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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실버 민주주의가 온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정치는 수(數)이고, 수는 힘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자의 지배 체제다. 선출 권력이 한 정파로 쏠리면 다수의 전제(專制)라는 난제에 부닥친다. 대의 정치의 출발점인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특정 세대가 압도하면 한정된 자원(예산)은 그들에 유리하게 배분되기 마련이다. 표에 자유로운 정치는 없다. 유럽 선진국과 일본에서 표밭은 기울어졌다. 근대국가 이래의 메가트렌드인 청년 승자 시대가 끝나고, 고령자 우세로 돌아섰다. 고령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실버 민주주의(silver democracy)가 뚜렷하다. 우리도 그 조류에 올라탔다. 서구는 잔잔한 파도를 건너왔지만, 우리 앞은 격랑이다. 출산율(0.92)은 세계 최저이고, 고령화 속도는 유례가 없다.
 

4년후 60대 이상 인구 청년 추월
20년 후는 2.3배, 30년 뒤엔 3배
청년층 미래설계 참여 길 터줘야

4·15 총선을 보자. 지역구 선거인 수는 60대 이상이 27.32%, 18세~30대가 33.99%다. 선거인 수는 아직 30대 이하가 많지만 통상 투표율은 60, 70대가 높다. 비례대표 기준 사전투표자 수를 보면 60대 이상이 30.7%이고, 30대 이하는 29.5%였다(사전투표수는 신종 코로나 사태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고, 전체 연령별 투표율은 3~4개월 후에 나온다). 2018년 지방선거 투표율은 60대 72.5%, 70대 이상 66.6%, 20·30대는 각각 52.0%와 54.3%였다. 투표율이 높다 보니 60대 이상 선거인 수는 20~30대보다 324만명 적지만 실제 표는 7만여표 더 많았다.
 
지금부터는 거대 인구층인 베이비부머가 가세한다. 향후 20년간 65세 이상 진입 인구가 1685만명이다. 전체의 약 30%다. 유권자 구성비 변화는 가파르다. 2022년엔 60대 이상과 20~30대가 25.3%대 26.3%로 근접한다. 2024년에는 27.3%대 25.3%로 역전하고, 2028년엔 그 차이를 7.3%포인트로 벌린다. 2040년과 2050년은 60대 이상이 20·30대보다 2.3배, 3배 많다(통계청 장래인구 추계). 여기에 고령층의 투표율이 더 높다고 하면 정치적 압력과 영향력은 상상도 어렵다.
 
서소문 포럼 5/12

서소문 포럼 5/12

실버 민주주의는 세대 간 불공정 확대를 조장한다. 복지제도는 수익과 부담의 균형이 전제다. 현역 세대의 비용 부담이 고령 세대에서 보상받는다는 암묵적 사회 계약 아래 성립한다. 2027년 생산가능인구(15~64세) 3명이 고령 인구 1명을, 2036년 2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하는 판에 복지의 세대 간 공정은 공염불이다. 고령층이 강력한 로비집단이 되면 미래 세대는 더 암담하다. 미국의 대영국 독립전쟁 당시의 ‘대표 없이 조세(租稅) 없다’는 슬로건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고령화율이 세계 1위(28.4%)인 일본을 보자. 2016년 참의원 선거 당시 60대는 1830만명으로 20대(1250만명)의 1.46배였지만 실제 표차는 3배로 벌어졌다. 60대 투표율이 70.07%로 20대(35.60%)를 압도하면서다. 2014년 중의원 선거도 60대와 20대의 표차는 3배였다. 당시 60세 이상 투표수는 전체의 절반에 가까웠다. 한국이 직면할지도 모를 장로 지배정치(gerontocracy)다. 고령층의 영향력은 예산 분배의 쏠림을 낳는다. 2017년 일본 복지비용 명세를 보면 연금·요양 등 고령 지출이 45.8%, 출산·육아·보육 등 가족관계 지출은 6.9%다. 이 추세는 견고하다. ‘보육원 떨어졌다. 일본 죽어!!!’라는 4년 전 한 워킹맘의 글은 현역 세대의 절규다.
 
일본에서 선거제도 개혁론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대 간 정의 차원에서다. 이호리 도시히로 도쿄대 명예교수의 세대별 선거구는 대표적이다. 지역 대표가 아닌 세대 대표를 뽑자는 얘기다. 선거구를 유권자 연령에 따라 청년구(20~30대), 중년구(40~50대), 노년구(60대 이상)로 나누고, 의석수는 세대별 인구 비율로 할당하는 방식이다. 전체 의석이 300석이고, 20~30대 인구가 30%라면 청년구 의석수는 90석이다. 의석수는 노년구가 많지만 청년구는 투표율이 낮아도 30%의 의석이 보장된다. 선거구는 매년 1월 1일의 연령별 인구를 기준으로 재조정하고, 입후보자 연령 제한은 두지 않는다. 이 제도라면 1표의 가치 차이 문제도 해소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년 전 사설에서 탈(脫) 실버 민주주의 일환으로 이 제도를 소개하기도 했다.
 
세대 간 격차는 우리 사회의 일대 모순이다. 미래 세대의 의향을 미래 설계에 반영하는 것은 세대 간 공생의 출발점이다. 세대 간 견제와 균형은 포퓰리즘의 방어막이 될 수도 있다. 아이디어는 세대별 선거구만이 아니다. 청년 비례대표 할당제, 국회 미래세대 상임위원회 설치의 낮은 단계도 적잖다. 역사에 항구 불변의 제도가 있었던가.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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