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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취급주의, 깨지기 쉬움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안녕하십니까?”
 

삶은 취약해서 깨지기 쉬워
안전판 마련을 위한 준비는
비용 아닌 투자임을 기억해야

만나면 으레 건네던 인사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전 세계가 모두 겪고 있는 이 어려움은 지금의 세대 누구도 경험이 없을 정도로 거대한 위기입니다.
 
지금 기성세대에겐 바늘을 알코올 램프에 달궈 재사용하던 예전 불 주사가 떠오르는 BCG 접종의 국가별 시행 여부에 따라 이번 바이러스로 인한 치명률이 차이가 난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합니다. 나라별 평소 관리해온 인구대비 병상의 비율이나 인공호흡기의 비치 대수에 따라 완치율이 달라진다는 이야기 역시 상황이 어려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만시지탄처럼 느껴집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전 지구를 덮쳐 사람들의 이동이 멈추는 순간 생산과 소비가 일시에 멈춰버리며 우리가 만든 문명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을 일시에 잃어버리는 사람들과,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직업을 잃는 나라, 예기치 않은 불안감으로 가정이 해체되는 모습을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보게 된 지금 떠오르는 형용사가 하나 있다면 ‘취약한(fragile)’이 아닐까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일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지인들을 만나고 가족과 함께하는, 일견 지루해 보이던 일상이 멈추는 순간 단순히 이전의 삶을 잠시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 자체가 깨질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두발로 힘차게 딛고 앞으로 나아갈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멈추는 순간 넘어지고 부서져 버리는 ‘유리로 만든 두발자전거’를 타고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세계화를 지향해온 우리에게 지금껏 최적화는 효율화라는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나라에서 먹거리를 만들고 다른 나라에서는 옷을, 또 다른 나라에서는 자동차를 만들어 서로 필요한 부분을 교환하던 국제적 분업은 핸드폰 하나 속 수많은 부품과 서비스의 다국적 공조로까지 세분화되었습니다. 물류와 협업의 플랫폼들은 사람의 눈과 손으로 관리하기 어려울만큼 빛의 속도로 업무를 나누어 혈관을 흐르는 적혈구처럼 산소 같은 자원들을 지구 위 여러 사람들에게 배분해 온 것입니다.
 
빅데이터 4/24

빅데이터 4/24

국가별 분업은 ‘흐름’의 원활함을 전제로 하기에 만들어내지도 소비되지도 못하는 멈춤은 나라별로 독자생존의 냉혹함을 요구받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식량 수출의 금지를 결정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생존을 위한 구제금융을 청하는 위기로 점화되기 시작합니다. 유기적 결합의 협력 시스템이 만들어낸 실시간 소통의 협업이라는 것이 위기가 다가왔을 때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간 인류는 무척이나 대안이 없는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빠른 배송이 구비된 쇼핑이라는 대안이 있던 우리나라는 그나마 사재기의 두려움에서 한발 물러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루머와 공포로 휴지를 쟁여놓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다투는 장면을 먼발치에서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지금껏 편리를 위한 하나의 선택지이던 인터넷 쇼핑이 위기시에는 훌륭한 물리적·심리적 백업(backup)이 될 수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평상시엔 차 있지 않아 여유가 있던 병상과 곳곳에 준비된 보건소가 자원의 낭비가 아니라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버퍼(buffer)임을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담고 있는 상자 위에 늘 씌어있는 ‘깨지기 쉬움(fragile)’ 옆에는 언제나 ‘취급주의, 조심스럽게 다뤄주세요(handle with care)’라는 문장이 커다랗게 씌어 있습니다.
 
취약한 것은 소중히 다뤄야 합니다. 상자 속 깨지기 쉬운 물건은 완충재인 에어캡이 들어있는 포장지로 감싸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도 안전판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이 더욱 어려워지는 재난의 계층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이번 팬데믹은 그간 발전을 위해 최적의 투자만을 이뤄오던 우리에게 또 다른 관점을 던져주었습니다. 효율을 위해서 과적하고 밤새 운행하는 물류가 위험하고, 경쟁의 우위에 서기 위해 가정의 삶을 포기하고 일만 해온 사람의 인생이 위태롭습니다. 어려움에서 큰 교훈을 얻는 것이 우리 종이 지금껏 생존할 수 있었던 장점이라 믿기에, 삶의 취약함에 안전판을 더하기 위한 준비가 비용이 아닌 소중한 투자임을 이 위기가 끝나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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