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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직의 이코노믹스] 25년째 저성장 내리막길, 일본처럼 되고 있다

‘5년 1%P 하락의 법칙’에 빠진 한국경제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 25년간 한국 거시경제 행로를 결정해온 강력한 경제법칙이 있다. 이 법칙은 생명력이 강해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전염병 사태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 발발 이전·이후와 상관없이 한국경제를 주도해 왔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엄청난 충격이 진정된 후에도 이 법칙은 우리 경제의 운명을 규정지을 가능성이 크다.
 

정권마다 성장률 1%P씩 하락
보수·진보 구별없이 25년째 이어져
한국경제 성장 능력 바닥 드러낸 것
과감한 정책으로 ‘제로성장’ 막아야

이 법칙은 바로 ‘5년 1%포인트 하락의 법칙’이다. 이 법칙은 연간 성장률의 10년 이동평균으로 계산한 한국의 장기성장률이 1990년대 중반 이후 5년마다 1%포인트씩 거의 규칙적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장기성장률은 단기적 변동요인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 ‘진짜 성장능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진짜 성장능력이 계속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암울한 경제법칙은 정권의 이념성향보다 강력하다. 보수정부·진보정부에 관계없이 정권마다 장기성장률이 1%포인트씩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의 6%대에서 김대중 정부 때는 5%대로, 노무현 정부 때는 4%대로, 이명박 정부 때는 3%대로 하락했다. 이 법칙에 따라 추정한 장기성장률은 박근혜 정부 때 2%대로 하락했다. 현재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1%대로 진입하고 있다. 코로나19 충격의 여파로 1분기에는 아예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 경험적 법칙은 정부 경제정책을 무력하게 한다. 역대 정부가 취한 어떤 경기부양책과도 상관없이 작동해 왔다. 지난 30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29%에 달하는 강력한 투자 부양책을 쓰고, 건설투자도 GDP 대비 14% 이상을 유지했다. 지난 20년간 한국은행도 실질금리 평균이 0.7%에 불과한 저금리 정책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이런 정책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기성장률은 법칙에 따라 5년마다 1%포인트씩 추락해 왔다.
  
차기 정부에서 0%대 성장 우려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지금 한국 경제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한국 거시경제의 미래 예측은 당연히 과거 25년간 한국경제를 좌우해온 ‘5년 1% 하락의 법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히 감속 없는 하락 추세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미끄럼틀처럼 직선형으로 추락하는 추세의 장기성장률은 실질적 성장능력의 추정치가 될 수 있다. 매우 안타깝지만, 이 선형 추세가 유지된다면 차기 정부에서 장기성장률 0%대의 제로성장 시대로 곧 접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성장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장기성장률의 0%대 추락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통적인 신고전파 성장이론에 따르면, 기계와 같은 ‘물적 자본’ 축적에만 성장을 의지하는 경제에서는 ‘수확체감의 법칙’에 따라 물적 자본에 대한 투자수익률이 점점 낮아져 결국 투자가 멈추게 된다. 그 결과 성장이 정지하면서 장기성장률이 0%가 될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등장한 내생적 성장이론에 따르면, 근로자에 내재된 지식과 기술을 의미하는 ‘인적자본’ 축적 속도가 점점 줄어들면 0%로의 추락이 감속 없이 선형으로 일어날 수도 있게 된다.
 
결국 혁명적인 정책변화를 통해 이 법칙을 저지하지 못하면 차기 정부 하에서 장기성장률이 0%대로 진입해 실물경제 위기 가능성이 많이 증가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연간 성장률은 단기적 변동요인에 따라 20%의 확률로 추세적 장기성장률보다 1%포인트 이상 낮은 값에서 결정됐다. 따라서 장기성장률이 0%에 진입하면, 연간성장률이 마이너스 1% 이하로 떨어지는 실물 위기가 20% 정도의 확률로 발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제로성장 시대에 접어들면 특히 경쟁력을 잃은 한계 산업과 한계 기업, 그리고 부도기업이 급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의 ‘좋은 일자리’ 창출 능력도 급격히 하락해 청년·중년·노년 일자리 문제가 동시에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나라 전체의 평균 성장률(0%)에 못 미치는 2000만~3000만명의 국민은 가계소득 감소를 경험하고, 소득 취약계층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돼 소득분배도 악화할 수 있다.
  
단기부양은 금융위기 초래 위험
 
5년 1%P 하락의 법칙

5년 1%P 하락의 법칙

물론 고통스러운 제로성장의 도래를 차기 정부가 그다음 정부로 떠넘기고자 강력한 단기부양책을 추진하면 제로성장이 수년간 지연되는 듯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부양에 따라 과도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부실투자와 부실채권 누적이 가중되면 금융위기를 불러올 가능성도 커진다. 그 결과 위기가 발생하면서 연간성장률이 급격히 마이너스로 추락하면 0%대 장기성장률의 시기가 급히 도래할 수도 있게 된다.
 
이 위협적인 법칙이 지난 30년간 한국경제를 주도해왔음에도 역대 정부들이 이 경제법칙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국민에게 알리고 이의 극복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지 않았다는 것은 미스터리다. 이 법칙에 대한 인식 부재 때문인지 소위 ‘747 정책’으로 7% 성장률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정부도 있었지만, 이 정부의 장기성장률은 결국 3%대로 전임 정부에 비해 1%포인트 하락했다. 다른 정부들도 공약한 높은 성장률과 상관없이 전임 정부보다 1%포인트 하락한 장기성장률을 성적표로 받은 점에서 동일하다. 경제법칙이 정치공약을 이긴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한국경제에 대한 국민의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지만, 한국경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이 전염병이 아니라 5년 1%포인트 하락의 법칙에 따른 성장 추락 때문임을 인지해야 한다. 법칙에 따라 추세 장기성장률 추정치가 이미 1% 중반까지 하락했기 때문에 거기에 코로나19 같은 단기적 충격이 더해지면 마이너스 성장률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지금이라도 ‘5년 1% 포인트 하락의 법칙’ 저지를 국가정책의 지상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 법칙에 따른 성장 추락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내고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여준 것처럼 온 나라와 국민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 경험적 법칙을 깨뜨릴 수 있다. 단, 시간이 없다. 경기부양만 하다가 1%포인트 낮은 장기성장률을 차기 정부에 연이어 물려주는 관행을 깨고 이 퇴행의 법칙을 깨뜨리는 정부가 당장 나와주기를 기대한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 규칙적으로 하락
성장률이 계속 추락하지 않고 2~3%대 저성장에서 멈춰 더는 크게 변하지 않고 고착화하는 ‘저성장 고착화’에 한국경제가 처해 있다는 견해도 제기돼 왔다. 박근혜 정부 중반에서 문재인 정부 초반까지 연간 성장률이 2% 후반~3%에서 횡보한 것이 이 견해를 뒷받침해 주는 듯했다.
 
그러나 연간 성장률은 인위적 경기부양책을 통해 ‘진짜 성장능력’ 이상으로 높게 보일 수 있는 ‘겉보기 성장률’임에 유의해야 한다. 실제로 2014년부터 ‘초이노믹스’란 이름 아래 실시된 주택건설 부양을 포함한 강력한 부양정책이 겉보기 성장률을 진짜 성장능력 이상으로 과도하게 증가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또 무역수지 흑자가 GDP의 6%를 넘는 예외적 상황이 5~6년간 지속해 연간 성장률을 일시적으로 높여주는 힘으로 작용했다. 결국 인위적 경기부양과 일시적 무역수지 흑자에 따른 착시효과를 제거하면, 한국의 진짜 성장능력은 2% 후반~3%에 고착화하기보다는, 5년 1% 하락의 법칙에 따라 추락해 현재 1%대 중반을 통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 고도성장을 경험한 후 50년 이상 성장 추락을 경험한 일본·이탈리아에서도 장기성장률이 2~3%에서 굳어지기보다는 0%대 혹은 마이너스로까지 추락했다. 특히 일본은 80년대 후반 경기부양으로 4%대 장기성장률에 고착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버블붕괴 이후 장기성장률이 0%대까지 추락했다. 한국은 법칙에 따라 훨씬 더 규칙적인 성장 추락을 겪어왔기 때문에 장기성장률이 0%까지 하락할 개연성이 이들에 비해 낮지 않다.
 
요컨대 한국경제가 혁명적 정책변화 없이는 2~3%대 저성장 고착화보다는 0%대로의 성장 추락을 맞을 개연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정말 우려되는 것은 ‘저성장 고착화’가 아니라 ‘저성장 밑으로의 추락’이다.
◆김세직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선임 이코노미스트를 거쳐 2006년부터 서울대에서 거시경제학·화폐금융론·경제성장론·한국경제론을 가르치고 있다. 경제 성장정책, 경제위기 예방 및 대응 정책, 인적자본과 교육정책 등에 관심이 많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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