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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 호소는 '귓등'으로…미·중·유럽 씁쓸한 백신전쟁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AFP=연함뉴스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AFP=연함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이 백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예산을 집중 투입하고 있다. 경쟁의 이면은 씁쓸하다. 국제 공조는 뒤로 밀리고, 자국 우선주의 깃발만 난무하고 있다. 

 
미국은 15일(현지시간) 백신 개발 프로젝트를 가동한다고 밝혔다. 작전명은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이다. 정부, 군, 민간 제약사가 모두 뛰어들어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개별 제약사가 각각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대신 정부 주도하에 합동으로 개발에 매진한다. 백신 개발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서다. 내년 1월까지 3억 명에게 투여할 수 있는 백신 생산을 기치로 내걸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백신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해 답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백신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해 답변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힘을 보태줬다. 그는 “전 세계에서 개발 중인 100개의 백신 후보군을 평가해 14개로 추렸다”고 밝혔다. 가능성이 큰 후보를 중심으로 올해 연말까지는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미국 제약사 중에선 모더나와 이노비오 등이 앞서 나가고 있다. 미국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출범시킨 백신 개발 국제 공조 프로젝트에는 참가하지 않고 있다. 

 
사노피 로고 [EPA=연합뉴스]

사노피 로고 [EPA=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프랑스 기반의 글로벌 제약사인 사노피가 “백신이 개발되면 가장 먼저 자금을 지원한 미국이 백신을 대량 선(先) 주문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바람에 유럽이 발칵 뒤집혔다. 비판 여론이 확산하자 폴 허드슨 사노피 최고경영자(CEO)는 결국 유감을 표명했다. 공평한 백신 공급도 약속했다. 그러나 뼈 있는 말도 남겼다. 허드슨 CEO는 “유럽도 미국만큼 적극적으로 백신 개발 자금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드슨 CEO는 영국 국적이다. 
사노피 외에도 유럽에선 영국의 옥스퍼드대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연구를 통해 임상시험에 들어간 상태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도 6월 임상을 목표로 속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속도전을 주문했다. 국유 기업과 연구소는 물론 인민해방군까지 동원돼 백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은 시노박, 칸시노바이오로직스 등에 기대를 걸고 있는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과 중국은 국제 공조보다 세계 첫 번째 백신 개발국이 되는 것이 우선”이라며 “미ㆍ중 경쟁과 관련된 민족주의 부상과 다자주의의 쇠퇴가 뒤섞이면 코로나19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신 경쟁이 과열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촉구한 '초(超)국가적 협력'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분위기다. 빌 게이츠는 “코로나19 백신은 세계적 공공재”라고 강조해왔다. 그의 아내이자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이끄는 멀린다 게이츠는 백신 독점도 경고했다. 그는 “최악의 상황은 백신이 나왔는데 그것들이 최고 입찰자에게 (우선적으로) 가게 되는 경우”라고 우려했다.  
 
전 세계 백신 개발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전 세계 백신 개발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국내 기업들도 백신 개발 박차

국내에서도 여러 기업이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ㆍGC녹십자 ㆍ제넥신 등이 백신 개발을 진행 중이다. 17일 현재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시작한 곳은 없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달 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을 찾는 데 성공했고, 동물 실험을 통해 효능을 확인 중이다. 오는 9월부터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다. 
제넥신은 이달 초 코로나19 백신인 ‘GX-19’(DNA 백신)를 투여한 원숭이에서 바이러스를 무력화할 수 있는 중화항체 생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성영철 제넥신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관계 부처의 신속한 승인이 이루어지면 6월 임상시험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제약사와 비교하면 국내 업체는 상대적으로 ‘실탄’이 부족하다. 체급 차이가 커서 국내 업체가 글로벌 제약사 수준의 투자를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 결국 '머니 싸움'이라는 얘기다. 정부 지원도 화끈하지 못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올해 배정된 백신실용화사업단 예산 약 119억원을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최대한 투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100억 코로나19 감염 발생 전 이미 확정" 

그러나 이 예산은 지난해 코로나19 감염이 발생하기 전 이미 확정된 것이다. 해당 사업단은 이미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28종의 백신 자급률을 40%에서 80%로 끌어올려 ‘백신 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주 목표다. 사업단 관계자는 “백신 플랫폼 기술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코로나19와 아예 접점이 없지는 않지만, 온전히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쓰이는 예산은 아니다”고 밝혔다. 
 
코로나 바이러스 모형. AFP=연합뉴스

코로나 바이러스 모형. AFP=연합뉴스

현재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 투입된 예산은 예비비와 1ㆍ2차 추경을 합해 총 60억원 정도다. 미국 생명공학사인 모더나가 정부에 지원받은 5억 달러(약 6000억원) 규모에 비해서 턱없이 적다. 지난달 ‘코로나19 치료제ㆍ백신개발 범정부 지원단’을 출범하고 3차 추경에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R&D 예산을 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아직 규모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결국 백신 개발은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며 "임상 등과 관련한 인·허가 패스트트랙을 만들 수도 있고 글로벌 제약사와 협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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