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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창시자’ 리틀 리처드, 하늘 공연 떠나다

리틀 리처드의 2005년 6월 파리의 올림피아 콘서트홀 공연 모습. [AFP=연합뉴스]

리틀 리처드의 2005년 6월 파리의 올림피아 콘서트홀 공연 모습. [AFP=연합뉴스]

미국 로큰롤의 개척자 리틀 리처드(본명 리처드 웨인 페니먼)가 87세로 음악인생을 마쳤다.
 

‘Long tall Sally’ 등 숱한 히트곡
머큐리·비틀스·프레슬리의 우상

9일(현지 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리처드는 골수암으로 테네시주 툴라호마에서 숨을 거뒀다. 자신을 ‘로큰롤의 설계자’로 부른 리처드는 1950년대 중반부터 숱한 히트곡으로 3000만 장 넘는 음반을 판매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전설적 로커 프레디 머큐리가 10대 때 모창하며 가수의 꿈을 키운 롤모델도 리틀 리처드였다.
 
대표곡 ‘Long tall Sally’는 비틀스,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 커버하며 로큰롤의 고전이 됐다. AP 통신이 “발매와 함께 미국 전역 라디오와 전축에서 수류탄처럼 상륙했다”고 평가한 ‘Tutti Frutti’, 리처드가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50번째 생일에 연주한 ‘Good Golly Miss Molly’도 대표곡으로 꼽힌다.
 
리처드는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1993년엔 쳇 앳킨스, 셀로니어스 멍크 등과 함께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폭발적인 샤우트 창법과 격렬한 피아노 연주는 후대 음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폴 매카트니, 믹 재거, 데이비드 보위, 로드 스튜어트 같은 작곡가 겸 가수들이 그 예다. 리처드의 짙은 마스카라 화장과 화려한 패션은 미국 팝스타 프린스가 이어받았다. 로이터 통신은 “리처드의 음악은 미국 내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기 젊은 흑인과 백인 팬을 동시에 끌어들였다”고 했다.
 
1932년 조지아주 메이컨 생인 리처드는 10대 때부터 약장사 쇼단에서 노래와 피아노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가수 데뷔 후 1957년 호주 순회공연 중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덩이를 보고 신의 계시라며 신학교육을 받고 목사가 됐다. 이 불덩이는 훗날 스푸트니크 1호 인공위성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성직자 생활과 가수 생활을 오갔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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