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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의 사이언스&] 온난화·코로나 위기 극복할 영웅, 우리도 있다…모르고 있을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빌 게이츠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직 은퇴에 이어 지난 3월 이사회 의장직에서도 물러나며 기업인으로서 공식 은퇴를 선언했지만, 세상은 다시 그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이 소프트웨어 제국의 황제였다면, 이젠 위기에 빠진 지구촌을 살리려는 영웅이다. 영화 속 주인공 같은 반전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거액을 기부하고, 지구온난화를 막겠다며 미래 원자력발전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안전하고 폐기물 적은 4세대 원전
한국원자력연구원서 개발 중
탈원전 정책에 내년 예산 끊겨
개발단 55명 뿔뿔이 흩어질 운명

영웅의 활약은 넷플릭스에도 등장했다. ‘인사이드 빌 게이츠’라는 이름의 3부작 다큐멘터리다. 빌 게이츠의 일대기를 다룬 내용이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가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 소아마비 근절과 화장실 만들기 등 후진국 이슈도 있지만,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구온난화에 맞서기 위해 미래형 4세대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내용이 특히 눈에 띈다.
 
‘원전’ 하면 곧바로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이 연상될 수 있다. 하지만 빌 게이츠가 구상하는 ‘테라파워’의 원전은 폭발의 위험도, 연료를 교체할 필요도 없다. 수명을 다할 때까지 말이다. 더구나 반세기 이상 쌓여온 처치 곤란 폐우라늄을 연료로 다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화석연료가 아닌 핵분열로 에너지를 뽑아내니, 지구온난화의 주범 이산화탄소는 있을 수 없다. 부럽다. 이런 진짜 영웅이라니….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소듐냉각고속로(SFR) 실험시설. SFR은 4세대 미래 원전으로, 안전성과 경제성·지속가능성·핵확산저항성 등 에서 기존 원전의 성능을 넘어선다. [사진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소듐냉각고속로(SFR) 실험시설. SFR은 4세대 미래 원전으로, 안전성과 경제성·지속가능성·핵확산저항성 등 에서 기존 원전의 성능을 넘어선다. [사진 한국원자력연구원]

우리 땅엔 지구를 구하고 나라를 구할 영웅이 없을까. 애석하게도 빌 게이츠와 같은 ‘갑부 영웅’은 아직 없다. 하지만 우리도 엄연히 있다. 영웅인 줄 모르고 있을 뿐. 실상은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 원전 그 이상이다.
 
지난 8일 그 영웅을 만나기 위해 대전을 찾았다. 북대전 인터체인지(IC) 인근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소듐냉각고속로(SFR) 개발사업단이 그 주인공 중 하나다. SFR은 4세대 원전 중 하나다. 4세대 원전은 안전성과 경제성·지속가능성·핵확산저항성 등 네 가지 분야에서 기존 원전을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SFR은 높은 에너지의 중성자를 이용해 핵분열을 일으키고, 이때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열을 소듐(나트륨) 냉각재로 전달하고, 증기를 만들어내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소듐은 끓는점이 물보다 훨씬 높은 섭씨 883도다. 이 때문에 경수로처럼 압력을 높일 필요가 없다. 고압 폭발의 위험이 없다는 얘기다. 또 같은 규모의 전력을 생산하면서도 방사성 폐기물 발생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다만, 한국은 SFR을 발전보다는 기존 사용후 핵연료를 태워 발생량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신재생에너지

사업단 건물에서 만난 SFR연구시설은 높이 40m, 13층 규모에 달했다. 복잡한 파이프가 얽혀있는 장비 가운데, 은색으로 빛나는 원자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료봉과 노심만 빼놓았을 뿐, 그 외에는 실제 SFR과 다를 바 없다는 게 연구원 측의 설명이었다. 성능 실험은 안전을 위해 연료봉 대신 전기장치를 이용하고 있었다. 20여년 전인 1997년 원자력중장기연구개발사업으로 시작한 SFR 연구에는 그간 3700억원의 혈세가 투입됐다. 애초 최종 목표는 실제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실증시설 건설이었다.
 
하지만 SFR 연구실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불이 꺼질 예정이다. 연구예산 지원이 올해로 종료되기 때문이다. 한때 150명이 넘던 연구원은 55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이마저도 당장 내년부턴 원자력연구원 내 다른 부서로 뿔뿔이 흩어져야 할 운명이다. 내년 중으로 SFR연구개발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타당성 검토에 들어간다는데, 현재로선 전망이 불투명하다. 신규 원전 건설 없이, 있는 원전도 줄여나가겠다는 게 현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유재운 원자력연구원 SFR개발사업단장은 “테라파워가 지난해 우리 연구원을 찾아와 기술을 사가려고 할 정도로 우리 연구가 인정을 받고 있다”며 “4세대 원전 수출기획서도 만들고 있지만, 당장 내년부터 연구가 중단된다면 그간 투자한 수천억 원의 돈뿐 아니라, 연구 역량까지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원엔 SFR 외에도 수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4세대 원전, 초고온가스로도 연구 중이다. 둘 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 이산화탄소 발생 없이 보다 안전하게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글로벌 영웅’ 후보들이다. 현 정부가 이산화탄소도 줄이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도탄에 빠진 경제도 살려 나가는 지혜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벌써 더워지는 기온에 올여름이 걱정이다. 지난해 여름 유럽과 북미를 휩쓸었던 혹서가 올해는 아시아를 치지는 않을까. 지난 8일 정부가 제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워킹그룹 주요 논의 결과를 공개했다. 탈원전·탈석탄이 핵심이다. 현재 25기인 원자력발전소를 2034년 17개로 줄여 원전 비중을 10%로 줄인다고 한다. 대신 신재생에너지를 40%로 늘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 발표 속엔 더 뜯어봐야 할 디테일이 숨어있다. 신재생에너지 40%는 설비용량 기준이었다. 실제 발전량 기준은 26.3%로 뚝 떨어진다. 그나마 신재생에너지엔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바이오와 폐기물이 각각 25%, 51%(2018년)를 차지한다. 대한민국은 과연 영웅 없이 온실가스도 잡고, 경제도 살려낼 수 있을까.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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