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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김에 WHO 돈줄 끊은 트럼프 "中 손아귀서 놀아나" 평가 왜

2009년 8월 미국 타임지의 표지. 중국을 상징하는 판다 한 마리가 펌프를 가지고 지구에 바람을 넣고 있다. 유엔 산하 15개 전문기구 중 총 4곳이 중국인이 수장이다. [사진 타임]

2009년 8월 미국 타임지의 표지. 중국을 상징하는 판다 한 마리가 펌프를 가지고 지구에 바람을 넣고 있다. 유엔 산하 15개 전문기구 중 총 4곳이 중국인이 수장이다. [사진 타임]

WHO는 매우 중국 중심적(Very China-centric)이다."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로 한 말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자금 지원 중단을 시사했다. 일주일 뒤인 14일 진짜 실행에 옮겼다. 그의 결정은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 있는 국제기구의 손발을 묶는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이와 별개로 트럼프의 'WHO의 중국 편중' 발언은 반향을 일으켰다. WHO가 코로나 사태 발생 후 중국을 감싸는 행보를 보였다는 점에 국제사회가 어느 정도 공감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中 편향 WHO에 자금지원 중단"
유엔 산하 국제기구 30%가 중국인 수장
미국, 중국의 유엔 내 영향력 확장 우려
트럼프 자국 우선주의가 中 득세 불러와
"美 자금 끊으면 중국 영향력 더 커질 것"

 
[트럼프 트위터 캡처]

[트럼프 트위터 캡처]

미 외교 전문지 폴리티코는 15일 “중국의 친(親) 유엔 행보를 지켜봤다면 WHO의 중국 존중이 놀랍지 않다”며 “WHO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중국의 국제기구 ‘외교 굴기(堀起·우뚝 섬)’는 무섭다. 

2018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AFP=연합뉴스]

2018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유엔 산하 15개 전문기구 중 약 30%인 4곳이 중국인을 조직 수장으로 두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그렇다. 나머지 11곳은 수장의 국적이 모두 다르다. 한국인은 임기택 전 부산항만공사 사장이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으로 활동 중이다.
리용 유엔산업개발기구 사무총장.[사진 유엔산업개발기구]

리용 유엔산업개발기구 사무총장.[사진 유엔산업개발기구]

면면을 살펴보자. FAO 사무총장은 취동위(屈冬玉) 전 중국 농업농촌부 부부장이다. 리용(李勇) 전 중국 재정부 부부장은 2013년 UNIDO 사무총장 자리에 올라있다. ITU 사무총장엔 자오허우린(趙厚麟) 전 ITU 사무차장이 2014년부터 일하고 있다. 류팡(柳芳) 전 중국민간항공총국(CAAC) 이사는 2015년 ICAO의 첫 여성 사무총장이 됐다.
류팡(柳芳)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사무총장. [사진 류팡 트위터]

류팡(柳芳)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사무총장. [사진 류팡 트위터]

이뿐이 아니다. 리우전민(劉振民) 전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2017년 유엔 사무차장에 임명됐다. 
리우전민 유엔 사무차장이 지난해 7월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 리포트 관련 기자회견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리우전민 유엔 사무차장이 지난해 7월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 리포트 관련 기자회견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중국은 유엔 국제기구 수장에 자국 인사를 앉히는 계획을 차곡차곡 실행해 왔다. 리처드 가원 국제위기감시기구(ICG) 연구원은 AFP통신에 “중국 정부는 최근 몇 해 동안 유엔 기구 수장 자리를 차지하려고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중국의 행보는 시진핑 국가 주석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 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책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취동위 전 중국 농업농촌부 부부장이 지난해 6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사무총장 선거에서 당선된 뒤 참석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AFP=연합뉴스]

지난해 6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FAO 사무총장 선거는 중국의 영향력을 보여줬다. 후보로 나선 취동위 전 중국 농업농촌부 부부장은 191개국 중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의 압도적 지지 속에 108표를 받아 당선됐다.
 
중요한 건 취 부부장이 미국의 집요한 공세에도 당선됐다는 점이다. 미 포린폴리시(FP)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케빈 몰리 미 국무부 국제기구 담당 차관보는 중국이 FAO 사무총장 선거에 나선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직원들에게 “(FAO 선거에서) 중국을 이기는데 어떤 방법이라도 쓰라”고 지시하며 총력전을 선언했다.
유엔 15개 전문기구 수장 중 4명이 중국인. WIPO 사무총장은 9월에 교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유엔 15개 전문기구 수장 중 4명이 중국인. WIPO 사무총장은 9월에 교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럼에도 미국이 지지한 다비트 키르발리드체 전 조지아 농업부 장관은 12표에 그쳤다. 1만 1500명의 직원에 예산만 연 26억 달러(약 3조 69억 원)를 쓰는 거대 기구 FAO의 수장 자리는 중국인 차지가 됐다. 1945년 FAO 창설 이래 최초다.
지난 3월 열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사무총장 선거가 끝난 직후 선거에서 당선된 다롄 탕 싱가포르 특허청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3월 열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사무총장 선거가 끝난 직후 선거에서 당선된 다롄 탕 싱가포르 특허청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3월 열린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사무총장 선거에서 미국의 지지를 받은 다렌 탕 싱가포르 특허청장이 중국의 왕빈잉 WIPO 사무차장을 꺾지 않았다면 중국인 국제기구 수장은 5명으로 늘었을 것이다.

서방에선 중국인 수장을 곱지 않게 바라본다.

[AFP=연합뉴스]

[AFP=연합뉴스]

미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의 크리스틴 리 연구원은 “중국인 국제기구 수장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중국 정부에 내부 정보를 보고할 거란 우려가 있다”며 “이들은 유엔 내에서 다자주의를 발전시키고 투명성과 책임을 강화하는 데 힘쓰기보다 중국 공산당의 관심사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텐센트. [사진 셔터스톡]

텐센트. [사진 셔터스톡]

단초가 엿보인다. 유엔 내에서 중국 기업의 활동이 활발하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텐센트는 올해 9월 열릴 예정인 유엔 창립 75주년 기념행사를 주관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이번 기념행사는 화상회의로 열린다. 여기에 쓸 회의 프로그램과 온라인 네트워크 연결 업무를 텐센트가 맡게 됐다.
자오허우린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사무총장. [EPA=연합뉴스]

자오허우린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사무총장. [EPA=연합뉴스]

텐센트는 2018년엔 유엔개발계획(UNDP)과 업무협약을 맺고 개발도상국에 인터넷 등 디지털 플랫폼을 건설해주고 있다. 텐센트 뿐만이 아니다. 폴리티코는 “자오허우린 ITU 사무총장은 자신의 직위를 화웨이의 5G 장비를 세계 통신 시장에서 확대하는데 활용하곤 한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중국의 외교 굴기를 막기는 쉽지 않다.

중국의 영향력을 키워준 것이 미국이라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떠나고 있다.[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떠나고 있다.[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정책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유엔 등 국제기구에 부담금을 너무 많이 내고 있다며 예산 축소를 지시했다.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아시아에선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등 특유의 '계산서 외교'를 굽히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중국은 미국에 실망한 각국에 손을 내밀었다. FP는 “미국 정부는 동맹국과 지속해서 충돌해왔다"며 “그 사이 중국은 미국의 빈자리를 메우며 개발도상국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외교적 야망을 실현해왔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도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 덕분에 중국이 '유엔 내 영향력 확대'라는 반사이익을 누린다”고 평가했다.
 2015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2015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국제평화연구소의 제이크 셔먼 이사는 블룸버그에 “중국은 지위가 커짐에 따라 다자 시스템의 가치를 알게 됐다”며 “향후 중국은 높아진 위상을 바탕으로 유엔을 ‘중국식 국가주도 자본주의’ 논리를 펼치는 장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WHO 자금 지원 중단은 오히려 중국의 유엔 내 영향력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금 지원 중단) 결정은 말 그대로 중국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이라며 “미국이 WHO를 비롯한 유엔 국제기구와의 활동을 줄일수록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차이나랩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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