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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내 집인데 자꾸 여행 온 기분…낯선 곳서 1년 살아보니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69)

 
이사 온 지 1년 되었다. 퇴직하면 지방에서 살겠다는 뜬금없는 계획으로 이곳 전주 한옥마을에 집을 산 지 10년, 그동안 세를 놓았다가 드디어 작년 이맘때 차에 밥솥과 이불만 달랑 싣고 내려왔다. 은퇴한 부부가 연고도 없는 도시로 옮기는 것은 혈기왕성하던 시절의 희망찬 이사와는 달랐다. 이대로 노후 생활기반이 확정될 수도 있다는 심적 부담 때문이다.
 
이사 첫날, 마치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 같은 기분으로 열심히 쓸고 닦으며 집안을 정돈한 후 동네를 정찰했다. 그날 밤 방에 이불 깔고 누우니 기분이 묘했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곳의 단독주택…. 새 세상, 새 출발의 기분은 들었지만 솔직한 심정은 희망보다 불편 쪽에 가까웠다.
 
낯선곳에서의 아침은 마음을 조용히 들끓게 하는 힘이 있다. 아직 추운 봄날 아침에 저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나오던 순간 제2의 고향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사진 박헌정]

낯선곳에서의 아침은 마음을 조용히 들끓게 하는 힘이 있다. 아직 추운 봄날 아침에 저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나오던 순간 제2의 고향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사진 박헌정]

단독주택은 아파트보다 훨씬 살기 불편하다. 그것을보상받으려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누려야 한다. 마당에서 뭔가 굽고, 강아지 실컷 짖고 뛰게 내버려두고, 층간소음 걱정 없이 뛰어다니고...

단독주택은 아파트보다 훨씬 살기 불편하다. 그것을보상받으려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누려야 한다. 마당에서 뭔가 굽고, 강아지 실컷 짖고 뛰게 내버려두고, 층간소음 걱정 없이 뛰어다니고...

 
그 느낌은 몇 시간 후 제대로 다가왔다. 새벽부터 오들오들 떨다가 아침에 방문 밀치고 마당에 나오니 ‘아, 4월이 이렇게 추운 계절이었나?’, 당황스러웠다. 춥기도 하거니와 아파트에선 방문 열고 나오면 거실, 또 나오면 복도, 한 번 더 나와야 밖인데, 불과 두세 걸음 만에 바깥이다. 벌거벗은 느낌! 앞으로 어떻게 살까 싶었다.
 
기동력이 필요하니 일단 자전거를 두 대 주문하고 다이소에서 자잘한 물건을, 대형마트에서 식료품을 잔뜩 샀다. 가슴 뛰던 연애 시절 신혼집에 물건 들이던 기분도 잠깐 들었지만, 그때보다 훨씬 피곤했고 ‘일’로 느껴졌다. 물론 둘 사이의 재잘거림도 없고.
 
며칠 후 냉장고, 세탁기, 식탁 같은 살림살이도 들였지만 아이들과 떨어져 둘만 내려와서 그런가, 내 집인데 내 집 같지 않고 현실감이 생기지 않는다. 자꾸 여행 온 기분이 든다.
 
그래도 몸에 붙은 습성으로 꾸준히 일을 찾아 하면서 몸과 마음은 빠르게 적응되어갔다. 뒤늦게 서울에서 데려온 강아지가 마당에서 뛰어놀고 따뜻한 봄 햇살이 퍼지자 온몸이 이완되어 처음 해보는 지방생활이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올라왔다.
 
전주는 인구가 적으니 시내버스 배차간격도 서울과 많이 다르다. 적응되면 20~30분 정도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게다가전주는 슬로우시티다.

전주는 인구가 적으니 시내버스 배차간격도 서울과 많이 다르다. 적응되면 20~30분 정도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게다가전주는 슬로우시티다.

살면 살수록 집안 곳곳에 손대야 할 게 눈에 들어온다. 어떤때는 나사못 하나로 시작했다가 한나절 일이 되기도 한다. 며칠 전 햇살 좋은 날에는 집안에 '니스(varnish)'를 칠했다.

살면 살수록 집안 곳곳에 손대야 할 게 눈에 들어온다. 어떤때는 나사못 하나로 시작했다가 한나절 일이 되기도 한다. 며칠 전 햇살 좋은 날에는 집안에 '니스(varnish)'를 칠했다.

 
물론 익숙하던 서울생활과 낯선 지방생활은 차이가 컸다. 우선 친구나 지인이 거의 없어 가끔은 심심하다. 또 지방에는 그 나름의 운영체계가 있다. 전주는 생산과 소비가 활발한 수도권에 비해 밤이 빨리 찾아와 저녁 여섯시쯤 떡볶이를 사러 가면 허탕 치기 쉽고 조금 늦은 시간에 외식하러 나가면 눈치 보며 급하게 먹을 때도 있다. 인구가 적으니 시내버스는 20~40분마다 온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2~3분마다 오는 서울의 버스나 지하철이 무빙워크처럼 느껴진다.
 
단독주택 생활 역시 적응하느라 바빴다. 매일 쓸고 치워봐야 티도 안 나고, 집안 하드웨어에 이상이 생기면 속수무책이다. 얼마 전에 갑자기 단수가 되었다. 아파트라면 관리사무실에서 누차 방송했을 텐데…. 주민센터도, 맑은물사업본부도 친절하긴 한데 이유는 모른단다. 물 안 빠지는 세면대, 복잡한 전기선, 생전 처음 보는 보일러…. 뭐든 부르면 돈, 게다가 이런 것까지 남의 힘 빌리는 것도 싫었다.
 
결국 몸을 움직여 직접 해결해야 함을 알았고, 서울에선 벽에 못 하나 제대로 박지 못하던 나는 아내에게 떠밀려 드디어 ‘기술’의 세계로 진입했다. 신기하게도 도배, 장판, 칠, 전선작업, 선반 달기, 하수도 청소, 가지치기…. 뭐든 조금씩 해보면서 손기술이 발전한다. 지금껏 안 해서 그렇지 기본 공구만 있어도 손볼 수 있는 게 많았다.
 
물론 재미 붙이거나 용기백배한 건 아니다. 아직은 쉬운 일에도 몸과 손이 따라가기 힘들고 시간도 많으니 급히 마음먹지 않고 천천히 조금씩 한다. 그러면 뭔가 결과가 나오고, 만일 하다가 접더라도 그 나름의 의미를 둔다. 서툴게라도 해보는 것, 못 하는 것, 안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어떻게라도 해놔야 다음 단계가 보였다. 내 손이 가서 집안 꼴이 조금씩 달라지니 비로소 이 집에서 오래도록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조금 살아보다가 안 되면 튀자’는 생각도 있었다.
 
한옥마을에 산다고 하면 대부분 "시끄럽지 않아?" 묻는데 의외로 괜찮다. 시에서는 관광지로 더 활성화시키려 하지만, 나는 붐비면 집값 올라 좋고, 한적하면 조용해서 좋다는 마음으로산다. 작년 5월과 올해 3월, 같은 곳인데 코로나19 때문에 차이가 많다.

한옥마을에 산다고 하면 대부분 "시끄럽지 않아?" 묻는데 의외로 괜찮다. 시에서는 관광지로 더 활성화시키려 하지만, 나는 붐비면 집값 올라 좋고, 한적하면 조용해서 좋다는 마음으로산다. 작년 5월과 올해 3월, 같은 곳인데 코로나19 때문에 차이가 많다.

 
생활도 개방적으로 바뀐다. 사생활 노출이니 뭐니 하며 자꾸 안으로 숨으면 자기만 피곤하다. 동네에도 익숙해져 이웃과 알게 되고, 서로 알아서 골목 청소도 하고 집도 봐준다. 동네 단골 가게도 생기고 가끔 우리 골목까지 들어와 구경하는 외지인에도 익숙해졌다. 아파트보다 불편한 점은 많지만 마당, 화덕과 숯불, 햇살, 빗소리, 새소리, 꽃나무, 골목, 이웃…. 이런 거로 만족을 느낀다. 돈으로 쉽게 가늠되지 않는 재산이다.
 
지방 이주를 실행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있었다. 자식들을 위해 60년 전에 상경해서 터전 닦으신 부모님 노고도 생각나고,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면 돈이 된다는 것도 알았지만 내 기준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가끔 세컨드 하우스냐는 소리도 듣고, 서울에서 왔다고 하면 어떤 이는 ‘서울에서 뭐가 잘 안 풀렸나?’ 생각하는 것 같다. 한번은 지방도시 생활이 좋다고 했더니 누가 “한 3년 살아보고도 괜찮으면 그때 가서 이야기하라”며 쏘아붙였다. 사람마다 처한 입장과 성미가 다르고 인생의 지향도 다르다. 나는 이곳이 좋은데 그는 작고 조용한 지방도시에서 뭔가 아쉬웠던가 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지난 1년간의 정착 보고서가 되었다. 전주 생활의 경험과 추억이 더 쌓여 완전히 전주사람이 되면 ‘슬기로운 지방생활’을 줄줄 풀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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