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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 TV 나오면 靑출입불가"···조카사위 김종인의 '김정렴 기억'

25일 96세를 일기로 별세한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은 하루 뒤인 26일 가족, 친·인척과 가까운 지인들이 오갈 뿐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박정희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지낸 이력으로 각계각층의 조문이 장사진을 이룰 법도 했지만, 유족들은 평소 고인의 뜻과 코로나19 관련 장례식장 측의 방역 지침에 따라 음식 대접을 생략하는 등 조용히 조문객을 맞으려 했다. 유족들은 조의를 표하는 화환은 받되 조의금은 일절 받지 않았다. 유족 측 관계자는 “고인이 회장을 지낸 상우회 등 평소 가깝게 지내던 분들을 제외하곤 따로 부고를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오래 몸담았던 경제관료·한국은행 출신 인사들이 이따금 나타나 조용히 조문한 뒤 돌아가곤 했다.
 
박정희 정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25일 별세했다. 26일 서울 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모습. 변선구 기자

박정희 정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25일 별세했다. 26일 서울 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모습. 변선구 기자

호상(護喪)을 맡은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오후 빈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회장이 재무부 장관을 지낼 때 재무부 사무관을,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엔 청와대 재경비서관을 지내며 보좌한 이 전 장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뭐 하나를 물어보면 통계 수치를 술술 외우던 분”이라며 “평소에 미리 공부해서 정책 기획을 준비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큰 그림을 그리면 세부적인 내용은 고인이 도맡았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이어 “겉으로는 고인이 박 전 대통령을 도왔다곤 하지만 실제론 박 전 대통령의 기본적인 집무 프로세스부터 실질적인 정책 구상까지 모두 김 전 실장의 확인을 받았다”며 “화폐개혁을 두 번이나 주도하고 외환은행 설립을 주도하는 등 자신을 정치보다는 경제 전문가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한국은행 근무 시절 해외에서 일하면서 공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1952년 1차 화폐개혁에 이어 1962년 2차 화폐개혁 실무에 참여했다.
 
박정희 정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한 조문객이 26일 서울 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박정희 정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한 조문객이 26일 서울 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정치권에서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이날 오후 1시 30분쯤 빈소를 찾아 약 2시간가량 머물렀다. 김 전 위원장은 김 회장의 조카사위다. 김 전 위원장은 고인에 대해 “당시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경제정책을 성안해 내각이 집행하는 형태였는데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청와대에 중화학공업기획단을 만들어 조선·방위 산업 등을 육성해 오늘날에 이르게 하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어 “‘나라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이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곳에 갈 수 없다’며 본인을 모셔가려는 기업들의 제안을 뿌리칠 정도로 공직자로서 상당히 모범적인 삶을 사신 분”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경제정책의 전권을 위임했지만, 소리가 나거나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셨다. 당시 단 한 번도 TV에 얼굴이 나온 적이 없는데 방송사 기자들에게 ‘내 얼굴이 TV에 나오면 청와대 출입 불가’라고 말씀하셨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장저가 26일 서울 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정렴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빈소를 찾았다. 그는 고인의 조카사위다. 변선구 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장저가 26일 서울 삼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정렴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빈소를 찾았다. 그는 고인의 조카사위다. 변선구 기자

김 전 위원장은 “김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권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있어 중재에 탁월했던 분이었다”고도 했다. “1973년 ‘윤필용 사건’ 때 박 전 대통령이 사건에 함께 연루됐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도 함께 내치려고 했는데 당시 고인이 ‘둘을 한꺼번에 경질하면 안 된다’고 직언해 받아들여졌을 정도로 신임이 대단했다고 한다”면서다. 그러면서 “상공부 차관 시절 수출 목표 1억 달러를 달성하는 등 자신의 전문 지식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한 충신”이라고 덧붙였다.
 
언론계에서는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뒤를 이어 현정택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과 서성 전 대법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등이 조문했다. 이들은 각각 김 회장의 3남 김준경 전 한국개발연구원장과 사위 김중웅 전 현대증권 회장, 장남 김두경 전 은행연합회 상무이사 등과 인연이 있다고 했다. 
 
김인호·김영섭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영태 전 산업은행 총재,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영대 전 금융결제원장, 조윤제 전 주미대사(현 금융통화위원), 오세정 서울대 총장, 권성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도 차례로 빈소를 찾았다. 이 전 장관은 “1972년 8·3 사채 동결 조치 전날 각 도별·업종별 사채 등록 현황을 계산해야 했는데, 상고 출신인 고인이 주판을 들고 와서 수치를 불러보라고 하곤 직접 계산하며 보고했던 기억이 난다”며 김 회장과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조 전 대사는 “세계은행 근무 시절 고인이 세계은행 임원단에 특별강연을 하러 오셨을 때 모셨던 인연이 있어 노무현 정부 청와대 경제보좌관 시절에도 고인을 모셔서 한국경제의 발전 방향에 대해 청해 들었다”며 “상당히 존경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송언석 통합당 의원(전 기획재정부 차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김중수 한림대 총장(전 한국은행 총재),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최각규 전 경제기획원 장관 등은 근조기와 화환 등을 보내 김 회장을 추모했다.
 
하준호·임성빈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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