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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문재인, 反김정은만이 보수 아니다···통합당이 놓친 한가지

[윤석만의 인간혁명]보수란 무엇인가 

“미래통합당은 보수란 개념조차 모르면서 보수통합만 부르짖었다, (참패하고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희망이 없을 것이다.”
 막판 통합당에 영입돼 선거를 진두지휘 했던 김종인 선대위원장의 이야기다. 그는 총선이 끝난 직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대가 변하면서 이데올로기가 작용을 안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합당은 “그걸 안 하고 막연하게 ‘보수’ ‘보수’만 외쳤다, 여당 비난만 했지 뭘 할 생각을 안 했다”고 지적했다.

[윤석만의 인간혁명]

 
 김종인 위원장의 말대로 “보수란 개념조차 모르면서 ‘보수’만 외친” 정치인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반문재인, 반김정은 정도를 보수의 충분조건으로 생각한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핵심 선거 구호가 ‘문재인 정권 심판’이었는데,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입장에선 “X 묻은 개가 덜 X 묻은 개에게 뭐라고 한다” 생각했을 것이다. 현 정권에 비판적이어도 차마 통합당을 지지할 순 없었다는 뜻이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16일 광화문 자신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16일 광화문 자신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그랬고, 지금도 이미 몇몇 보수 정치인들 사이에선 ‘보수 혁신’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과정이 빠졌다. ‘보수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서는 2년 후 대선, 4년 후 총선에서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현상을 연구할 때는 핵심이 되는 개념의 정의부터 명확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정치인마다 생각하는 보수의 개념이 다르니 혁신도, 개혁도 당연히 존재할 수 없다. 보수와 진보는 무슨 뜻이고, 보수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인지 정확한 기준이 정해져야 지킬 것은 지키고, 바꿀 것은 바꿀 수 있다. 이제 보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따져보자.
 

국가는 선의를 위해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322년). [사진 암스테르담 라익스박물관]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322년). [사진 암스테르담 라익스박물관]

 보수가 무엇인지 답하려면 먼저 국가와 정치의 개념부터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치에 대한 체계적인 고민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정치학』에서 처음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정치(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모든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타자에 견주어 자아를 발견하며, 그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아실현을 한다.  
 
 가정에서 시작해 혈족 단위의 공동체를 이루고, 나아가 하나의 마을을 형성한다. 마을이 커지면 지역사회가 되고, 종국엔 하나의 독립국가로 인정받는다. 그러면서 정치체제라는 것을 만들어 공동체가 지켜야할 규율과 기준을 제시한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복리를 증진시키기 위한 선의의 목적으로 국가가 존재한다고 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따르면 정치는 공동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고 이를 실현하면서 공공의 복리를 증대시키는 행위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고, 외부의 침입과 내부의 혼란 같은 갈등과 범죄 행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며, 공동체와 각 개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조직과 집단, 개인 간의 의견 차이나 이해 충돌이 생긴다.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한정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이제 그 역할을 누가 어떻게 펼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는 곧 정치 체제의 문제로, 우리가 어떤 시스템을 취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정부의 형태가 달라진다. 보수와 진보가 무엇인지 알기위해선 필연적으로 국가와 정부 형태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국가가 어떻게 생겨났고,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따라 보수와 진보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는 세속의 신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 주권국가인 이란을 침공해 영국군 및 러시아군과 싸운 오스만튀르크의 군대. [위키피디아]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6년 주권국가인 이란을 침공해 영국군 및 러시아군과 싸운 오스만튀르크의 군대. [위키피디아]

 오늘날 국가의 형성을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은 사회계약론이다. 자연 상태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개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사회적 계약을 맺어 국가를 만들고 그 권한을 위임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관과는 맥락이 조금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정체성을 ‘선의’의 목적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했다. 보통 이런 입장을 목적론적 국가관이라 부른다. 반면 사회계약론자들은 국가엔 그런 숭고한 목적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국가는 개인의 재산과 권리,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일종의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목적론적 국가관과 대비해 발생론적 국가관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계약론의 원조는 홉스다. 1651년에 쓴 『리바이어던』에서 국가는 전쟁과 같은 외부의 침략과 위협, 내부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무질서, 혼란 등을 막기 위해 사람들의 계약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국가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속의 신’이다.  
시리아 난민들.

시리아 난민들.

 그런데 여기서 ‘세속의 신’은 현대적 관점에서 큰 문제가 된다. 절대왕정 시대에 살았던 홉스는 신성한 권력을 휘두르는 주체인 국가에게 개인이 절대복종해야 한다고 봤다.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국가는 만들어진 순간부터 개인을 떠난 존재다. 국가는 그 스스로 이미 ‘인격’을 가진 존재이기에 국익은 언제나 개인의 이익보다 최상위에 존재한다. 여기서 사회계약은 ‘신약’의 의미에 가깝다. 실제로 그의 국가론은 현대 민주주의보다는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는 논리에 적합했다.  
 
 하지만 홉스의 국가론은 수 백 년이 지난 지금도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최근의 코로나19 상황을 보자. 국가의 대응 방식에 따라 나라마다 코로나19로 인한 혼란의 강도가 달랐다. 또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내전과 기아 등 국민이 큰 고통을 겪는 나라도 많다. 이는 국가의 역량이 달랐기 때문이다. 훌륭한 방역체계, 반란군을 진압할 공권력 등 여러 요소들이 합쳐 우수한 국가를 만든다.  
 
 35년간 일제의 식민통치 시기 대한제국은 국민을 보호할 물리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 때문에 다른 나라의 침략에 쉽게 무너졌고, 수 십 년 동안 식민지 생활을 했다. 6.25 전쟁 때도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 됐을 수 있다. 그 만큼 국가의 역량은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국가는 여전히 ‘세속의 신’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 국가의 원형 법치주의

 『리바이어던』이 국가의 탄생 이유를 설명했다면 로크는 국가 권력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했다. 1689년 로크가 쓴 『통치론』은 홉스와 달리 국가 권력의 주체를 국민으로 설정했다. 로크의 국민주권론은 오늘날 민주주의를 정치 체제로 하는 대다수의 나라에서 헌법의 기본 이념이다.  
 
 우리 헌법의 1조 2항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 아무리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도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반해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저항권’이다. 국가가 주권자의 의사에 반할 때 국민은 사회계약을 해지해 국가를 부정할 수 있다. 이는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엎을 수도 있다(君舟民水)’는 공자의 사상 및 맹자의 역성혁명론과 일맥상통한다.
 로크는 국가가 언제나 옳은 일만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국가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주권자인 국민이 만들어 놓은 원칙과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는데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다. 이는 절대권력인 국가의 명령에 모든 인민이 따라야 한다고 했던 홉스와 다른 입장이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은 국민으로부터 창출되며, 국가권력을 대리하는 사람들은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정치를 펼쳐야 한다. 권력을 행사할 때는 국민이 합의한 기준 ‘법’에 의해서만 모든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데 가끔 우리 사회의 지도자, 특히 정치인들은 법치주의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법치주의는 법에 따라 국민을 ‘통치’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대리인인 정치가가 법에 의해서만 정치, 즉 ‘법치’를 하란 이야기다. 법치주의는 권력을 가진 자를 구속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을 통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로크의 사회계약론을 발전시켜 완성한 이는 루소다. 루소는 국가와 정권을 구분함으로써 저항권의 개념을 좀 더 현실에 맞게 다듬었다. 국민의 뜻에 맞지 않는 국가에 매번 저항권을 행사하긴 어렵다. 그래서 루소는 국가와 이를 운영하는 정권을 따로 떼어내면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이 있고, 이들이 각각 경쟁을 벌여 정권을 잡으면 국가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정권이 잘못된 정치를 펴면, 국가를 전복할 필요 없이 정부만 교체하면 된다. 이는 현대 정당 중심의 의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초석이 됐다.  
 

국가는 착취의 도구인가

 마르크스 이론의 기본 전제는 유물론이다. 물질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정신과 의식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형이상학적 관념을 우선하는 관념론과 대비된다. 물질의 세계는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있던 것이다. 정신과 의식 같은 관념은 물질에 기초해 성립한다.  
 
 그런데 이런 물질의 본성은 늘 변화한다. 고정된 상태로 불변하는 물질은 없다. 그 변화의 에너지는 내부에서 나온다. 겉에서는 하나로 통일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 끊임없이 대립된 것들 간의 투쟁이 일어나고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로 변해간다. 이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이를 국가의 생성과 소멸, 역사의 발전 과정에 적용한 것이 ‘사적 유물론(史的唯物論)’이다. 원시 공동체 이후 인간의 모든 사회는 내부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서로 상반되는 두 계급 사이의 투쟁이 역사를 발전시켰다. 국가는 투쟁 과정에서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폭력적 기구였다. 귀족과 노예, 봉건 영주와 농노,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건물주와 세입자 등으로 모든 사회엔 착취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이 있었다.
 
 계급을 나누는 기준은 생산관계다. 이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를 말한다. 중세 지주들은 땅을, 산업혁명기 부르주아는 공장을, 현대 건물주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농민과 공장 노동자는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 만큼 적은 보상을 받지만 영주와 부르주아는 가만히 있어도 큰돈을 번다. 월세를 얻어 장사하는 세입자는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지만, 그가 가져간 수익보다 더 많은 돈을 365일 놀기만 하는 건물주에게 줘야 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이 사적 유물론의 핵심이다.
 

현대에도 살아있는 마르크스 

오는 21일 출간 170주년을 맞는 1882년 러시아어판 『공산당선언』과 1883년 독일어판 원본.

오는 21일 출간 170주년을 맞는 1882년 러시아어판 『공산당선언』과 1883년 독일어판 원본.

 마르크스는 노동의 가치보다 신성한 것은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생산수단(땅, 공장, 부동산 등)을 소유한 지배층은 경제활동을 통해 생산된 잉여가치 중 최소한의 몫만 노동자들에게 지급하고, 대부분의 몫을 이윤의 형태로 가져간다고 봤다. ‘일하지 않고 더 많은 이윤을 챙겨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 이론의 출발인 셈이다.  
 
 이런 생산관계를 깰 방법은 혁명뿐이라는 게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고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짖은 것도 그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만 착취와 지배 구조를 전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르크스에게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수단도, 불평등을 완화시켜주는 장치도 아닌, 착취와 폭력의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혁명이 완료된 세상에선 국가도 사라진다고 봤다. 이를 통해 ‘인간 해방’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 이론을 따른 사회주의 국가에서 인간은 해방되지 않았고 국가도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은 더 많은 구속과 착취를 당했다. 다만 억압의 주체가 자본가에서 독재자 또는 소수의 공산당 지도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왜 그럴까. 마르크스의 사상은 물질과 계급으로 역사와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데 있어 매우 매력적이었지만 정작 사회주의 혁명 후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역사의 발전 과정을 대립물의 투쟁으로, 자본주의 모순을 잉여가치의 차등 분배로 설명한 하나의 ‘가설’일 뿐, 혁명이 성공한 다음엔 어떤 정치와 경제 체제를 갖춰야 하는지 등의 로드맵이 없다.  
 
 그러나 그의 이론이 완전히 쓸모없어진 것은 아니다. 불평등의 심화에 대한 그의 해석은 현대 사회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농담이 전 사회에 퍼져 있겠는가. 『21세기 자본』으로 부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 토마 피케티의 문제의식도 마르크스와 궤를 같이 한다. 이상주의적 이론은 현실에서 실패로 끝났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그의 놀라운 통찰은 여전히 많은 것을 시사한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

 오래 기다렸다. 이제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정의해보자.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정치와 국가의 존재를 설명하는 이론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국가를 최고의 선으로 본 아리스토텔레스와 인간 해방을 위한 조건으로 없어져야할 대상으로 국가를 본 마르크스 사이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언뜻 보면 둘은 양 극단에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둘 사이에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동일한 인식의 지점이 있다. 바로 인간이 세상을 설계하고, 의지에 따라 바꿔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선을 실천하는 국가를 이상향으로 제시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들을 연구했다. 그 방법론을 정치학이라고 명명했다. 마르크스는 사적 유물론에 따라 역사 발전 단계를 서술하며 역사의 최종 종착지를 혁명 이후의 공산주의 사회로 설정했다. 두 가지 모두 인간이 설계한 그림대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내재해 있다.
 
 반면 사회계약론은 인간이 불가피하게 계약을 맺긴 했지만 국가는 필요악이라고 규정했다. 인간이 계약을 맺어 국가를 탄생했지만, 계약서에서 손을 놓는 순간 계약 주체인 인간의 손을 떠나 버린다.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이 돼버리기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저항권을 사용해 국가를 전복시키거나 그 권력을 법치의 테두리에 묶어두는 것뿐이다. 사회계약론에선 인위적으로 사회를 설계하고 유토피아를 만들어 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게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은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 하는 문제의 해답을 얻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태도를 낳는다. 즉, 한 편에서 인간은 충분히 유토피아를 설계하고 노력을 통해 이를 실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다른 편에선 세상은 인간이 그린 설계도대로만 움직이지 않으며, 그 어떤 개인도 인류의 집단 문화유산인 과거의 전통과 관습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제도와 문화 역시 바뀌어야 하겠지만 이를 급진적으론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구분에서 앞의 것을 우리는 진보라 부르고, 뒤의 것을 보수라 칭한다. 즉, 보수와 진보는 단순히 변화의 속도 차이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이 같은 구분을 체계화 해놓은 대표적인 사람이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에드번드 버크(1729~1797)다.  
 

보수의 아버지 버크

『프랑스 혁명론』(1790)의 저자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반동’이 아니었다. 버크는 ’여러분은 절대 과거로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내셔널 초상화 갤러리]

『프랑스 혁명론』(1790)의 저자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반동’이 아니었다. 버크는 ’여러분은 절대 과거로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내셔널 초상화 갤러리]

 버크는 1790년 발간된 『프랑스 혁명의 고찰』을 통해 혁명 정부와 계몽주의를 비판했다. 그의 이론은 현대 보수주의 사상의 시발점이 됐다. 그의 논지는 명쾌하다. 당시 유럽에선 인간의 이성과 합리에 근거한 계몽주의가 지식의 주류를 형성했다. 인간 이성에 대한 자신감은 인간의 의지로 역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그러나 버크는 인간의 이성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또한 불완전함을 완전히 이겨낼 수 없기 때문에 다가 올 미래를 완벽히 설계하거나 대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부실한 설계는 미래를 더욱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혁명 이후의 프랑스는 유토피아라기보다는 혼란과 갈등이 극심해진 사회의 단면을 보여줬다. 그 때문에 버크는 역사의 발전과 진화는 뛰어난 소수 엘리트의 설계가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과거의 유산이 때로는 극복해야 할 인습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것이 오랜 시간 인류 역사에서 전통으로 내려오는 이유는 그만큼 정당성과 효용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평소 우리가 식당에 갈 때 블로그의 호평이 많고 줄이 많은 ‘맛집’을 찾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버크에게 역사의 진화와 사회의 발전은 과거의 유산을 토대로 한 점진적 개선의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혁명과 같은 급진적 변화는 오히려 혼란과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하는 자세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도전을 행하는 것보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검증된 전통에 따른 보수적 개혁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버크는 소수 엘리트의 뛰어난 이성보다는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형성된 문화의 힘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보수의 핵심가치는 자유주의

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

 이는 오늘날 자유주의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의 생각과도 비슷하다. 1859년 출간된 『자유론』은 정치·사회적 자유의 뜻과 필요성을 역설한 자유주의의 교과서다. 이전까진 주로 철학의 영역에서 ‘의식의 자유’가 논의됐고, 한 세기 전의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관점에서 ‘경제적 자유’를 논했다. 잘 알다시피 밀의 『자유론』은 개인의 자유, 특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타인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선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이론이다. 다양하고 새로운 생각들이 많이 나와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능력은 유한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완전한 진리를 알 수 없고 완벽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한 사람만의 생각으로는 제 아무리 그가 천재라고 하더라도 존 밀턴이 『아레오파지티카』에서 말했던 ‘사상의 자유경쟁시장’에서 만들어진 생각과 이념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능한 많은 주장들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 살아남은 주장만이 그 시대의 진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시대가 바뀌면 진리의 자리를 내줘야 한다. 이는 모든 종교적 교리와 도덕적 윤리, 과학적 이론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밀은 진리에 이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유로운 토론이라고 제시한다. 서로 다른 의견이 치열하게 치고받는 과정을 거쳐야 더욱 합리적인 의견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A라는 주장에 대해 B라는 잘못된 반박이 나온다 하더라도 결국 A는 그 정당성을 더욱 분명히 더욱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역사가 발전하면서 논쟁과 의심이 필요 없는 생각은 더욱 많아지게 된다.  
 

국가는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난다

존 트럼불(1756~1843)이 그린 ‘독립선언’(1817). 미국혁명은 프랑스혁명의 ‘쌍둥이 혁명’이라고 불린다. 아무래도 혁명은 보수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러셀 커크는 『보수의 정신』에서 미국혁명이 자유주의 혁명이기 이전에 보수주의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미국 의회의사당]

존 트럼불(1756~1843)이 그린 ‘독립선언’(1817). 미국혁명은 프랑스혁명의 ‘쌍둥이 혁명’이라고 불린다. 아무래도 혁명은 보수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러셀 커크는 『보수의 정신』에서 미국혁명이 자유주의 혁명이기 이전에 보수주의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미국 의회의사당]

 이처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변화는 필수적이다. 다만 보수와 진보는 그 방법론과 속도에 있어 조금씩 다를 뿐이다. 보수라고 해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선 보수가 마치 ‘수구’인 것인 양 오해되곤 한다. 수구는 현재를 맹목적으로 고수하며 과거로 회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는 기존의 사회 체제를 유지하며 합리적이며 안정적이고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려 한다. 진보와 비교해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과 태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 보수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보수와 진보의 구분을 단순히 태도와 성향만으론 판별하기 어렵다. 누구나 보수와 진보, 양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반공주의와 색깔론 등 이념 공세와 그에 대반 반작용의 과정을 통해 양 측이 나뉘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경제적 측면에서 더욱 명쾌하게 갈린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정부의 시장 개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하는 문제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갈린다.
 
 이 틀에서 보면 보수는 시장에 더 많은 자유가 주어져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정부가 가급적 간섭해선 안 된다. 규제를 없애고 세금을 줄이며 자본가와 기업이 원활하게 사업을 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반대로 진보는 정부가 더 많은 일에 개입하려 하고 세금을 늘려 복지를 확대하려 한다. 하지만 최근엔 보수와 진보할 것 없이 ‘묻지마 복지공약’으로 포퓰리즘 경쟁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구분도 애매해졌다.
 
 지금까지는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정부의 시장 개입을 어느 정도로 용인할 것이냐는 측면에서 주로 보수와 진보가 나뉘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대북과 경제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 젠더, 미래 등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어서도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또 합의하고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진짜 보수가 해야할 일

아테네학당(라파엘로)

아테네학당(라파엘로)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검찰을 개혁하고, 부패한 관료사회와 편법이 난무하는 기업 관행을 바로 잡는 일은 보수와 진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다만 그 방법과 속도에 있어서 보수와 진보는 다른 목소리를 내야한다. 여기서 이제 중요한 한 가지 물음이 남는다. 그렇다면 보수의 정체성, 또는 보수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가다.
 
 핵심 가치가 정해져야,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입장과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보수정당이 원칙도 명분도 없이 그저 반문재인, 반김정은만 외친 것은 스스로 체화한 공통의 가치, 즉 이것만은 꼭 지켜야하겠다는 정치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철학이 무엇이냐. 바로 자유주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보수는 역사의 발전이 뛰어난 소수 엘리트(한국의 진보로 치면 586 운동권 및 강남좌파)의 설계도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통을 중시하는 것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우리 선배들이 그런 문화를 만들고 지켜온 이유는 그만큼 정당성과 효용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가능한 많은 주장들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 살아남은 이론만이 당대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이 된다.  
 
 자유주의는 시민 각자의 자유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다양성과 개방성, 관용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집단보다 개인을, 통제보다 자율을, 획일성보다 다양성을 존중한다. 국가가 대중을 획일화하고 통제할 때 이로부터 시민의 인권과 권리를 지켜내고 이를 실천할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진짜 보수가 할 일이다.  
 
sam@joongang.co.kr
 
*글쓴이의 저서『리라이트』를 참고했습니다.
윤석만은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2018 세종도서),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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