 이(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의연과 지난 30년을 동행한 위안부 피해자 운동 산증인의 작심 비판은 충격이 컸다. 윤 당선인은 “할머니 기억이 달라져 있었다”는 말로 해명에 나섰지만 외려 뭇매만 맞았다.
 
주말이 지나고 5월 11일,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를 앞세운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이 기자들 앞에 섰다. 출판을 기념하는 회견이었다. 전편 출간 후 제기된 비판에 대한 반론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국민에게 드리는 고언’을 통해 “(전편이) 역사서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이는 국민적 동의를 받은 것”이라고 자부했다. 정의연을 향해 공개토론을 하자고 선전포고를 했다.
 
거의 같은 시각, 정의연도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해명에 급급했고, 쏟아지는 질문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기부금의 41%를 피해자 사업비로 썼다”는 게 답변의 골자였다. 정의연이 피해자에게 후원금을 전달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두루뭉술한 해명은 받은 게 없다는 구체적인 불만을 덮기엔 힘이 부쳐 보였다.
 
이용수 할머니 발언의 후폭풍은 파장을 가늠하기 힘들게 됐다. 이후로도 숱한 의혹들이 터져 나오며 정의연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도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는 위안부 피해 운동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이진 않았다.
 
하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신친일파』란 책으로 반일 종족주의를 조목조목 비판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은 (단편적) 사실에 거짓을 섞어 결국 거짓말을 한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상식에 반하는 이들의 주장이 꽤 주목을 받은 이유다. 그런데도 대세가 될 수 없었던 것은 다름 아닌 살아있는 증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할머니들의 손을 잡아 시민들과 이어준 정의연의 역할도 컸다. 이영훈 교수도 기자회견 말미에 “정의연은 (왜곡된) 우리의 역사의식을 크게 규정해왔다”고 비판했다. 역설적이지만 사실상 정의연이 넘기 힘든 벽이었다고 인정한 셈이다.
 
그런 정의연이 흔들리고 있다. 반대쪽에서 이미 시간 싸움을 시작한 가해자들과 현실을 부정하고자 단편적 증거를 찾는 이들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열여덟 명만 남았다. 이분들마저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위안부 피해자 운동은 이제 오롯이 시민들의 기억 전쟁이 되고 만다.
 
부딪히는 두 진동의 주파수가 비슷해지면 진폭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공명(共鳴) 현상’이 일어난다. 때론 멀쩡한 다리를 무너뜨릴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최근 제기된 정의연에 대한 비판과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주파수가 한참 다르다. 그런데 정의연은 진상을 궁금해하는 시민들과 언론의 문제 제기를 “친일세력의 부당한 공격”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동안 정의연 주장에 귀 기울여온 우군들의 등을 떠밀어 다른 주파수를 찾게 하는 일이다. 그러다 정반대 주장에 닿아 공명해 버리는 조건을 정의연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닌지, 우연히 시간이 겹친 두 사건을 보며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최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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