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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팔린 면세품 싸게 풀려는데···'수퍼갑' 명품업체가 걸린다

코로나19 여파로 2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여파로 2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산 넘어 산’ 재고 면세품, 언제 시중에 풀리나

 
면세점 업계가 재고 면세품 국내 판매를 추진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면세품이 실제로 시중에 유통하려면 여전히 갈 길이 먼 것으로 나타났다. 산적한 문제를 모두 해결하더라도 소비자가 기대하는 최고급 명품이 반값에 등장할 확률은 매우 낮다. 다만 준명품 패션 제품의 경우 이르면 7월 국내 판매 가격보다 다소 저렴한 가격에 등장할 여지는 남아 있다.
  
관세청은 지난달 29일 '보세판매장 운영에 관한 고시'를 한시적으로 일부 완화해 달라는 면세점 업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면제 재고의 국내 판매를 허용했다. 국내 면세점 업계가 물류창고에 쌓아둔 3조원 안팎의 재고 물품 중에서, 6개월 이상 안 팔린 재고에 한해 수입 통관 절차를 거칠 경우 국내 유통망에서 판매가 가능한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해외 출국자가 줄면서 면세점 손님(58만7879명·3월)이 지난해 같은 기간(413만명) 대비 85.7%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국내 면세점 매출(1조873억원·3월)도 지난해 같은 기간(2조1700억원) 대비 반토막 났다.
국내 면세점 월별 매출액. 그래픽 신재민 기자

국내 면세점 월별 매출액. 그래픽 신재민 기자

경험 없는 원가 재산정 작업에 하세월

법적인 문제는 일단 해결했지만, 면세점 업계는 여전히 면세품을 시중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빨라도 최소한 7월은 지나야 한다는 게 면세점 업계 관계자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발등에 '시급한 재고 처리'란 불이 떨어졌는데도 면세품 국내 판매가 늦어지는 이유는 어떤 제품을 어느 정도 규모로 얼마나 할인해서 시중에 내놓을지 결정하지 못해서다. 일단 세율은 확정됐다. 재고품이 통관 절차를 거치는 만큼, 동일한 상품을 국내서 수입·판매할 때와 동일한 세율을 적용한다. 예컨대 명품을 수입할 때 정부는 통상 8%(피혁류)~13%(의류) 안팎의 세금을 부과하는데, 재고 면세품에 붙이는 세율도 이와 같다는 뜻이다.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은 지난 3월 코로나19 확진자가 방문하면서 휴점한 바 있다. 뉴스1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은 지난 3월 코로나19 확진자가 방문하면서 휴점한 바 있다. 뉴스1

다만 이번에 팔리는 제품은 재고 상품인 만큼, 원가를 산정할 때 상품의 가치를 할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예컨대 1년 전에 원가 100만원에 가방을 매입했다면, 수요 감소로 이 가방의 현재 가치가 20% 할인했다고 계산해서 원가(80만원)를 재산정한다. 이 가격에 세금 등을 더해 소비자 가격을 책정한다.
 
문제는 면세점과 관세청이 모두 재고 상품의 감가를 계산해 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위 사례에서 20%의 할인율이 적정하냐는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면세품은 상품 종류·형태가 다양해 일괄적인 감가상각률을 적용하기 어렵다.
재고 면세품 국내 판매, 어디까지 왔나. 그래픽 신재민 기자

재고 면세품 국내 판매, 어디까지 왔나. 그래픽 신재민 기자

이미 사들인 가방인데…팔지도 못하고 반품도 못 해

면세점에 상품을 판매한 제조사·브랜드와의 협상도 면세품이 시중에 풀리는 걸 꼬이게 하는 요인이다. 원칙적으로 면세품은 면세점이 모두 돈을 주고 매입한 상품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미 돈을 내고 사들인 상품을 소비자에게 얼마에 되팔 것이냐는 순전히 면세점 권한이다.
 
하지만 명품의 경우엔 사정이 다르다. 가격 결정권은 사실상 브랜드가 보유한다. 만약 면세점이 명품 브랜드와 조율하지 않고 저렴하게 상품을 판매할 경우 앞으로 제품 수급이 어려울 수 있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면세점 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고객이 선호하는 명품 브랜드가 입점을 철회하는 상황”이라며 “명품 브랜드에서 시중에 제품을 판매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시중에 면세품 재고를 내놓을 면세점은 사실상 없다”고 설명했다.
오는 31일 인천국제공항에 문을 여는 입국장 면세점의 모습. 사진 인천국제공항공사

오는 31일 인천국제공항에 문을 여는 입국장 면세점의 모습. 사진 인천국제공항공사

해외 명품들은 '수퍼 갑'이라 면세점이 이미 사들인 명품을 못 팔게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반품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다른 면세업계 관계자는 “일단 명품에 반품을 요구하면 앞으로 거래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어 반품은 아예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생각도 못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면세품 판매를 허용했지만 재고 누적으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면세 업계가 떠안아야 한다. 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반값 가방은 고사하고, 고가 명품 브랜드가 5% 할인도 받아들일지 모르겠다”며 “지금까지 분위기로는 루이뷔통·샤넬·구찌·에르메스 등 평소 세일을 안 하는 명품 브랜드는 면세품 국내 판매를 아예 허용하지 않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면세점과 협상을 담당하는 한 명품 브랜드 전무는 “우리 같은 브랜드는 세일하지 않는다는 본사 지침이 확고하기 때문에, 국내 다른 유통 채널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제품을 판매하거나 하자가 없는 제품을 반품하는 행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다만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서 면세점과 협상할 여지는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롯데면세점 명동본점에 위치한 스타라운지. 사진 롯데면세점

롯데면세점 명동본점에 위치한 스타라운지. 사진 롯데면세점

10월까지 조율 못 하면 아예 못 팔아

면세품이 시중에 풀리는 데 오래 걸리는 이유는 또 있다. 특정 유통망은 면세점이 직접 판매하지 못한다. 예컨대 백화점의 경우 임대 매장이기 때문에, 면세점에서 면세품을 사들여서 백화점 매장에서 판매할 사업자를 별도로 선정해야 한다. 
 
이들이 판매 장소와 시기를 결정하더라도, 일부 브랜드가 또 반발할 소지가 있다. 일부 브랜드가 백화점·아웃렛·홈쇼핑 등 유통 채널별로 특정 가격 정책을 적용하고 있어서다. 예컨대 면세품이 백화점에서 특정 가격 이하로 팔리면, 백화점 매장에서 동일 브랜드를 유통하는 사업자가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확진자 방문으로 한때 임시 휴업했던 신라면세점 서울점. 오종택 기자

코로나19 확진자 방문으로 한때 임시 휴업했던 신라면세점 서울점. 오종택 기자

재고품을 판매하려는 면세점 입장에서 보면, 제품·브랜드마다 제각각인 할인율과 천차만별인 재고 기간에, 유통 채널별로 상이한 판매 가격과 세금까지 동시에 고려한 '고차 방정식'을 풀어내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협상이 지지부진하면 올여름에도 재고품을 판매하지 못할 수 있다”며 “복잡한 조율 과정을 모두 해결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지금부터 최소 2개월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관세청은 재고 면세품 수입 통관 시한으로 6개월을 줬다. 오는 10월 29일까지 조율을 마치지 못하는 재고 면세품은 시중에 판매가 불가능하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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