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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달러’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 기름 저장할 곳도 모자란다

서부 텍사스유(WTI)가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에 거래됐다. 사진은 20일 미국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 해안에서 바라본 원유 및 가스 생산·시추 설비인 해양플랜트의 모습. [AFP=연합뉴스]

서부 텍사스유(WTI)가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에 거래됐다. 사진은 20일 미국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 해안에서 바라본 원유 및 가스 생산·시추 설비인 해양플랜트의 모습. [AFP=연합뉴스]

추락을 거듭하던 국제 유가가 결국엔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원유 저장고 포화, 선물(先物) 만기일 등의 합작품이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 텍사스유(WTI)의 5월물 종가는 배럴당 -37.63달러. 지난 17일 종가인 18.27달러보다 306%나 폭락했다. 이론상으로는 공급자가 소비자에게 1배럴의 원유에다 4만6318원의 현금까지 쥐여줘야 팔 수 있는 셈이다. 1983년 NYMEX에서 원유 선물 거래가 시작된 이후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최초다. 장중 한때 -40.32달러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코로나 수요 감소, 감산도 역부족
미국 저장시설 꽉차 둘 곳 없어
유조선도 모자라, 임대료 급등
WTI 6월물은 20.43달러에 거래

WTI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는 것은 원유 시장을 넘어 국제 경제 전반에도 적신호로 해석된다. 증시는 바로 반응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2.44%), S&P500(-1.79%) 등 주요 지수는 하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이런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배경으로는 우선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급감이 꼽힌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의 연합체인 OPEC+가 5~6월 하루 970만 배럴 감산에 합의했지만 역부족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WTI 유가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WTI 유가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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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생산된 원유도 애물단지 신세다. 미국 내 대표적 원유 저장고는 오클라호마의 쿠싱인데,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쿠싱의 저장 용량 8000만 배럴 중 5900만 배럴이 가득 찼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원유를 저장할 곳만 찾을 수 있다면 돈벌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육상 저장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투자자들은 원유를 유조선에 실어 바다에 띄워놓고 있다. 하지만 유조선도 포화상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조선들이 현재 싣고 있는 원유 용량은 1억2000만 배럴에 달한다. 코로나19 이전을 기준으로 세계가 하루 이상 쓸 수 있는 양이다. 그 바람에 유조선 임대료까지 급등하고 있다. WSJ는 유조선의 6개월 계약 요금이 1년 사이에 2만9000달러에서 10만 달러로 뛰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왜 하필 미국 기준 20일에 이런 사달이 났을까. WTI 5월물의 만기일(21일)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5월물 선물을 보유한 사람은 21일에 실제 원유를 넘겨받아야 한다. 하지만 기름 소비가 줄어 진짜 원유를 정유사 등에 팔기가 쉽지 않다. 이에 선물투자자들이 원유를 실제로 인수하는 대신, 대부분 6월물로 넘기는 롤오버(rollover)를 택하며 마이너스 유가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컨설팅업체 IHS 마킷의 에너지 담당 부사장인 로저 다이완은 트위터에 “쿠싱의 남은 저장고 역시 이미 예약이 꽉 찬 상태라서 돈을 아무리 줘도 저장할 곳을 찾을 수 없으니 투자자들이 원유를 되팔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적었다.
 
비정상적으로 가격이 형성된 5월물과 달리, WTI의 6월물 선물 종가는 18%포인트 떨어지긴 했지만 20.43달러로 거래됐다. 7월 인도분은 26.18에 거래됐다. 10월 인도분은 32달러, 11월 인도분은 33달러 선이다. 미국산 원유 수요가 올해 하반기에 어느 정도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 CNBC는 “5월물보다 거래량이 많은 6월과 7월물 가격이 원유 시세를 더 정확히 반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유가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전수진·강남규 기자,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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