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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헉! 롤러코스터 탄 ‘원유개미’…괴리율 폭등에 추락 우려

23일 SK에너지의 울산 원유저장탱크 부유식 지붕이 상단까지 올라와 있다. 저유가와 수요 감소 등으로 국내 정유업계도 원유 저장 공간이 갈수록 부족해지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SK에너지의 울산 원유저장탱크 부유식 지붕이 상단까지 올라와 있다. 저유가와 수요 감소 등으로 국내 정유업계도 원유 저장 공간이 갈수록 부족해지고 있다. [연합뉴스]

“자사 상품 투자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한 대형 증권사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띄운 안내문의 일부다. 광고를 해도 모자랄 판에, 손실이 커질 수 있으니 투자를 자제하라는 게 요지다. 국제유가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는 원유 선물 관련 상장지수증권(ETN)과 상장지수펀드(ETF)를 운용하는 증권·운용사가 이례적으로 자사 상품에 대한 투자 자제를 권고하고 나섰다.  
  

개인들 원유 ETN 묻지마 투자
WTI 가격 첫 마이너스 기록 직후
원유 선물에 하루 1조 넘게 베팅

투자자 몰려 괴리율 771% 상품도
유가 지금보다 8배 올라야 수익

일간 등락률 2배 레버리지 ETN
유가 50% 하락땐 투자금 전액 손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침체로 수요가 급감한 데다 OPEC+(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산유국 간 협의체)의 감산 합의가 여의치 않아 국제유가가 급락하자 개인 투자자(이하 개인)가 유가 상승에 베팅하며 대거 몰리면서다. 국내 증시가 급락하자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량주를 대거 매입해 재미를 본 개인들이 이번에는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원유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가 몰리는 게 꼭 나쁜 일은 아니지만, 비정상적으로 많은 게 문제다. 투자자의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커지자 금융당국도 거래정지 등으로 대응에 나섰다. 유가가 쌀 때 직접 사서 쟁여놓으면 좋겠지만, 개인은 그럴 수 없으니 대개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원유 관련 파생상품(ETN·ETF)으로 원유에 투자한다. 국제유가 상승이나 하락(인버스 상품)이 예상되면 주식처럼 이들 상품을 사들인 후 등락폭에 따라 수익을 내고 파는 식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달 21일부터 이달 21일까지 한 달간 개인은 원유 관련 ETF인 ‘KODEX WTI원유선물(H)’을 1조2443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 기간 기관과 외국인이 각각 1조3044억원, 33억원 순매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유가가 하락을 거듭하자, ‘바닥’이라고 판단한 개인이 집중 투자에 나선 것이다. 특히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20일(현지시간)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직후인 21일과 22일 원유 관련 파생상품에는 각각 1조16억원, 1조1984억원이 몰렸다. 원유 관련 상품의 하루 거래대금이 1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원유개미’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경험상 ‘언젠가는 오르겠지’라는 생각으로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개인이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가 어찌됐든 수익을 냈다면 다행인데, 그렇지가 않다. ‘미래에셋 레버리지 WTI 원유선물 ETN’은 최근 일주일간 58.9% 급락했다. 같은 기간 ‘KODEX 원유선물 ETF’는 50.8%, ‘TIGER 원유 선물EnhancedETF’는 28.3% 떨어졌다. 이미 손실이 적지 않은데, 앞으로가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급락했던 WTI는 감산 기대감과 중동 정세 불안 등으로 22~23일(현지시간) 이틀간 40%가량 반등했지만, 개인이 수익을 내려면 갈 길이 멀다. 최근 비정상적으로 투자가 몰리면서 ETN·ETF 시장가격이 원유의 실제가격(지표가치)보다 훨씬 높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22일 기준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의 지표가치는 74.6원인데 반해 ETN 종가는 650원이었다. 시장가격과 지표가치 가격 차를 보여주는 지표인 괴리율이 771.31%에 이른다. 단순하게는 유가가 지금보다 적어도 8배 수준으로 올라야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원유 레버리지 ETN은 일일 변동폭을 기준으로 수익률을 산출하기 때문에 요즘처럼 하루 등락폭이 큰 상황에선 유가가 올라도 수익이 없거나 극히 적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유 선물을 기초로 한 상품이어서 롤오버(다음 달 원유 선물로 갈아타는 것) 비용이 매달 발생하므로 장기 투자도 쉽지 않다. 가만히 있어도 손익분기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금도 무겁다. ETN은 거래세가 없는 대신 배당소득세 15.4%를 내야 한다. 수익이 2000만원 이상이면 세율은 더 높아진다.
 
유가가 하락한다면 손실은 더 커질 수 있다. 레버리지 ETN은 특히 일간 등락률의 2배를 기초자산으로 하기 때문에 WTI 선물 가격이 50% 하락하면 지표가치가 ‘0’이 돼 투자금 전액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원은 23일 WTI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삼은 ETN·ETF에 대해 소비자경보 최고 등급인 ‘위험’ 등급을 발령했다.  
 
이런 가운데 유가 전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은 “전체 원유 저장 탱크가 조만간 가득 차 다음 달 유가가 -100달러로 추락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가 잦아들더라도 재고 물량이 사상 최대 수준이어서 원유 수요가 늘어나고 유가가 오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최근 미국에서도 원유 관련 파생상품 투자자가 큰 손실을 보고 있다”며 “유가 상승에 베팅하고 싶다면 차라리 원유회사 주식을 사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상장지수증권·펀드=특정 지수나 상품의 가격을 묶어 만든 지수의 움직임에 연동해 수익이 나도록 설계한 펀드·증권. 인덱스 펀드와 유사하지만 거래소에 상장해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매매가 가능한 게 특징이다.

 
괴리율=연동한 상품의 지표가치와 시장가격과의 차이를 보여주는 지표다. 괴리율이 높을수록 실제 가치보다 시장에서의 가격이 과대평가됐다는 의미다. 
유가 배럴당 20달러대 머물면 미 석유업체 500개 파산
너무 높아도, 너무 낮아도 문제인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커지면 세계는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가 아닌 미국을 바라보게 된다. 미국이 유가 변동성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적인 산유국이자 석유 수입국이면서 동시에 수출국이다.  
 
미국은 2014년께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1위 석유 수출국이 됐다. 지난해에는 67년 만에 처음으로 수출이 수입보다 많은 ‘순수출국’이 됐다. 원유보다는 암반층을 뚫고 파내는 ‘셰일오일’ 열풍 덕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28억 배럴, 하루 770만 배럴의 셰일오일을 생산했다. 미국 전체 산유량(44억6000만 배럴)의 63%에 이른다. 그런데 셰일오일 채굴 원가는 분석기관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배럴당 32~57달러다. 국제유가가 30달러 미만에서 형성되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최근 개인 투자자가 대거 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미국의 셰일산업이 무너질 수 있으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다.
 
셰일산업이 붕괴하면 단지 특정 산업의 위기로 끝나지 않는다. 미국 금융시장 전반의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셰일 관련 에너지 기업은 미국 정크본드(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발행한 고위험·고수익 채권)의 15%를 차지한다. 에너지 기업의 부채도 어마어마하다.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4년 사이 만기가 돌아오는 북미 지역 에너지 기업의 부채는 총 860억 달러(약 107조원)에 이른다. 셰일기업의 연쇄 파산이 이들에게 대출한 주요 은행의 부도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은 셈이다.
 
이달 초엔 미국 중북부 노스다코타주 바켄 유전지역에서 가장 큰 셰일기업인 파이팅페트롤리엄이 채산성을 맞추지 못해 파산을 신청했다. 미국의 에너지컨설팅업체인 리스타트에너지는 유가가 2021년 말까지 20달러대에 머문다면 500개 이상, 10달러대에 그친다면 1100개 이상의 미국 석유 탐사·생산 업체가 파산할 것으로 추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랴부랴 셰일산업 구하기에 나섰다. 원유 채굴을 중단하는 기업에 보상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미국의 셰일산업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재차 셰일산업 지원 의지를 밝혔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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