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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시선] 세종 치세를 꿈꾼다면…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긴급재난지원금이 시중에 풀리기 시작했다. 시행 닷새만에 지급대상 가구의 절반 가량인 997만 가구가 신용·체크카드로 지원금(6조6732억원)을 신청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었거나 가계 수입이 크게 줄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사람들에겐 가뭄의 단비다.
 

반대파 황희 발탁한 용인술
실용적 리더십이 성군의 비결
이젠 ‘코리아 드림팀’ 만들어야

아직 사용처 집계가 나오지 않아 이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원금이 골프용품·고가 와인이나 명품백 등 사치품, 피부과·성형외과 시술같은 용도로 쓰였을 개연성이 보여서다. 이런 소비를 탓하자는게 아니다. 고가품·사치품도 많이 팔려 경기 회복의 마중물 노릇을 한다면 ‘좋은 소비’가 될 것이다. 문제는 재난지원금(12조2000억원)중 3조4000억원이 적자 국채를 찍어 충당한 돈이란 점이다. 적자 국채가 뭔가. 미래에 쓸 돈을 미리 가불해 쓰는 거다. 단순하게 말하면, 자녀·손자 세대가 낼 세금을 미리 당겨서 명품 백 사고 성형시술 받는 거나 마찬가지다.
 
나랏돈 쓰는 데 우선순위를 정하는 건 아주 전문적 ‘기술’이다. 기획재정부가 애초에 소득 하위 50% 지급을 주장하고 나선데는 논리적 타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전 국민 지급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고 100% 지급을 밀어붙이면서 스텝이 꼬였다. 세수 구멍이 생기자 ‘가진 자’들이 자발적 기부를 하라며 느닷없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들고나왔다. 무능 혹은 과욕을 부린 데 대해 쏟아질 화살을 물타기하려는 꼼수라는 비난을 들을만하다. 애당초 기재부 안대로 했으면 됐다. 재난지원금은 저소득층에 한정하고, 남은 재정여력으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파산으로 인한 실업 사태를 막는 데 집중 투입하는 게 효율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이었다.
 
진짜 큰 돈 쓸 일은 지금부터 많아진다. ‘한국판 뉴딜’을 표방한 정부는 고용보험 확대, 공공 일자리 100만개, 전국민 기본소득 지급 같은 아이디어 꾸러미들을 하나씩 풀어놓고 있다. 공동체 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는 필요한 정책들이다. 다만 재정 건전성을 허물어뜨리지 않으면서 돈을 써야 하는, 그야말로 고차 방정식이란 데 어려움이 있다. 정책 효과가 크지 않은 데 허투루 쓰이는 정부 지출과 보조금을 줄이면서 재정을 효과적으로 쓰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정교한 플랜을 짜고 상처 부위만 날렵하게 도려내는 숙련된 ‘집도의’가 절실하다. 그러려면 두가지 일에 착수해야 한다. 우선 집권층 내부에 만연한 고질적인 비주류 의식을 용도폐기하는 일이다. 비주류의 눈으로는 세상을 반쪽 밖에 보지 못한다. 세상을 진보와 보수, 친일과 반일, 정의와 불의로 편가르다 보면 자신은 정의의 편이라는 자기검열적 의식에 매몰되기 쉽다. 이런 대결적 사고로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를 뛰어넘을 창의력도,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선도할 리더십도 기대하기 어렵다.
 
다음으론,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를 발탁해 드림팀을 꾸리는 일이다. 때마침 여권에서 세종 치세 담론이 나오고 있다.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거나 “(문 대통령의) 남은 2년은 세종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 참모로서의 바람”이란 발언이 화제를 낳았다. 친 노무현, 친 문재인계 인사들이 대거 당선된 4·15 총선의 압승을, 세종이 선정을 펼 수 있도록 형제와 정적들을 제거해준 태종에 견주기도 한다.
 
세종이 성군이 될 수 있었던 건 태종의 악역 때문만은 아니다. 박현모 세종리더십 연구소장은 “최고의 인재를 모아 드림팀을 꾸린 세종의 용인술이야말로 태평성대를 연 비결이었다”고 분석한다. 황희 정승의 발탁이 좋은 예다. 조선조 최장수, 최고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황희는 18년동안 영의정(지금의 국무총리) 으로 있으면서 세종을 보좌한 국정의 2인자이자 정치 멘토였지만 처음부터 세종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파였다. 세자 양녕대군 폐위에 반대해 태종의 미움을 사는 바람에 장관(이조판서)에서 잘리고, 세종(충녕)을 왕세자로 책봉하는데 반대해 귀양길에 오른다. 세종 입장에서 보면 야당이요, 정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세종은 국정 능력과 인물 됨됨이를 보고 황희를 발탁해 인사·군사같은 중대사를 맡겼다. 세종시대 농업·과학기술·외교·국방·문화예술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루며 찬란한 르네상스 시대를 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처럼 최고의 인재를 알아볼 줄 아는 세종의 안목과 실용적 리더십 때문이었다. 세종때 같은 태평성대의 도래를 마다할 국민이 있겠는가. 말의 성찬 요란한데 현대판 황희·맹사성·김종서·장영실·박연 등으로 짜여진 환상의 드림팀 소식이 들리지 않으니 의아할 뿐이다.
 
이정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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